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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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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申年(B.C. 49)
임신년(B.C. 49)
黃龍 元年注+黃龍見廣漢郡, 故改元.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황룡黃龍 원년이다.注+황룡黃龍광한군廣漢郡에 나타났으므로 개원改元한 것이다.
匈奴呼韓邪單于 來朝하다
[綱] 봄에 흉노匈奴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와서 조회하였다.
郅支徙居堅昆하다
질지선우郅支單于견곤堅昆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郅支聞漢助呼韓邪하고 自度力不能定匈奴하여 欲與烏孫幷力이러니 烏孫 殺其使하고 遣騎迎之한대 郅支覺其謀하고 擊破烏孫, 烏揭, 丁令, 堅昆而幷之하고 留都堅昆하니 去單于庭 七千里注+烏揭ㆍ堅昆, 皆西域國名. 堅昆, 在伊吾西, 焉耆北, 人皆赤髮綠睛.러라
[目] 질지선우郅支單于나라가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돕는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힘이 흉노匈奴를 평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오손烏孫과 힘을 합치려 하였는데, 오손이 질지郅支가 보낸 사신을 죽이고 기병騎兵을 보내어 대적하자, 질지는 오손의 계책을 깨닫고는 오손烏孫오게烏揭, 정령丁令견곤堅昆을 격파하여 겸병하고 견곤에 머물러 도읍하니, 선우정單于庭과의 거리가 7,000리였다.注+오게烏揭, 견곤堅昆은 모두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다. 견곤堅昆이오伊吾의 서쪽 언기焉耆의 북쪽에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머리털이 붉고 눈동자가 푸르다.
三月 有星孛于王良閣道하여 入紫微宮注+王良五星, 在奎北河中, 主天馬. 閣道六星, 在王良北. 飛閣之道, 天子欲遊別宮之道. 紫微中宮, 天極星所居, 三公ㆍ后妃ㆍ將相ㆍ百官皆在其中, 環之匡衛十二星藩臣, 謂之紫微垣.하다
[綱] 3월에 패성孛星왕량王良각도閣道에 나타나서 자미궁紫微宮으로 들어왔다.注+왕량王良의 다섯 별은 규성奎星 북쪽 은하수 가운데에 있으니 천마天馬를 주관하고, 각도閣道의 여섯 별은 왕량의 북쪽에 있다. 비각飛閣의 길[각도閣道]은 천자天子별궁別宮에 유람하고자 하는 길이다. 자미중궁紫微中宮천극성天極星(제좌성帝座星)이 머무는 곳이니, 삼공三公후비后妃, 장수와 정승, 백관百官들이 모두 이 가운데에 있고, 그곳을 둘러싸고 보위하는 열두 별의 번신藩臣자미원紫微垣이라 한다.
◑ 帝寢疾하여 以史高爲大司馬車騎將軍하고 蕭望之爲前將軍光祿勳하고 周堪爲光祿大夫하여 하고 領尙書事注+漢尙書, 職典樞機, 凡諸曹文書衆事, 皆由之. 自是之後, 凡受遺輔政, 皆領尙書事, 至東都, 曰錄尙書事.하다
[綱] 황제皇帝의 병세가 위독하므로 사고史高대사마大司馬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고 소망지蕭望之전장군前將軍 광록훈光祿勳으로 삼고 주감周堪광록대부光祿大夫로 삼아,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고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注+나라의 상서尙書는 직책이 추기樞機를 관장하여 여러 의 문서와 모든 일이 다 상서尙書를 경유하였다. 이 뒤로 무릇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를 보필할 적에 모두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했었는데, 동한東漢 시대에 이르러 녹상서사錄尙書事라 하였다.
冬十二月 帝崩注+壽四十三.하다
[綱] 겨울 12월에 황제가 하였다.注+향년이 43세였다.
班固曰
[目]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孝宣之治 信賞必罰하고 綜核名實注+綜, 子宋切, 核, 與覈同, 相參錯爲綜, 不虛拘爲核.하여 政事文學法理之士 咸精其能注+法理, 謂斷獄聽獄也.하고
효선제孝宣帝의 정치는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시행하며, 명분과 실제를 이리저리 참고하고 속속들이 밝혀注+자송子宋이고 과 같으니, 서로 번갈아 참고하는 것을 이라 하고, 헛되고 부실한 것에 구애되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정사와 문학, 법리法理의 선비가 모두 그 재능을 다하였다.注+법리法理옥사獄事를 결단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것을 이른다.
至于技巧工匠器械하여 自元成間으로 鮮能及之注+械者, 器之摠名也. 一曰 “有盛爲器, 無盛爲械.”하니 亦足以知吏稱其職하고 民安其業也
기교技巧공장工匠기계器械에 이르러서도 원제元帝성제成帝 이후로 능히 미칠 자가 적으니,注+기구器具를 통틀어 말한다. 일설에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것을 라 하고, 담을 수 없는 것을 라 한다.” 하였다. 또한 관리는 그 직책에 걸맞고 백성은 그 생업을 편안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遭値匈奴乖亂하여推亡固存하여 信威北夷注+推, 吐雷切. 帝朝呼韓邪而固存之, 走郅支, 使遠遁焉, 故云推亡固存. 信, 讀曰伸.하니 單于慕義하여 稽首稱藩이라
흉노匈奴가 자기들끼리 괴리되고 혼란한 때를 만나서 망하려는 자를 밀쳐내고 보존한 자를 견고히 해서 위엄을 북쪽 오랑캐에 펼치니,注+(밀쳐내다)는 토뢰吐雷이다. 선제宣帝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조회 오게 하여 굳게 보존시켜 주었고, 질지선우郅支單于를 패주시켜서 멀리 도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추망고존推亡固存(망하는 자를 밀쳐내고 보존한 자를 굳게 했다.)”이라고 말한 것이다. (펼치다)은 으로 읽는다.선우單于가 의리를 사모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번신藩臣을 칭하였다.
