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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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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6권 하
晉 武帝 泰始 7년(271)~晉 武帝 咸寧 5년(279)
辛卯年(271)
晉泰始七年이요 吳建衡三年이라
春正月 晉匈奴右賢王劉猛叛走出塞하다
○晉豫州刺史石鑑有罪免하다
鑑坐擊吳軍 虛張首級하니 鑑曰 鑑備大臣하여 吾所取信이어늘 而乃下同爲詐하니
義得爾乎注+爾, 猶言如此也. 今遣歸田里하여 終身不得復用하라
吳人刁玄詐增讖文云 黃旗紫蓋 見於東南하니 終有天下者 荊揚之君注+江表傳曰 “玄使蜀, 得司馬徽論運命曆數事, 因詐增其文, 以誑吳人.”이라하니
吳主信之하여 大擧兵出華里하여 載太后及後宮數千人西上注+華里, 在建業西.이러니
行遇大雪하여 兵士寒凍殆死하니 皆曰 若遇敵이면 便當倒戈라한대 吳主乃還하다
夏四月 晉涼州胡叛이어늘 刺史牽弘討之敗死하다
大司馬陳騫言於晉主曰 胡烈牽弘 皆勇而無謀하고 強於自用하니 非綏邊之才也 將爲國恥라한대
晉主以爲騫與弘不協而毁之라하여 不信也러니 至是하여 烈旣敗死하고
弘討叛胡하니 胡與樹機能으로 攻弘殺之하니 征討連年 僅而能定하니 晉主乃悔之러라
秋七月 吳復取交趾하다
吳三攻交趾하여 皆敗沒이러니 至是하여 遣陶璜李勖等하여 擊取之하니
九眞日南 皆降이어늘 以璜爲交州牧이라 璜討降夷獠하니 州境皆平注+獠, 魯皓切. 夷獠皆羈屬交州者也.하다
冬十月朔日 日食하다
○十一月 劉猛寇晉幷州하다
諡曰思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6권 하
武帝 泰始 7년(271)~ 武帝 咸寧 5년(279)
辛卯年(271)
나라 世祖 武皇帝 司馬炎 泰始 7년이고, 吳主 孫皓 建衡 3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의 匈奴 右賢王 劉猛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쳐서 변경 밖으로 나갔다.
[] 나라 豫州刺史 石鑑이 죄를 지어 파직되었다.
[] 石鑑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 首級의 수를 거짓으로 늘린 일에 연루되자, 조서를 내리기를 “석감은 大臣의 지위에 있어 내가 신임을 하였는데 아랫사람과 함께 거짓을 고하였으니,
의리상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注+如此(이와 같다)라는 말과 같다. 지금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종신토록 다시 등용되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였다.
[] 吳主(孫皓)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華里遊幸하였는데, 가지 않고 돌아왔다.
[] 吳人 刁玄(조현)이 讖緯의 글을 날조하여 말하기를 “황색 깃발과 자주색 일산이 동남쪽에 보이니, 결국 천하를 차지할 사람은 荊州揚州의 군주이다.”注+에 이르기를 “刁玄蜀漢으로 사신을 갔다가 司馬徽가 운명과 曆數에 대해 논한 것을 얻어서는 그 글에 거짓 내용을 보태어 나라 사람을 속인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니,
吳主가 그 사실을 믿어 크게 군사를 일으켜 華里로 출병하여 太后後宮 수천 명을 수레에 태우고 서쪽을 향해 올라갔는데,注+華里建業의 서쪽에 있다.
행군하다가 폭설을 만나 병사들이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모두 말하기를 “만약 적을 만나면 라고 하니, 吳主가 마침내 회군하였다.
[] 여름 4월에 나라의 涼州에서 胡人이 반란을 일으키자, 刺史 牽弘이 그들을 토벌하다가 패배하여 죽었다.
