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秋는 魯史之舊名也요 編年은 魯史之舊制也요 策書는 魯史之舊文也라
本天道以正人事하고 本王道以正伯圖하며 嚴君臣辨內外하고 懲惡而勸善하니 其要歸於撥亂世反諸正하야 筆則筆 削則削하니 非聖人이면 孰能作之아
自聖經孤行으로 三家各以所聞爲傳호대 舛誤異同이 不能盡合於聖人之意하니 學者病之라
然其大經大法은 所以建諸天地而不悖하고 質諸鬼神而無疑하고 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니 固非專門名家之流所能揜蔽之也라
粤自紀傳創興
으로 而編年之法
이 廢
하고 細大不捐
하고 猥釀不綱
하야 而策書之法
이 廢
하고 是非去取
其一隅之見
하야 不能不謬於聖人而懲勸之法
이 又廢矣
라
獨司馬公이 處史法廢墜之餘하야 超然遠覽하고 推本荀悅漢紀하야 以爲資治通鑑一書하니 凡一千三百六十二年之事를 珠貫繩聯하야 粲然可考
以相附近하야 廣記備言하고 曲暢旁通하며 包括旣衆하고 前後相承하야 若長江大河 順流東趨하니 雖欲盡爲界限이나 而莫可得이라
蓋其詳은 固未易記識이요 而其大要도 亦未易以槪擧也라
至於帝曹魏而寇蜀漢
과 帝朱梁而寇河東
과 繫武后之年
과 黜中宗之號
와 與夫屈原四晧之見削
과 揚雄荀彧之見取
하야 若此類
는 其於春秋懲勸之法
에 又若有未盡
者
니 此
綱目之所爲作也
라
踵編年之成文하고 還策書之舊制하야 一年之內에 綱別其條하고 一條之下에 採摭其要하야 井井有條하야 如指諸掌이라
細故浮辭는 固就刊削하고 至言確論은 複多增補하니 簡而周하고 詳而整이라
綱倣春秋而參取群史之良하고 目倣左氏而稽合諸儒之粹하니
至於大經大法則一本於聖人之述作하야 使明君賢輔로 有以昭其功하고 亂臣賊子로 無所逃其罪요
而凡古今難制之變과 難斷之疑를 皆得參驗稽決하야 以合於天理之正人心之安하고 而後世權謀術數利害苟且之私 一毫無得參焉하니
況於兼策牘之制하고 會文質之中하야 不使孤行以啓後世異同之說하니 其亦毫髮無遺恨矣라
且託始而迷先幾는 齋居感興에 亦旣言之矣라 今而不易은 何也오하니
曰 事記之書는 用馬遷之法者也라 故續獲麟而無嫌이나 綱目之書는 本春秋之旨者也라 故續獲麟而不可하니
自有史冊而有春秋하고 自有春秋而有通鑑하고 有通鑑而有綱目하니
其間에 蓋欲晩歲稍加更定하야 以趨詳密이나 而力有未暇焉者라
然其大經大法之所存은 是豈秦漢以後에 操觚執簡之士 所能歷其庭而涉其級哉아
試吏南來에 負以與俱러니 會建安眞侯德秀惠臨此邦하야 暇日에 取而讀之하고 喟然歎曰 大哉深乎여
爲人君而通此書하면 足以明德威之柄하고 燭治亂之原이요 爲人臣而通此書하면 足以守經事之正하고 達變事之權이니
慨郡計堇堇無乏하야 乃相與隱覈滲漏之餘財하고 復求寺正君新校之本하야 參定而鋟諸木하니
於是에 亟以告諸朝廷하야 請上其板于成均하야 以給四方之求하고 且庶幾乎轉以上聞이라
昔者竊聞之호니 二程子倡明斯道하사 以續絶學之傳이나 其於史事에 若未數數然也라
然伯子讀漢書에 未嘗輒遺一字하고 叔子每觀史至半에 必掩卷思其成敗하고 其有不合이면 又復深思하야 研精若此하니 豈有他哉아
至於此書之成하야는 義正而法嚴하고 辭覈而旨深하며 陶鎔歷代之偏駁하고 會歸一理之純粹하며 振麟經之墜緖하고 垂懿範於將來하니 蓋斯文之能事備矣라
使司馬公見之면 必將心滿意愜하야 有起予之歎이리라
而王氏高談性命하고 絶滅史學하야 卒稔夷狄之禍하니 君子所以深誅而不聽者也라
雖然이나 五經備而後春秋作하니 五經言其理하고 春秋言其用이라
子朱子首釋四
하야 以示入道之要
하고 次及諸經
하니 而後可以讀此書焉
이라
