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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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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年(B.C. 71)
경술년(B.C. 71)
三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본시本始 3년이다.
봄 정월에 대장군 곽광霍光의 아내인 이 〈여의女醫를 시켜 독약을 올려〉 황후皇后 허씨許氏를 시해하였다.
霍光 夫人顯 欲貴其小女成君호되 道無從注+道, 猶路也. 從, 由也. 言無由得貴其女也.이러니 許氏當娠하여注+娠, 通作身.하니
[目] 이때에 곽광霍光의 아내인 이 자신의 어린 딸인 곽성군霍成君을 귀하게 만들고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는데,注+와 같고 은 말미암음이니, 〈“도무종道無從”은〉 그 딸을 귀하게 할 방법이 없음을 말한다. 마침 황후 허씨許氏가 임신하여 병을 앓고 있었다.注+과 통한다.
女醫淳于衍者 霍氏所愛
여의女醫순우연淳于衍곽씨霍氏가 친애하는 자였다.
嘗入宮侍疾할새 謂衍曰 將軍 素愛成君하여 欲奇貴之하시니 今皇后當免身하니 若投毒藥去之하면 成君 卽爲皇后矣注+去, 謂除去皇后也.리니
일찍이 궁중에 들어가 황후의 병을 간호하였는데, 이 순우연에게 이르기를 “장군이 평소 성군成君을 사랑하여 특별히 귀하게 만들고자 하시는데, 지금 황후께서 분만[면신免身]을 하게 되었으니, 독약을 투입하여 황후를 제거한다면 성군成君이 바로 황후가 될 것이다.注+황후皇后를 제거함을 이른다.
如蒙力事成이면 富貴共之호리라
만일 그대의 도움으로 일을 성공한다면 부귀를 함께할 것이다.” 하였다.
卽擣附子하여 齎入長定宮注+附子與天雄‧烏喙, 同出一種, 有大毒. 하여
순우연은 즉시 부자附子를 갈아 그 가루를 가지고 장정궁長定宮으로 들어갔다.注+부자附子천웅天雄, 오훼烏喙와 한 종류에서 나왔으니, 강력한 이 있다.
皇后免身後 取附子하여 幷合太醫大丸하여 以飮皇后注+太醫, 少府屬官也. 晉灼曰 大丸, 今澤蘭丸之類. 飮, 去聲.한대 有頃 曰 我頭岑岑也로라
황후가 분만한 뒤에 순우연이 부자附子태의太醫가 만든 대환大丸과 섞어서 황후에게 마시게 하자,注+태의太醫소부少府에 소속된 관원이다. 진작晉灼이 말하기를 “대환大丸은 지금의 과 같은 따위이다.” 하였다. (마시게 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잠시 후에 황후가 묻기를 “내 머리가 아프다.
藥中 得無有毒注+岑岑, 痺悶之意.고하니 對曰 無有니이다
약 안에 독이 있는 게 아닌가?”注+잠잠岑岑은 마비되고 답답함을 뜻한다. 하였으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遂加煩懣崩하다
그러나 마침내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심해져서 하였다.
有人上書하여 告諸醫侍疾無狀者어늘 皆收繫詔獄하니
[目] 뒤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황후의 병환을 간호한 여러 의원들의 추악한 짓을 고발하였으므로 모두 체포하여 조옥詔獄에 가두었다.
恐急하여 卽具語光曰 旣失計爲之하니 無令吏急衍하라
은 두렵고 다급하여 즉시 곽광霍光에게 그 일을 자세히 말하고서, “이미 실수를 저질렀으니, 옥리獄吏순우연淳于衍을 다그치지 않게 하십시오.” 하였다.
大驚하여 欲自發擧로되 不忍注+不忍, 謂不忍發其弑逆之事.이러니 奏上 署衍勿論注+上, 時掌切. 署者, 題其奏後也.하다
곽광은 크게 놀라서 이 사건을 직접 고발하고자 하였으나 차마 하지 못했는데,注+불인不忍”은 시역弑逆한 일을 차마 발설하지 못함을 이른다. 옥리가 이 옥사를 아뢰는 글을 올리자, 아뢰는 글의 뒷면에 ‘순우연을 논죄하지 말라.’고 써서 서명하였다.注+(올리다)은 시장時掌이다. 상주上奏한 글의 뒤에 이름을 쓰는 것이다.
