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유사有司가 남월南越에 철기鐵器를 관시關市하는 것을 금지시킬 것을 청하였는데,注+한漢나라가 변방 관문에서 만이蠻夷와 통상通商하는 것을 관시關市라고 이른다.
남월왕南越王이 말하기를, “이는 필시 장사왕長沙王(오예吳芮)의 계책일 것이니, 중국中國에 의지하여 남월南越을 격멸擊滅하고 이곳까지 차지하여 왕 노릇 하고 자기의 공功으로 삼으려는 것이다.”라 하고,
마침내 스스로 ‘남월南越의 무제武帝’라고 칭하고는 장사長沙를 공격하여 여러 현縣을 패배시키고 떠나갔다.
綱
[綱] 가을 8월에 회양왕淮陽王강彊이 졸卒하자, 태후太后가 무武를 세워 회양왕淮陽王으로 삼았다.
綱
[綱] 처음으로 수졸戍卒들을 해마다 바꾸게 하였다.注+경更(바꾸다, 교대하다)은 공형工衡의 절切이다. 진秦나라가 백성들을 가혹하게 부려서 수졸戍卒이 몇 해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1년마다 바꾸게 한 것이다.
역주
역주1秋八月……爲淮陽王 :
“呂氏가 권력을 독점해서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封爵을 행하였다. 그러나 呂台를 세워 王으로 삼았는데, 1년이 지나자 ‘卒’이라고 썼고, 彊과 不疑가 봉함을 받음에 이르러서도 비록 억지로 孝惠帝의 아들이라고 이름하였으나 또한 서로 이어 죽었으니, 하늘의 뜻이 이와 같이 분명한데도 여씨가 일찍이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을 책에 자세히 쓴 것은 다만 여씨가 조정을 어지럽힌 자취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또한 天道가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呂氏擅權 用私意而行封爵 然呂台方立 閱一載而書卒 至於彊不疑之受封 雖彊以孝惠子名之 亦且相繼告殞 天意昭然若此 而呂氏曾不之悟 詳書于冊 不特見呂氏亂朝之迹 亦以見天道不遠之意云]” 《發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