學者必循序而學之然後에 本末兼該하고 內外融貫하야 其於學之全體大用에 儻庶幾乎라
苟不揣其本而齊其末하고 不養其內而急其外하야 遽以此書爲先이면 夫豈不足措之事業이리오 終不若體用兩全之爲純且懿也라
而著書之凡例와 立言之異同은 又附列於其後하야 使覽者得考焉이라
嘉定己卯冬十月庚午에 門人 文林郞 泉州觀察推官 李方子는 謹書하다
《
춘추春秋》는
노사魯史의
구명舊名이고,
편년編年은
노사魯史의
구제舊制이며,
는
노사魯史의
구문舊文이다.
부자夫子(孔子)는 전술傳述만 하고 새로 창작創作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춘추》를 창작하였다고 말하는가.
이는 그 사건은 전술하였으나 그 의리는 창작하였기 때문이다.
천도天道에 근본하여 인사人事를 바로잡고 왕도王道에 근본하여 백도伯圖(霸業)를 바로잡으며, 임금과 신하를 엄히 하고 안과 밖을 분별하며 악惡을 징계하고 선善을 권장하였으니, 그 요점은 난세亂世를 다스리고 정상正常을 회복하는 데 귀결되어 가필加筆할 곳은 가필하고 산삭刪削할 곳은 산삭하였으니, 성인聖人이 아니면 누가 능히 그것을 창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춘추》는 사서史書인데도 경經이라 하는 것이다.
성경聖經이 홀로 세상에
유전流傳되면서부터
가 각각 들은 바로
전傳을 지었으나, 어그러지고 잘못되며 일치하지 않아 성인의 뜻에 모두 합하지 못하니 학자들이 병통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대경대법大經大法은 천지天地에 세워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귀신鬼神에게 질정質正하여도 의심이 없으며, 백세百世에 성인聖人을 기다려도 의혹疑惑되지 않는 것이니, 진실로 전문명가專門名家라는 자들이 엄폐掩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전체紀傳體가 만들어진 뒤부터 편년체編年體의 법이 폐지되었고,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버리지 아니하고 함부로 뒤섞이고 기강이 없어서 책서策書의 법이 폐지되었으며, 시비是非와 거취去取가 한 쪽의 견해로 말미암아 성인聖人에게 잘못되지 않음이 없으니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법이 또한 폐지되었다.
오직
사마공司馬公만이
사법史法이 폐지되어 사라진 시기에 살면서 초연히 멀리 내다보고
의 《
한기漢紀》에서 근원을 연구하여 《
자치통감資治通鑑》 1책을 편찬하였는데, 모두 1,362년 동안의 일을 유려한 문장으로 잘 연결하여
찬연粲然하게 고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춘추春秋》의 편년의 법이 비로소 회복되었으니 그 공적이 훌륭하다고 하겠다.
책서策書의 법과 같은 것은 공이 일찍이 《계고록稽古錄》을 저술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비슷하여 널리 기록하고 말을 갖추어서 조리가 분명하고 널리 통하며, 포괄한 것이 많고 전후가 서로 이어져서 마치 장강長江과 대하大河처럼 순탄하게 동쪽으로 흘러가니, 비록 한계를 구분하려고 하나 할 수 없다.