功光祖宗하고 業垂後嗣하니 可謂中興하여 侔德殷宗周宣矣注+殷高宗ㆍ周宣王, 皆中興之主, 今宣帝之德, 蓋與侔齊也.로다
그리하여 조종祖宗에 빛나고 후사後嗣에 드리우니, 중흥中興하여 나라의 고종高宗나라의 선왕宣王에 비견할 만하다.”注+ 지금 선제宣帝이 이들과 비등한 것이다.
太子奭 卽位하여 尊皇太后曰라하고 皇后曰皇太后注+元平元年, 已書宣帝尊上官后, 曰太皇太后, 此年再書, 疑羨. 一說 “宣帝卽位, 嘗尊爲太皇太后矣, 元帝視之, 則曾祖母也. 於是, 復稱皇太后, 而書尊曰太皇太后者, 豈太皇太后之上, 無以稱之. 故云爾歟.”라하다
[綱] 태자太子 이 즉위하여 황태후皇太后를 높여 태황태후太皇太后라 하고, 황후皇后황태후皇太后라 하였다.注+원평元平 원년元年(B.C. 74)에 이미 선제宣帝를 높여 태황태후太皇太后라고 했다고 썼는데, 이해에 다시 쓴 것은 연문衍文인 듯하다. 일설에 “선제宣帝가 즉위하여 일찍이 높여서 태황태후라고 하였는데, 원제元帝의 입장에서 보면 증조모曾祖母가 된다. 이에 다시 황태후皇太后라 칭하고 높여서 태황태후라고 쓴 것은, 아마도 태황태후 위에 더 이상 존칭할 것이 없으므로 이렇게 칭했는가 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受遺詔輔政 : “武帝 말년에 처음으로 ‘遺詔를 받았다.’고 썼었는데, 이때에 다시 보인다. 이로부터 東漢(後漢)의 세대를 지날 때까지 쓴 적이 없었고, 昭烈皇帝의 말년에 이른 뒤에야 썼다. 賀善贊이 말하였다. ‘宣帝는 엄격함을 숭상했다고 이름났으나, 이 篇 가운데 백성들에게 너그럽게 하고 구휼한 정사를 쓴 것이 4번이다. 祖父母와 父母의 喪이 있으면 부역을 시키지 말도록 명령하였고, 자식이 부모를 숨겨주고 아내가 남편을 숨겨주고 손자가 조부모를 숨겨준 것을 모두 치죄하지 말도록 명령하였고, 郡國으로 하여금 볼기를 맞고 옥중에서 죽은 죄수의 숫자를 해마다 올리게 하여 이를 가지고 考課(殿最)를 정하도록 명하였고, 나이 80세 이상은 誣告한 경우가 아니면 연좌하지 말도록 명하였으니, 측은한 마음이 발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애석하다. 鳳凰을 믿고 碧雞의 神에 미혹되고, 趙廣漢ㆍ楊惲ㆍ韓延壽의 죽음에 殺을 씀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資治通鑑綱目》에서 賢者에게 완비하기를 요구한 뜻이다.’[武帝之末 始書受遺詔 於是再見 自是歷東漢之世 無書者 至昭烈之末而後書 賀善贊曰 宣帝號尙嚴 而篇中書寬恤之政四 詔有大父母父母喪勿繇 詔子匿父母 妻匿夫 孫匿大父母 皆勿治 令郡國歲上繫囚掠笞瘐死者 以課殿最 詔年八十以上 非誣告人 勿坐 謂非惻隱之發乎 惜夫 信鳳皇 惑碧雞 而趙楊韓之死 不免書殺 此綱目所以責賢者之備也]” 《書法》
역주2 殷나라……군주이니 : 殷나라의 高宗은 이름이 武丁으로 명재상인 傅說(부열)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殷나라를 중흥시켰으며, 周나라의 宣王은 이름이 靖으로 厲王의 아들인데, 父王의 폭정을 뒤이어 仲山甫 등의 賢相을 얻어 周나라를 중흥시켰다.
역주3 太皇太后 : “太皇太后는 누구인가? 昭帝의 皇后인 上官氏이다. 아래에 ‘太皇太后 上官氏가 崩했다.’라고 쓴 것을 근거해보면 宣帝가 즉위하여 일찍이 높여 ‘태황태후’라고 한 것이니, 元帝에게는 曾祖母가 된다. 그런데 이때 다시 ‘皇太后’라고 칭하고 높여 ‘태황태후’라고 쓴 것은 아마도 태황태후의 위에는 더 이상 칭할 만한 존칭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太皇太后 何 昭后上官氏也 據下書太皇太后上官氏崩 宣帝卽位 嘗尊爲太皇太后矣 元帝視之 則曾祖母也 於是復稱皇太后 而書尊曰太皇太后者 豈太皇太后之上 無以稱之故云爾歟]” 《書法》
역주4 上官后 : 上官은 復姓으로 昭帝의 后妃인바, 元平 원년 昭帝가 崩하고 宣帝가 즉위하여 太皇太后로 높였으며, 아래 元帝 建昭 2년(B.C. 37) 閏8월에 “太皇太后 上官氏가 崩했다.”라고 보인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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