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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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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年(58)
무오년戊午年(58)
顯宗孝明皇帝永平元年이라 春正月 하다
나라 현종 효명황제顯宗 孝明皇帝 영평永平 원년이다. 봄 정월에 황제가 원릉原陵에 배알하였다.
帝率公卿以下하여 朝于原陵호되 如元會儀注+古不墓祭, 秦始皇起寢於墓側, 漢因而不改, 諸陵寢, 皆以晦望ㆍ二十四氣ㆍ三伏ㆍ社臘及四時上飯. 其親陵所, 宮人隨鼓漏, 理被枕, 具盥水, 陳莊具. 天子以正月, 上原陵.하다 乗輿 拜神坐 退坐東廂하고
】 황제가 공경公卿 이하를 거느리고서 원릉原陵에 배알하였는데, 정월 초하루에 조회하는 의식과 똑같이 하였다.注+옛날에는 묘제墓祭를 지내지 않았는데, 진 시황秦 始皇의 옆에 을 세우고 제사하였고, 나라가 이것을 인습하고 고치지 아니하여 여러 능침陵寢에 모두 그믐과 보름, 24절기와 삼복三伏, 사시四時에 밥을 올렸다. 그 어버이의 능소陵所궁인宮人이 시간을 알리는 고루鼓漏를 따라서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세숫물을 장만하고 를 진열한다. 천자天子는 정월에 원릉原陵에 올라가 배알하였다. 황제는 신좌神座(신위)에 절한 다음 물러나와 동상東廂에 앉고,
侍衛官 皆在神坐後하며 太官上食하고 太常奏樂하다
시위侍衛하는 관원들은 모두 신좌神座 뒤편에 있었으며, 태관太官은 음식을 올리고 태상太常은 음악을 연주하였다.
郡國上計吏 以次前하여 當神軒하여 占其郡穀價及民所疾苦하니 是後 遂以爲常하니라
군국郡國가 차례대로 앞에 나와 신헌神軒(영좌靈座)을 마주하고서 자기 의 곡식 가격과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하였는데, 이후로는 이를 준례로 삼았다.
尊(≪三才圖會≫)尊(≪三才圖會≫)
胡氏曰 送死之禮 卽遠而無退하니 至于墓 則終事盡矣注+卽遠者, 漸就于遠也. 禮記 “飯於牖下, 小斂於戶內, 大斂於阼, 殯於客位, 祖於庭, 葬於墓所, 以卽遠也, 故喪事有進而無退.” 人子孝思不忘이면 則専精乎廟享而已矣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죽은 이를 장송하는 는 먼 데로 향해 나아가기만 하고 뒤로 물러남이 없으니, 에 이르면 장송하는 일[종사終事]이 끝난다.注+즉원卽遠”은 점점 먼 데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창문 아래에서 반함飯含을 하고 문 안에서 소렴小斂을 하고 동쪽 섬돌에서 대렴大斂을 하고 객위客位에서 을 하고 뜰에서 조제祖祭를 지내고 묘소에 장례하는 것은 점점 먼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상의 일은 먼 데로 향해 나아감은 있고 뒤로 물러남은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자식이 효성스러워 부모에 대한 생각을 잊지 못하면 오로지 사당의 제향에 정신을 쏟을 뿐이다.
蓋墓藏體魄而致生之 是不智也 廟以宅神而致死之 是不仁也注+致生之, 謂極以生者之禮待之. 致死之, 謂極以死者之禮待之. 墓, 只藏體魄而魂不在焉, 不當祭而祭之, 是致生之也. 廟者, 神之宅, 魂靈在焉, 當祭而不祭, 是致死之也. 此聖人制禮 明乎幽明之故하여 仁智合而義禮盡也
에는 체백體魄이 묻혔는데 산 사람의 도리를 지극히 하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요, 사당에는 (영혼)을 모셨는데 죽은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 이는 하지 못한 것이니注+치생지致生之”는 산 자의 예로써 지극히 대우함을 이르고, “치사지致死之”는 죽은 자의 예로써 지극히 대우함을 이른다. 체백體魄만 묻혀 있어서 이 여기에 있지 않으니, 에 제사 지내서는 안 되는데 제사 지내면 이는 산 사람의 예를 지극히 하는 것이다. 또 사당은 을 모신 곳이어서 영혼이 여기에 있으니, 마땅히 사당에 제사 지내야 하는데 제사 지내지 않으면 이는 죽은 사람의 예를 지극히 하는 것이다., 성인聖人를 제정할 적에 유명幽明의 연고를 환하게 밝혀서 가 합하고 가 극진하게 하였다.