대개 그 상세함은 참으로 쉽게 기록할 수 없으며 그 대요大要 또한 쉽게 대략을 거론할 수가 없다.
조위曹魏를 황제로 하고
촉한蜀漢을
구적寇賊으로 삼은 것과
을 황제로 하고
을 구적으로 삼은 것,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연호年號를 사용한 것,
중종中宗의 연호를 배척한 것,
굴원屈原과
사호四皓의 일이 삭제된 것,
양웅揚雄과
순욱荀彧의 일이 채택된 것 등 이와 같은 사례는 《춘추》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법에 대하여 또한 완전히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주자朱子가 《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지은 까닭이다.
편년編年의 성문成文을 계승하고 책서策書의 구제舊制를 복원하여 1년의 기간에 강綱은 그 조목으로 구별하고 1조목의 아래에 그 요점을 채록하여 정연하게 조리가 있는 것이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았다.
사소한 일과 허황된 말은 깎아내고 지극한 말과 명확한 의론은 더 많이 증보하니, 간략하면서도 주밀하고 상세하면서도 정리되었다.
강綱은 《춘추春秋》를 모방하여 여러 사서史書의 좋은 점을 참고하여 취하였고, 목目은 좌씨左氏를 모방하여 여러 유자儒者의 좋은 것을 고찰하여 모았다.
대경대법大經大法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성인이 술작述作하신 뜻에 근본하여 명군明君과 현보賢輔로 하여금 그 공적을 빛나게 하고, 난신亂臣과 적자賊子로 하여금 그 죄를 피할 곳이 없게 하였다.
그리고 무릇 고금古今의 제어하기 어려운 변란과 판단하기 어려운 의문을 모두 조사하고 결정하여 천리天理의 바름과 인심人心의 편안함에 합당하게 하고, 후세의 권모술수權謀術數와 이해利害에 구차한 사사로움이 터럭만큼도 참여함이 없게 하였다.
이는 《춘추》를 계승하여 저술한 것으로 이 책처럼 성대한 것이 없다.
하물며 책독策牘의 제도를 겸하고 문文‧질質의 중도中道를 모아서 단독으로 간행되어 후세에 이동異同의 말이 나오지 않게 하였으니, 그 또한 터럭만큼도 유한遺恨이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책을 지으면서 어찌하여 《춘추春秋》의 뒤를 이어 서술하지 않았는가?
이 《
대사기大事記》를 저술할 때 참으로
의 뒤를 이어서 서술하였고,
또
시작始作을
의탁依託하면서
선기先幾에 어두웠다는 말은
이라는
시詩에서
주자朱子가 이미 언급하였는데 지금 바꾸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니,
답하기를 “《대사기》는 사마천司馬遷의 법을 사용한 것이므로 획린獲麟에 이어서 서술하는 것은 혐의가 없지만,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춘추》의 뜻을 본받았으므로 획린獲麟에 이어서 서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책史冊이 생기고서 《춘추》가 있었고, 《춘추》가 있고 나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었고, 《자치통감》이 있고 나서 《자치통감강목》이 있었다.
그 사이에 대체로 만세晩歲에 조금 더 갱정更定하여 상밀詳密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힘이 거기에 미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 대경대법大經大法이 있는 바이니 이는 어찌 진한秦漢 이후에 붓을 잡고 글을 쓰는 사람이 능히 그 문정門庭을 지나 그 단계에 이르렀겠는가.”라고 하였다.
지난
(1210)에 내가 비로소
사자嗣子에게서 이 책을 전수받고 마음으로 신봉하였다.
관직을 맡아 남쪽으로 오면서 그 책을 가지고 왔는데, 마침
건안建安의
가 우리 고을에 왔으므로 한가한 날에 그 책을 읽고는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기를, “크고 깊도다.
인군人君이 되어서 이 책을 통달하면 충분히 덕위德威의 근본을 밝히고 치란治亂의 근원을 살필 수 있고, 인신人臣이 되어서 이 책을 통달하면 충분히 경사經事의 정도正道를 지키고 변사變事의 권도權道를 이룰 수 있다.
