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亥年(B.C. 70)
신해년(B.C. 70)
四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본시本始 4년이다.
봄 3월에 대장군 곽광霍光의 딸을 황후로 세우고, 사면赦免하였다.
許后起微賤하여 登至尊日淺하니 從官車服 甚節儉이러니
[目] 처음에 허황후許皇后는 미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지존至尊에 오른 지가 일천日淺하니, 수행하는 관원과 수레와 의복이 매우 검소하였다.
及霍后立 轝駕侍從 益盛注+轝, 音輿, 舁車也.하고 賞賜官屬 以千萬計하여 與許后時 縣絶矣러라
그런데 곽황후霍皇后가 즉위함에 가마꾼과 시종들이 더욱 많아졌고注+는 음이 輿이니, 마주 드는 수레이다. 관속들에게 상을 내려준 것이 천만으로 헤아려져 허황후許皇后 때와 크게 달랐다.
[綱] 여름 4월에 지진이 일어나 산이 무너지고 두 에 있던 조종祖宗의 사당이 무너지니, 황제가 소복을 입고 정전正殿을 피하였으며 조령詔令을 내려 경학經學한 자에게 묻고 현량방정賢良方正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地者 妻道也 臣道也 宜靜而動 陰盛而反常也
“땅은 아내의 이고 신하의 이니, 마땅히 고요해야 하는데 〈지진이 일어나 땅이〉 진동함은 이 성하여 정상적인 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나 不能終動與天同也하니 不過爲妻道不得而臣道不寧之象耳
그러나 끝내 진동하기를 하늘처럼 하지는 못하니, 이는 아내의 가 합당하지 못하고 신하의 가 편안하지 못한 이 될 뿐이다.
是時 郡國四十九 同日地震山崩하고 二郡 壞祖宗廟注+二郡, 北海ㆍ琅耶也.
이때에 49개의 군국郡國에서 같은 날짜에 지진이 일어나 산이 무너졌으며 두 고을에 있던 조종祖宗의 사당이 무너졌다.注+북해군北海郡낭야군琅耶郡이다.
蓋霍氏專權하고 又弑許后而立其女하여 以至咎徵著見如此로되 而不知戒注+謂光不知戒於宜靜而動之理也.하고 宣帝詔問經學擧賢良이로되 亦無敢端言其所以然者
이는 곽씨霍氏가 권력을 독점하고 또 허황후許皇后를 시해하고 자신의 딸을 세워서, 나쁜 징조가 드러남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는데도 곽광霍光은 경계할 줄을 알지 못하였으며,注+곽광霍光이 마땅히 고요해야 하는데 진동하는 이치에 경계할 줄 모른 것을 이른다.선제宣帝조령詔令을 내려 경학자들에게 묻고 현량賢良을 천거하게 하였는데도 감히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 자가 없었다.
使宣帝恐懼祇戒하여 以象類推求하여 而有以善處之런들 則霍氏異日之禍 亦無由而成矣리라
만일 선제가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로써 그 이유를 미루어 추구해서 잘 대처하였다면, 곽씨霍氏의 후일의 또한 이루어질 리가 없었을 것이다.”
[綱] 하후승夏侯勝간대부諫大夫로 삼고 황패黃霸양주자사揚州刺史로 삼았다.
上以地震으로 釋勝霸而用之하다
[目] 은 지진이 일어났다 하여, 하후승夏侯勝황패黃霸를 석방하여 등용하였다.
爲人 質樸守正하고 簡易無威儀注+樸, 匹角切, 素也.하여 或時謂上爲君하고 誤相字於前하니 上亦以是親信之注+前, 天子之前也. 君前臣名, 不當相呼字也.하니라
하후승은 인품이 질박하고 정도正道를 지켰으며 소탈하여 위의威儀가 없어,注+필각匹角이니, 소박하다는 뜻이다. 혹 때로 을 ‘’이라 부르고 황제 앞에서 실수로 를 부르기도 하였는데, 은 이 때문에 그를 더욱 친애하고 믿었다.注+천자天子의 앞이다. 군주의 앞에서는 신하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야 하니, 를 불러서는 안 된다.
嘗見하고 出道上語注+嘗入見而出外, 以主上之語道與人.어늘 聞而讓勝한대 勝曰 陛下所言이라 臣故揚之하니이다
한번은 하후승이 을 뵙고 나와서 의 말을 전하자注+〈“상견嘗見 출도상어出道上語”는〉 한번은 들어가 을 뵙고 밖으로 나와서 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준 것이다.이 듣고 꾸짖으니, 하후승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좋으므로 이 이 때문에 소문을 냈던 것입니다.