[] 예전에 大司馬 陳騫晉主(司馬炎)에게 아뢰기를 “胡烈牽弘이 모두 용맹하기만 하고 智謀가 없는데 자기 생각만을 옳다고 고집을 부리니, 변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재목이 아니라 앞으로 나라의 수치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晉主가 진건이 견홍과 마음이 맞지 않아 그를 비방한다고 생각하여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호렬은 이미 패배하여 죽었고,
견홍이 반란을 일으킨 胡人을 토벌하였는데, 胡人禿髮樹機能과 연합하여 견홍을 공격하여 죽였다. 몇 해를 이어 토벌을 하고서야 겨우 안정을 찾게 되니, 晉主가 그제야 후회를 하였다.
[] 가을 7월에 나라가 다시 交趾를 취하였다.
[] 나라가 세 차례나 交趾를 공격하여 모두 패배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陶璜李勖 등을 보내어 공격하여 취하게 하니,
九眞郡日南郡이 모두 항복하자 도황을 交州牧에 임명하였다. 도황이 夷獠를 토벌하여 항복시키니 交州境內가 모두 평정되었다.注+魯皓이다. 夷獠는 모두 交州에 귀속된 종족이다.
[] 겨울 10월 朔日에 일식이 있었다.
[] 11월에 劉猛나라의 幷州를 침범하였다.
[] 나라의 安樂公 劉禪하였다.
[] 시호는 이다.


역주
역주1 吳主大擧兵遊華里 不至而還 : “遊幸에는 ‘大擧兵’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직 없었는데 ‘大擧兵’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들을 고생시킨 것을 나무란 것이다. 漢나라 明帝 篇에 ‘명제가 河內에 가다가 가지 않고 돌아왔다.[不至而還]’라고 한 것은 善을 따름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여기에서 ‘가지 않고 돌아왔다.[不至而還]’라고 한 것은 아름답게 여긴 것인가. 위태롭게 여긴 것이다. 이때에 큰 눈이 내려 병사들이 추위로 거의 얼어 죽게 되자, 모두 말하기를 “적을 만나면 바로 창을 거꾸로 돌려 공격하겠다.”라고 하자 吳主가 마침내 돌아왔다. ≪資治通鑑綱目≫에서 遊幸에 ‘不至’라고 기록하고 ‘不果’라고 기록한 것은 모두 아름답게 여긴 것인데, 오직 여기에서는 위태롭게 여기는 뜻이다.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遊幸에 ‘不至’라고 기록한 것이 두 번이다.(漢 明帝 永平 4년과 이해) ‘不果行(결국 가지 않았다.)’이라고 기록한 것이 1회이다(唐 高宗 總章 2년(669)).[遊未有書大擧兵者 書大擧兵 何 譏勞人也 漢明帝之篇 書帝如河內 不至而還 美從善也 此書不至而還 其美之歟 危之也 於是大雪 兵士寒凍殆死 皆曰 遇敵便當倒戈 吳主乃還 綱目遊幸 書不至 書不果 皆美也 惟此爲危辭 終綱目 遊幸書不至二(漢明帝永平四年 是年) 書不果行一(唐高宗總章二年)]” ≪書法≫
“병사는 국가의 중요한 일이니 가벼이 움직여서야 되겠는가. ≪資治通鑑綱目≫에서 위에 ‘大擧兵’이라고 기록하고 ‘遊華里’라고 기록하였으니, 吳主는 병사에 관한 일을 놀이로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兵者 國之重事 其可輕動乎 綱目上書大擧兵 書遊華里 則吳主以兵爲戱 蓋可知矣 其不亡得乎]” ≪發明≫
역주2 江表傳 : 西晉 사람 虞溥가 撰한 책으로 산실되었는데, ≪三國志≫ 裴松之 注에 일부가 보인다. 양자강 이남인 江表를 묘사한 작품이다.
역주3 창을……것이다 : 창끝을 돌려서 거꾸로 자기 군대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書經≫ 〈周書 武成〉에 周 武王이 牧野에서 殷나라 紂王의 군대와 싸울 적에, 殷나라 군사들이 周나라를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편을 공격한 덕분에 크게 승리했던 일이 보인다.
역주4 晉安樂公劉禪卒 : “‘卒’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晉나라가 厚德함을 보존한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때는 蜀漢이 망한 지 8년이 지난 뒤였다.[書卒 何 予存厚也 於是漢亡八年矣]” ≪書法≫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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