대개 이치를 궁구하여 그 쓸모를 다하는 일을 모두 종합한 것으로 만세萬世 사필史筆의 법도가 되는 준승準繩과 규구規矩이다.”라고 하였다.
군郡의 살림이 겨우겨우 부족함을 면한 것을 개탄하면서 이에 서로 쓸데없이 사용되는 예산을 조사하여 모으고, 다시 시정군寺正君의 새로 교정한 책을 구하여 참고하고 확정하여 목판에 새겼다.
대체로 위로는 을야乙夜(2更)에 관람觀覽하시는데 도움이 되게 하고 아래로는 학자學者들이 강명講明하는데 보탬이 되게 하였다.
해를 넘겨 책을 완성하였는데, 진후眞侯는 체직되어 강우江右 지역을 다스렸는데, 군대를 거느리고 장차 떠나려 하였다.
이에 빨리 조정에 알리고 그 판목板木을 성균관成均館에 올려보내 사방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청하였으며, 또 소문이 나서 임금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하였다.
또 나에게 이 책을 판각하게 된 까닭을 서술하게 하였는데, 내가 참으로 사양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삼가 들으니, 두 정자程子께서 사도斯道를 창명倡明하여 끊어진 학문의 전통을 이었으나,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일에 대해서는 급급하게 여기지 않으신 것처럼 하셨다.
그러나 백자伯子(程顥)는 《한서漢書》를 읽고 일찍이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으나, 숙자叔子(程頤)는 매번 사서史書를 보다가 반쯤 이르면 반드시 책을 덮고 그 성공과 실패를 생각하고 합당하지 않음이 있으면 또다시 깊이 생각하여 정밀하게 연구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어찌 다른 까닭이 있겠는가.
학문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이 진실로 마땅히 그 극極을 쓰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이 완성되자 의리義理가 바루어지고 법칙法則이 엄격해졌으며 문장이 분명해지고 뜻이 깊어져서, 역대歷代의 보편적이지 못했던 것을 바르게 하였으며 일리一理의 순수함을 모아 귀결하여, 인경麟經(《春秋》)의 끊어진 실마리를 진작시켰으며 아름다운 모범을 장래에 보여주었으니 이는 사문斯文의 능사能事가 갖추어졌다.
가령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이것을 본다면 반드시 마음은 만족하고 뜻은 흡족하여
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은
성명性命을 높여 말하고
사학史學을
절멸絶滅시켜 끝내
이적夷狄의
화禍가 생기게 만들었으니
군자君子가 깊이
주벌誅罰하고 따르지 않는 까닭이다.
비록 그러하나 《오경五經》이 갖추어진 뒤에 《춘추》가 만들어졌고, 《오경》이 그 이理를 말하자 《춘추》가 그 용用을 말하였다.
이理가 정미精微함에 다하지 못하니 《춘추》를 쉽게 배울 수 없었다.
자주자子朱子가 먼저
를 해석하여
도道에 들어가는 요점을 보여주었고, 차례로 여러
경전經典을 언급하였으니, 그런 다음에 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가 반드시 순서에 따라 배운 다음에야 본말本末이 겸비되고 내외內外가 관통하여 학문學問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에 아마도 가깝게 될 것이다.
진실로 그 본本을 헤아리지 않고 그 말末을 가지런히 하며, 그 내內를 기르지 않고 그 외外를 급하게 하여, 갑자기 이 책을 먼저 본다면 어찌 사업事業을 행하는데 부족하지 않겠으며, 끝내 체용體用을 겸비하는 것이 순수하고 아름다움이 되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저서著書의 범례凡例와 입언立言의 이동異同은 또 그 뒤에 나열해 붙여서 보는 자들로 하여금 고찰하게 하였다.
가정嘉定(1219) 겨울 10월
경오일庚午日에
문인門人 문림랑文林郞 천주관찰추관泉州觀察推官 이방자李方子는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