旣已送形而往安乎地下하고 迎精而反主于廟中注+主, 神主也. 謂迎其精靈, 反歸其神主, 安置于廟中.이어늘 而又致隆于陵園 如元會儀하여 上食奏樂하고 郡國奏計 言民疾苦注+致隆, 謂致此隆禮.하니
이미 시신을 장송하여 지하에 가서 편안히 모시고 영혼을 맞이하여 신주를 모시고 사당 안으로 돌아왔는데注+”는 신주神主이니, 〈“영정이반주우묘중迎精而反主于廟中”은〉 정령精靈을 맞이하고 그 신주를 모시고 돌아와서 사당 안에 안치함을 이른다., 또다시 능원陵園에서 높이기를 정월 초하루에 조회하는 의식처럼 하여 음식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군국郡國에서 상계(회계會計)를 아뢸 적에 백성들의 고통을 말하게 하였다.注+치륭致隆”은 이 융성한 예를 지극히 함을 이른다.
是反易陵廟之禮하여 以體魄爲有知하여 虛廟祏而不重設하고 復奉廟中之主而祭於陵所하니 皆違禮也注+知, 靈也. 祏, 常亦切, 宗廟中藏主石室也. 重, 去聲, 再也. 言祭於陵園, 而不再設祭於廟也.
이는 를 뒤바꿔 체백體魄이 지각이 있다고 여겨서, 사당의 석실石室을 비워두어 다시는 제수를 진설하지 않고, 또 사당 안의 신주를 받들어 능소陵所에 제사하는 것이니, 모두 에 위배되는 것이다.注+는 신령스러움이다. 상역常亦이니 종묘宗廟 안에 신주를 보관하는 석실石室이다. 거성去聲이니 다시이다. 〈“허묘석이부중설虛廟祏而不重設”은〉 능원陵園에 제사하고 다시는 사당에 제수를 진설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彛(≪三才圖會≫)彛(≪三才圖會≫)
明帝此擧 蓋生於原廟 蔡邕 不折衷以聖人之制하고 而直論其情하니 情豈有旣哉注+蔡邕語, 見下靈帝熹平元年.
명제明帝의 이 조처는 에서 생긴 것인데, 注+채옹蔡邕의 말은 아래 영제 희평靈帝 熹平 원년(172) 조에 보인다.
使明帝移此情於四時太廟之祭하여 簠簋籩豆 尊彛鼎俎 惟禮之循하여 而兢兢業業하여
가령 명제가 이 정을 사시四時태묘太廟의 제사에 옮겨서 를 오직 예를 따라 조심하고 공경하여
監於光武成憲하여 損益修明之하여 期乎至治 其爲孝也 何以加諸注+尊, 與樽通, 酒器也. 彜, 宗廟常器也, 與爵相似.리오
광무제光武帝의 이룬 법을 거울로 삼아서 가감하고 닦고 밝혀서 지극한 정치를 기약했더라면, 효성스러움이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었겠는가.”注+과 통하니 술그릇이고, 종묘宗廟에 늘상 사용하는 그릇이니 과 비슷하다.
夏五月 太傅高密侯鄧禹卒하다
】 여름 5월에 태부 고밀후太傅 高密侯 등우鄧禹하였다.
諡曰元이라
】 시호를 이라 하였다.
동해왕 유강東海王 劉彊하였다.
東海王彊이어늘 遣使者太醫하고 乗驛視疾하여 絡繹不絶하고
동해왕 유강東海王 劉彊이 병이 위독하자, 사자使者태의太醫를 보내서 병을 살피고 파발로 알리게 하여 행렬이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
詔沛王輔等하여 詣魯省疾注+彊, 都魯.이러니 戊寅하다
패왕 유보沛王 劉輔 등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서 지역에 가서 병을 살펴보게 하였는데注+유강劉彊 지역에 도읍하였다., 무인일戊寅日에 유강이 하였다.
