目
宇文泰가 用蘇綽爲行臺郎中하여 居歲餘에 未之知也로되 而臺中이 皆稱爲能하여 有疑事어든 皆就决之러라
泰가 與僕射周惠達論事할새 惠達이 請出議之하고 以告綽하고
綽이 爲之區處하여 惠達入白之하면 泰가 稱善曰 誰與卿爲此議者오하니 惠逹이 以綽對하고 且稱綽有王佐之才러라
泰
가 與公卿
으로 如昆明池觀漁
할새 行至漢故倉池
注+① 水經注 “泬水枝渠至章門西, 飛渠引水入城, 東爲倉池, 池在未央宮西. 池有漸臺, 漢兵起, 王莽死於此臺.”하여 顧問左右
하되 莫有知者
어늘 召綽問之
한대 具以狀對
하니 泰
가 悅
하여 因問天地造化之始
와 歷代興亡之跡
하니 綽
이 應對如流
라
遂留至夜하여 問以政事하고 卧而聽之러니 綽이 陳爲治之要한대 泰가 起하여 整衣危坐하여 不覺膝之前席하여 語達曙不厭이러라
詰朝謂惠逹曰 蘇綽은 眞奇士라 吾方任之以政이라하고 即拜左丞하여 參典機密하니 自是寵遇日隆이러라
綽
이 始制文按程式朱出墨入及計帳戸籍之法
하니 後人
이 多遵用之
注+② 計帳者, 具來歲課役之大數, 以報度支. 戶籍者, 戶口之籍.러라
目
【目】 宇文泰가 蘇綽을 行臺郎中으로 삼아서 일 년 남짓 지났을 때까지 그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行臺에서 모두 능력이 있다고 일컬어, 의혹되는 일이 있으면 모두 그에게 찾아가 해결했다.
우문태가 僕射 周惠達과 일에 대해 의논할 때 주혜달이 나가서 의논해오겠다고 하고 이를 소작에게 이야기했다.
소작이 방법을 제시해주어 주혜달이 이를 우문태에게 보고하면 우문태가 훌륭하다고 하며, “누가 경에게 이런 건의를 하였는가?”라고 물으니, 주혜달이 “소작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또 “소작에게 왕을 보좌할 재능이 있습니다.”라고 칭찬했다.
우문태가 公卿들과 함께 昆明池에 가서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할 때, 漢代의 옛 倉池에 이르러,
注+① ≪水經注≫에 의하면, “章門 서쪽에 닿는 泬水의 지류가 飛渠(공중에 설치한 水槽)를 통해 성안으로 끌어들여지고 이 물길이 동쪽으로 가서 倉池를 만드는데 창지는 未央宮 서쪽에 있다. 창지에 漸臺가 있는데 漢나라 병사가 떨쳐 일어날 때 王莽이 이 점대에서 죽었다.”라고 하였다. 좌우 수행원들에게 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는 자가 없었는데, 소작을 불러 물으니, 소작이 상세히 대답했다. 우문태가 기뻐하고 천지조화의 시작과 역대의 흥망 자취에 대해 묻자, 소작이 물 흐르듯이 대답했다.
결국 밤늦게까지 붙들고서 政事에 대해 묻고 누워서 그의 말을 들었는데, 소작이 정사의 요체에 대해 진술하자, 우문태가 벌떡 일어나 衣冠을 정제하고 반듯하게 앉아 저도 모르게 무릎이 자리 앞으로 나아가며 새벽까지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싫증 내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주혜달에게 말하기를, “소작은 참으로 기특한 인물이오. 그에게 정사를 맡기겠소.” 하고 즉시 左丞에 임명하여 기밀 사무를 관장하게 하니, 이로부터 총애와 대우가 나날이 높아졌다.
소작이 비로소
그리고 계산 장부와 호적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는데, 후대 사람들이 대부분 이를 따라 사용했다.
注+② ‘計帳’은 이듬해 課役(賦稅)의 큰 수치를 적어 度支(탁지)에 보고한 내용이다. ‘戶籍’은 戶口를 정리한 문서이다.昆明池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