因勸光하여內其女入宮하니라
은 이로 인하여 곽광에게 권해서 자기 딸을 궁으로 들여보내게 하였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弑天下之母어늘 而光不發覺하니 則是與聞乎弑矣
이 천하의 국모國母를 시해하였는데 곽광霍光이 고발하지 않았으니, 이는 시해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
欲免於禍 得乎哉
화를 면하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史稱沈靜詳審호되 乃至於此하니 富貴生不仁이니
역사책에서 곽광이 침착하고 조용하고 자세히 살폈다고 칭찬하였으나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으니, 부귀富貴불인不仁을 낳게 한 것이다.
可不戒哉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注+禮, 婦人從夫諡, 閔其見弑. 故兼二諡.하다
[綱] 공애황후恭哀皇后(허황후許皇后)를 두릉杜陵남원南園에 장례하였다.注+에 부인은 남편의 시호를 따르는데, 황후가 시해당한 것을 가엾게 여겼으므로 두 시호를 겸한 것이다.
◑ 夏五月 田廣明 有罪下吏하니 自殺하다
[綱] 여름 5월에 전광명田廣明이 죄가 있어 옥리獄吏에게 회부하니, 자살하였다.
封常惠하여 爲長羅侯하다
상혜常惠장라후長羅侯로 봉하였다.
匈奴聞漢兵大出하고 犇遠遁이어늘 五月 軍罷하다
[目] 흉노匈奴나라에서 군대를 크게 출동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 멀리 도망하니, 이에 5월에 군대를 해산하였다.
田順 不至期하고 詐增鹵獲注+不至期, 言不至所期之遠也. 初遣五將軍, 擊匈奴, 期以出塞各二千餘里. 田順八百餘里, 卽止兵不進. 故云.하고 廣明 知虜在前하고 逗遛不進이어늘
전순田順은 약속했던 먼 곳까지 출동하지 않았고 노획한 것을 거짓으로 부풀렸으며,注+부지기不至期”는 약속했던 먼 곳까지 출동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 다섯 장군을 보내어 흉노匈奴를 공격할 적에 변방에서 각각 2,000리를 나가도록 약속했었는데, 전순田順은 800여 리를 나간 뒤에 즉시 군대를 멈추고 전진하지 않았으므로 말한 것이다.전광명田廣明은 오랑캐가 앞에 있음을 알고 머뭇거리고 전진하지 않았다.
皆下吏하니 自殺하다
이에 모두 옥리獄吏에게 회부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니, 자살하였다.
烏孫昆彌自將五萬騎하여 與常惠 從西方入하여 獲名王, 騎將以下四萬級 馬牛羊驢七十餘萬頭하니 封惠爲長羅侯注+騎將, 匈奴官號, 倣中國以立名. 長羅侯國, 屬陳留郡. 하다
[目] 오손烏孫곤미昆彌가 직접 5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상혜常惠와 함께 서쪽을 따라 쳐들어가서 흉노匈奴기장騎將 이하 4만의 수급首級과 말과 소, 양과 나귀 등 70여만 마리를 노획하니, 상혜를 장라후長羅侯로 봉하였다.注+기장騎將흉노匈奴의 관명이니,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관명을 삼은 것이다. 장라후長羅侯의 나라는 진류군陳留郡에 속하였다.
於是 匈奴遂衰耗하니라
이에 흉노가 마침내 쇠약해졌다.
單于自將數萬騎하여 擊烏孫이러니 天大雨雪하여 一日深丈餘注+深, 式鴆切.하니 人畜凍死하여 還者不能什一이라
[目] 선우單于가 직접 수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오손烏孫을 공격하였는데, 마침 하늘에서 함박눈이 크게 내려 하루에 한 길이 넘게 쌓이니,注+(깊이)은 식짐式鴆이다. 사람과 가축이 얼어 죽어서 돌아온 자가 10분의 1도 되지 못하였다.
於是 丁令 乘弱攻其北注+令, 音零.하고 烏桓 入其東하고 烏孫 擊其西하여 所殺 數萬級이요
이에 정령丁令흉노匈奴가 약해진 틈을 타서 그 북쪽을 공격하고,注+은 음이 이다.오환烏桓은 동쪽으로 쳐들어가고 오손烏孫은 서쪽으로 쳐들어가서 공격하여 죽인 것이 수만 명의 수급首級이었다.
重以餓死하니 人民 什三이요 畜産 什五
겸하여 많이 굶어 죽으니, 인민人民은 10분의 3만 남았고 축산畜産은 10분의 5만 남았다.