臨終 上疏謝恩하고 言身旣夭命하여 孤弱 復爲皇太后, 陛下憂慮하니 誠悲誠慙注+夭, 於紹切, 言身旣夭死, 而子孫又貽上之人憂慮也.하노이다
유강은 임종할 적에 글을 올려 은혜에 사례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가 일찍 죽게 되어 어린 자식이 황태후皇太后폐하陛下에게 우려를 끼치게 되었으니, 참으로 슬프고 참으로 부끄럽습니다.注+(단명短命하다)는 어소於紹이니, 〈“신기요명身旣夭命……폐하우려陛下憂慮”는〉 자신이 일찍 죽어서 자손이 또 윗사람에게 우려를 끼침을 말한 것이다.
息政 小人也 猥當襲臣後 必非所以全利之也 願還東海郡注+息, 子也. 政, 其名.하노이다
저의 자식인 유정劉政은 소인입니다. 외람되이 의 뒤를 세습하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그를 온전히 하고 이롭게 하는 방법이 아닐 것이니, 바라건대 〈동해국東海國을〉 동해군東海郡으로 환원還元하게 하소서.注+은 자식이고, 은 자식의 이름이다.
今天下新罹大憂注+謂光武崩也.하니 惟陛下加供養皇太后하시고 數進御餐하소서
지금 천하가 새로이 큰 우환을 만났으니注+〈“금천하신리대우今天下新罹大憂”는〉 광무제光武帝한 일을 말한 것이다., 부디 폐하께서는 황태후皇太后를 더 잘 봉양하시고 자주 어찬御餐을 올리소서.
臣彊 困劣하여 言不能盡意 願竝謝諸王이러니 不意永不復相見也니이다
신 유강臣 劉彊은 곤궁하고 용렬하여 말로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여러 왕과 함께 사례하기를 원하였는데, 뜻밖에 영원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帝覽書悲慟하여 從太后하여 出幸津門亭하여 發哀注+津門, 陽城南面西頭門也, 一名津陽門. 每門皆有亭.하고 使大司空으로 持節護喪事하여 贈送以殊禮注+百官志 “司空, 掌水土事. 大喪, 掌將校復土.” 今使護藩王喪, 殊禮也. 復土, 言下棺訖, 復以土爲墳也.하고
】 황제는 이 글을 보고 비통해하고는 태후太后(음태후陰太后)를 따라 나가 진문정津門亭으로 행차해서 애도하는 의식을 거행하고注+진문津門낙양성雒陽城 남쪽에 있는 서쪽 첫 번째 문이다. 일명 진양문津陽門이라 한다. 문마다 모두 만구정이 있다., 대사공大司空으로 하여금 을 잡고 가서 초상일을 감독하게 하고 부의와 장송을 특별한 로써 하게 하였으며注+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사공司空수토水土의 일을 관장한다. 국상國喪장교將校들을 거느리고 복토復土하는 것을 관장한다.” 하였으니, 지금 그로 하여금 번왕藩王의 초상을 감독하게 한 것은 특별한 이다. 복토復土하관下棺이 끝나고 나서 다시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詔楚王英等及京師親戚하여 皆會葬하다 帝追惟彊深執謙儉하여 不欲厚葬以違其意注+惟, 思也.하여
초왕 유영楚王 劉英 등과 경사京師에 있는 친척들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모두 장례에 참석하게 하였다. 황제는 유강劉彊이 겸손함과 검소함을 견지했던 것을 추념하여, 후하게 장례를 지냄으로써 그의 뜻을 어기는 일이 없고자 해서注+는 생각함이다.,
於是 特詔하여 遣送之物 務從約省하여 衣足斂形하고 茅車瓦器 物減於制하여
이에 특별히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장송하는 물건을 되도록 줄여서 수의襚衣(수의)는 겨우 시신을 가리게 하고 〈부장품인〉 띠풀로 묶은 수레와 질그릇은 제도보다 줄여서,
以彰王卓爾獨行之志라하니 將作大匠 留起陵廟하다
왕의 특별하고 고상한 뜻을 드러내라.” 하니, 장작대장將作大匠이 남아서 능묘陵廟를 일으키는 일을 담당하였다.
秋七月 馬武等 擊羌하여 破之하다
】 가을 7월에, 마무馬武 등이 강족羌族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祭肜 討烏桓하여 大破之하니 罷緣邊屯兵하다
제융祭肜(채융)이 오환烏桓을 토벌하여 대파하니, 변방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파하였다.