堯言 布於天下하여 至今見誦하니 臣以爲可傳故 傳耳니이다
임금의 훌륭한 말씀이 천하에 전포傳布되어 지금까지도 칭송되고 있으니, 은 폐하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할 만하다고 여겼으므로 전한 것입니다.” 하였다.
朝廷 每有大議 上謂曰 先生 建正言하고 無懲前事하라
조정에서 매번 큰 의논이 있게 되면 은 그에게 이르기를 “선생은 바른 말을 하고 지난번의 일을 징계하지 말라.” 하였다.
復爲長信少府라가 遷太子太傅러니 年九十하니 太后素服五日하여 以報師傅之恩注+勝用尙書授太后. 하니라
다시 장신궁長信宮 소부少府가 되었다가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옮겼는데 나이 90세에 죽으니, 태후太后가 5일 동안 소복을 입어서 사부師傅의 은혜에 보답하였다.注+하후승夏侯勝이 태후에게 《상서尙書》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五月 鳳皇 集北海하다
[綱] 5월에 봉황이 북해군北海郡에 내려앉았다.
역주
역주1 立大將軍……赦 : “황후를 세울 적에 ‘氏’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大將軍의 딸’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권력이 대장군에게 있었기 때문이니, 許皇后가 시해를 당한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권력이 霍光에게 있을 때에는 ‘大將軍 霍光의 딸’이라고 쓰고 권력이 王莽에게 있을 때에는 ‘安漢公 莽의 딸’이라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황후를 세울 적에 ‘아무의 딸[某女]’이라고 쓴 것은 2번뿐이다.[立后書氏 恒也 書大將軍女 何 權所在也 而許后之所以弑益著矣 故權在於光 則以大將軍光女書 權在於莽 則以安漢公莽女書 終綱目 立后書某女者 二而已]” 《書法》
역주2 地震山崩……方正之士 : “이때에 49개의 郡國에서 같은 날 지진이 일어나 산이 무너지고 두 郡에서는 祖宗의 사당이 무너졌으니, 큰 異變이다. 이는 霍氏의 陰이 성해진 징험임이 분명한데, 經學者와 賢良의 對策에 이것을 언급한 자가 없음은 어째서인가?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지진을 쓴 것이 101번인데, ‘直言을 구했다.’고 쓴 것이 겨우 8번이니, 세상의 군주들이 재변을 우습게 여긴 자가 많은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지진을 쓴 것은 ‘隋나라 때 천하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쓴 것 외에는 이때보다 더 큰 적이 있지 않다.[於是郡國四十九 同日地震山崩 二郡壞祖宗廟 大異也 其爲霍氏陰盛之證明矣 而經學賢良之對 無及此者 何哉 終綱目 書地震一百一 而書求言者纔八 世主之以變爲玩者多矣 綱目之書地震 自隋書天下地震之外 未有大於此者也]” 《書法》
“지난해 봄에 ‘霍光의 아내 顯이 황후를 시해했다.’고 썼고, 이때에 ‘곽광의 딸을 세워 황후로 삼았다.’고 썼는데, 여름 4월에 이르러서는 ‘지진이 일어나 산이 무너졌으며 祖宗의 사당이 무너졌다.’고 쓴 것이 가까이 한달 남짓한 사이에 있었으니, 이는 霍氏 때문임이 분명하다. 땅은 아내의 道가 되어서 마땅히 고요해야 하는데, 진동하여 祖宗의 사당을 파괴함에 이른 것은 지금의 황후로는 제사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곧바로 썼으니, 비록 그 증험을 밝히지 않았으나 증험은 이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去春書霍顯弑后 今書立光女爲后 至夏四月 則書地震山崩 壞祖宗廟 蓋近在閱月之間 其爲霍氏明矣 夫地爲妻道 宜靜而震 至於壞祖宗廟者 不可以主祀之證也 綱目據事直書 雖不明其證 而證則在其中矣]” 《發明》
역주3 以夏侯勝……揚州刺史 : “〈武帝 元封 5년(B.C. 106)〉 처음 刺史를 설치한 이래로 이때에 이르러 37년이 되었다.[自初置刺史 至是三十七年]” 《書法》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