諸國羈屬者皆瓦解하여 攻盜 不能理하니 滋欲鄕和親하여 而邊境少事矣注+重, 直用切. 羈屬, 猶羈縻也. 鄕, 讀曰嚮.러라
흉노에게 귀속했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와해되어 서로 공격하고 도둑질하는 것을 선우가 다스리지 못하니, 흉노가 점점 나라와 화친을 맺고자 하여 변경에 일이 적게 되었다.注+(또)은 직용直用이다. 기속羈屬기미羈縻라는 말과 같다. (향하다)은 으로 읽는다.
大旱하다
[綱] 크게 가물었다.
◑ 六月 丞相義卒커늘 以韋賢爲丞相하고 魏相爲御史大夫하다
[綱] 6월에 승상丞相 채의蔡義하였으므로 위현韋賢을 승상으로 삼고 위상魏相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 以趙廣漢爲京兆尹하다
[綱] 조광한趙廣漢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廣漢 爲潁川太守하니 潁川俗 豪桀 相朋黨이어늘 廣漢 爲缿筩하여 受吏民投書하여 使相告訐注+缿, 音項. 筩, 音同. 師古曰 “缿, 若今盛錢藏甁, 爲小孔, 可入而不可出. 或缿或筩, 皆爲此制, 而用受書, 令投於其中也.”하니 於是更相怨咎하여 姦黨散落하여 盜賊 不得發이라
[目] 처음에 조광한趙廣漢영천태수潁川太守가 되었을 적에, 영천潁川 지방의 풍속은 호걸들이 서로 붕당을 하였는데, 조광한이 투서함[항통缿筩]을 만들어서 관리와 백성들의 투서를 받아들여 서로 고발하게 하니,注+缿(병 모양의 투서함)은 음이 이고, (대통)은 음이 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였다. “缿은 지금의 돈을 넣어 보관하는 병(저금통)과 같으니, 구멍이 작게 뚫려 있어서 넣을 수는 있으나 꺼낼 수는 없다. 缿이나 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 글을 받아서 이 안에 넣게 한 것이다.” 이에 번갈아 서로 원망하고 잘못했다고 해서 간사한 무리가 흩어져 도적이 나오지 못하였다.
由是 入爲京兆尹하니라
이로 말미암아 들어와 경조윤京兆尹이 되었다.
廣漢 遇吏 殷勤甚備하고 事推功善하여 歸之於下하니 咸願爲用하여 僵仆無所避
[目] 조광한趙廣漢은 부하 관리들을 대할 적에 매우 간곡[은근殷勤]하게 하고 공로와 잘한 일을 미루어 아랫사람들에게 돌리니, 부하들이 모두 그에게 쓰이기를 원하여 설령 죽더라도 피하는 바가 없었다.
廣漢 皆知其能之所宜 盡力與否하여 其或負者 輒收捕之하여 無所逃하고 案之 罪立見이러라
조광한은 부하들의 능력에 합당한 바와 힘을 다하는 지의 여부를 모두 알아서, 혹 배신하는 자가 있으면 번번이 체포하여 도망하는 자가 없었고, 죄를 조사하면 죄가 당장 드러났다.
尤善爲鉤距以得事情注+鉤, 古侯切. 距, 臼許切. 鉤距者, 如釣鉤之有距, 呑之則順, 吐之則逆, 使人入其術中而不能出, 以鉤索其隱情也. 卽所謂設欲知馬價, 則先問狗, 已問羊, 又問牛, 然後及馬, 參伍其價, 以類相準, 知馬之貴賤, 不失實者 是也.하여 閭里銖兩之姦 皆知之注+銖兩, 喩至輕微也.하니 其發姦擿伏 如神注+擿, 他狄切. 動發之也. 伏, 隱也. 謂爲姦而隱匿者, 必爲擿發之也.이라
특히 정탐[구거鉤距]을 잘하여 사정을 알아내어注+(낚시 바늘)는 고후古侯이고 (갈고리)는 구허臼許이니, “구거鉤距”는 낚시 바늘에 갈고리가 있어 삼키면 순하고 토하면 거슬리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술책 가운데로 빠져들어 나오지 못하게 해서 숨겨진 실정을 정탐하는 것이다. 이른바 ‘만일 말[]의 값을 알고자 하면 먼저 개의 값을 묻고 다음에 양을 묻고 또 소를 물은 뒤에 말에게 미쳐서, 그 값을 서로 참고하고 대조하여 같은 종류끼리 기준해서 말 값의 높고 낮음을 알아 실정實情을 잃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여리閭里의 작은 간사함도 모두 발각하니,注+수량銖兩”은 지극히 경미함을 비유한 것이다. 간사한 일을 하고 숨기는 자들을 마치 귀신과도 같이 적발하였다.注+타적他狄로 발동하여 드러냄이고, 은 숨긴다는 뜻이니, 〈“발간적복發姦擿伏”은〉 간사한 짓을 하고서 감추는 자들을 반드시 적발해냄을 말한 것이다.