遼東太守祭肜 使偏何 討赤山烏桓하여 大破之하고 斬其魁帥注+赤山, 在遼東西北數千里.하니
요동태수 제융遼東太守 祭肜편하偏何로 하여금 적산赤山에 있는 오환烏桓을 토벌하게 해서 대파하고 그 괴수를 참수하니注+적산赤山”은 요동遼東 서북쪽 수천 리 지점에 있다.,
塞外震讋하여 西自武威 東盡玄菟하여 皆來内附하여 野無風塵이라 乃悉罷緣邊屯兵하다
변방 밖에 있는 오랑캐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서쪽으로 무위武威로부터 동쪽으로 현도玄菟에 이르기까지 모두 와서 내부内附하였다. 전쟁이 없어 들에 바람과 먼지가 일지 않았다. 이에 변방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모두 파하였다.
好畤侯耿弇하다
호치후 경엄好畤侯 耿弇(경감)이 하였다.
역주
역주1 朝原陵 : “陵에 배알하는 잘못을 胡氏(胡寅)가 이미 논하였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도 이것을 쓴 것은 그를 비판한 것이다. 이로부터 이후로 무릇 陵에 배알한 일을 쓴 것은 모두 의미가 이와 같다.[朝陵之失 胡氏旣已論之矣 綱目書此 亦譏之爾 自是而後 凡書朝陵者 皆倣此]” ≪發明≫
역주2 上計吏 : 각 지방 官署에서 해마다 회계장부를 조정에 올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리로, 人事와 戶口, 賦稅를 기록하였다.
역주3 社日과 臘日 : 社日은 토지신[社]에게 제사 지내던 날로 立春과 立秋 뒤의 다섯 번째 戊日이며, 臘日은 臘享祭를 올리는 날로 冬至 후 세 번째 戌日이다.
역주4 莊具 : 얼굴이나 옷차림을 꾸미기 위한 도구를 이른다. ≪後漢書≫에는 明帝의 이름인 莊을 諱하여 ‘嚴具’로 되어 있다.
역주5 原廟 : 正廟 이외에 별도로 설립한 宗廟를 이른다. 漢 惠帝 때 叔孫通의 諫言에 따라 高廟 이외에 별도로 원묘를 세워 종묘를 확장하였다.
역주6 蔡邕이……있겠는가 : 蔡邕은 後漢 靈帝 때 인물로 字는 伯喈이다. 채옹이 建寧 5년(172)에 原陵에서 거행한 上陵禮에 참가한 후에 다음과 같은 의론을 펼쳤다. “듣자하니 옛날에는 墓祭가 없었는데, 조정에는 상릉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라 여겼으나 지금 장엄한 의식을 보고서 본의를 살펴보니, 明帝의 지극한 효심과 측은한 마음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聞古不墓祭 朝廷有上陵之禮 始謂可損 今見威儀 察其本意 明帝之孝惻隱不可易奪]”(≪資治通鑑≫ 권56 漢 靈帝 熹平 元年(172) 조)
역주7 簠簋(보궤)와……鼎俎(정조) : 簠와 簋는 모두 대나무로 만든 제기로 黍稷을 올리는 그릇이며, 籩은 대나무 그릇으로 과일을 담고, 豆는 나무 그릇으로 물기가 있는 음식을 담는다. 尊은 樽과 통하는바 술동이이고, 彛 역시 제기이며, 鼎은 고기를 익히는 솥이고, 俎는 솥에서 고기를 꺼내어 올려놓는 도마이다.
역주8 東海王彊卒 : “廢太子에게 卒이라고 쓴 적이 있지 않은데, 여기에서 쓴 것은 어째서인가. 劉彊이 폐위에 잘 대처함을 좋게 여긴 것이다. 이외에는 오직 李承乾(唐 太宗의 長子)을 卒이라고 썼으나 유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資治通鑑綱目≫에 ‘廢太子(太子를 폐하였다.)’를 쓴 것이 12번이고, ‘太子廢(태자가 폐위되었다.)’를 쓴 것이 2번인데, ‘卒’을 쓴 것은 두 번뿐이다.[廢太子 未有書卒者 書此 何 善彊之能處廢也 外此則惟承乾書卒 然與彊霄壤矣 綱目書廢太子十二 書太子廢二 其書卒者 二而已]다” ≪書法≫
역주9 (維)[雒] : 저본에는 ‘維’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雒’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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