京兆政淸하니 長老傳以爲自漢興으로 治京兆者 莫能及이라하더라
이에 경조京兆의 정사가 깨끗해지니, 장로長老들이 전하여 말하기를 “나라가 건국된 이후로 경조京兆를 다스린 자 중에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한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大將軍光……弑皇后許氏 : “‘大將軍 霍光의 아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곽광이 황후를 시해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곽광이 이미 이 사실을 들었는데도 차마 드러내지 못했으니, 이는 황후의 시해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書大將軍光妻 何 與聞乎弑也 光旣聞之 不忍發擧 則是與聞乎弑矣]” 《書法》
“霍顯(霍光의 妻인 顯)의 부정한 계책이 어두운 가운데에 행해졌으니, 그 단서가 매우 은미하고 그 죄악이 매우 크다. 그러나 霍光이 처음에 이 일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 ‘大將軍 霍光의 아내’라고 곧바로 써서 霍光이 시해하는 일에 함께 참여한 것처럼 쓴 것은 어째서인가? 霍光이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가 뒤에는 마침내 알았으니, 만일 즉시 황후를 시해한 적을 토벌하고 이 일을 드러내어 그 죄를 바로잡은 뒤에 물러나 황제의 명이 내리기를 기다렸다면, 그래도 혹 스스로 죄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알고도 드러내지 않았으니, 이는 참으로 시해에 함께 참여한 것이니, 大惡의 죄를 면하려 하나 될 수 있겠는가? 直筆로 이 사실을 썼으니, 지나치게 폄하한 것이 아니다.[霍顯邪謀 行於幽闇之中 其端甚微 其惡甚大 然光初不聞其事 今直書大將軍光妻 若與聞之者 何哉 光始焉不知 後乃知之 儻能卽時討賊 發其事而正其罪 然後屛躬待命 猶或可以自免 旣知而不發 則是眞與聞矣 求免大惡之累 得乎 直筆書之 非過貶也]” 《發明》
역주2 澤蘭丸 : 澤蘭으로 만든 환약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택란은 한약재의 이름으로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맛이 쓰고 맵다.
역주3 葬恭哀皇后於杜陵南園 : “《西漢》(《前漢書》)에서는 황후를 ‘장례했다’고 쓰지 않았는데, 여기서 ‘장례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合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葬地)을 南園이라고 쓴 것이다. 이에 《資治通鑑》에는 쓰지 않았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특별히 쓴 것이다. 무릇 장례할 적에 땅을 쓴 것은 비판한 것이다.
장례를 올바른 땅에 하지 않았으면 땅을 쓰고, 祔葬(合葬)한 것이 바른 사람이 아니면 땅을 쓰고, 명칭이 올바른 명칭이 아니면 땅을 썼으니, 宣帝의 許后를 ‘杜陵南園’이라고 쓰고, 桓帝의 梁后를 ‘懿陵’이라고 쓰고, 唐나라의 郭太后를 ‘景陵의 곁’이라고 쓴 것은 바른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漢나라 哀帝의 傅太后를 ‘渭陵’이라고 쓰고, 唐나라 武氏(則天武后)를 ‘乾陵’이라고 쓴 것은 올바른 사람을 부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漢나라 和帝의 梁太后를 ‘西陵’이라고 쓰고 桓帝의 匽氏(언씨)를 ‘博陵’이라고 쓴 것은 올바른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니, 모두 妾母를 ‘陵’이라고 칭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황후의 장례에 땅을 쓴 것이 7번인데, 모두 비판한 것이다.[西漢后不書葬 此書葬 何 不合葬也 故地之書南園 於是通鑑不書 綱目特書之 凡葬書地 譏也 葬非其地 書地 祔非其人 書地 名非其名 書地 宣許后書杜陵南園 桓梁后書懿陵 唐郭太后 書景陵之側 非其地也 漢哀傅太后書渭陵 唐武氏書乾陵 非其人也 漢和梁太后書西陵 桓匽氏書博陵 非其名也 皆妾母稱陵 終綱目 后葬書地者七 皆譏也]” 《書法》
역주4 名王 : 匈奴의 諸王 가운데 名位가 높고 귀한 자를 이른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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