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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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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申年(B.C. 193)
무신년(B.C. 193)
二年이라
[綱] 나라 효혜황제孝惠皇帝 2년이다.
冬十月 齊王肥 來朝하다
겨울 10월에 내조來朝하였다.
齊悼惠王 來朝하여 飮太后前이러니 帝以王兄也라하여 置之上坐하다
[目] 나라 도혜왕悼惠王(유비劉肥)이 내조來朝하여 태후太后 앞에서 술을 마셨는데, 황제는 제왕齊王이 형이라고 하여 그를 상좌上座에 앉게 하였다.
太后怒하여 酌酖酒賜之어늘 帝欲取飮한대 太后恐하여 自起泛之注+泛, 音捧, 覆也.하니
태후가 하여 짐주酖酒를 따라서 제왕에게 내렸는데, 황제가 짐주를 가져다 마시려고 하니, 태후는 자기 아들(황제)이 마실까 두려워 스스로 일어나 술잔을 엎었다.注+은 음이 이니, 뒤엎다는 뜻이다.
齊王 大恐하여 出獻城陽郡하여 爲魯元公主湯沐邑하고 乃得歸하다
제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나와서 성양군城陽郡을 바쳐 노원공주魯元公主탕목읍湯沐邑으로 삼고서야 마침내 돌아갈 수 있었다.
春正月 兩龍見蘭陵井中하다
[綱] 봄 정월에 두 마리의 용이 난릉蘭陵의 우물 속에 나타났다.
◑ 隴西 地震하다
[綱] 농서隴西지진地震이 있었다.
◑ 夏하다
[綱] 여름에 가물었다.
◑ 秋七月 커늘 以曹參爲相國하다
[綱] 가을 7월에 상국相國찬후酇侯 소하蕭何하자, 조참曹參상국相國으로 삼았다.
相國何病이어늘 上問曰 君卽百歲後 誰可代君 對曰 知臣 莫如主니이다
[目] 상국相國 소하蕭何가 병이 위독하자, 이 묻기를, “그대가 만일 죽은 뒤에는 누가 그대를 대신할 만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 한 분이 없습니다.” 하였다.
帝曰 曹參 何如 何頓首曰 帝得之矣시니 臣死不恨이로소이다
황제가 말하기를, “조참曹參이 어떠한가?” 하자,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황제께서 옳게 맞히셨으니,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였다.
七月커늘 諡曰文終이라하다
7월에 소하가 죽자, 시호를 문종文終이라고 하였다.
何置田宅 必居窮僻處하고 爲家 不治垣屋注+僻, 隱也.하고 曰 後世賢인댄 師吾儉이요 不賢이라도 毋爲勢家所奪이라하니라
소하는 토지와 집을 장만할 적에 반드시 궁벽한 곳에 마련하고, 집을 지을 적에 담장과 지붕을 꾸미지 않으며 말하기를,注+은 으슥하고 깊은 것이다. “후손이 어질면 나의 검소함을 본받을 것이고, 어질지 못하더라도 세력가에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였다.
參聞何薨하고 告舍人하여趣治行注+趣, 讀曰促, 下同. 治行, 謂飭治行裝也.이러니 居無何 使者果召參注+無何, 猶言無幾, 謂少時也.하다
[目] 조참曹參소하蕭何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사인舍人에게 말하여 빨리 행장을 꾸리게 하였는데,注+(재촉하다)은 으로 읽으니, 치행治行”은 행장行裝을 꾸리는 것을 이른다. 얼마 되지 않아 사자使者가 과연 조참을 불렀다.注+무하無何”는 “무기無幾”라는 말과 같으니, 오래지 않음을 이른다.
할새屬其後相曰注+後相, 後來相齊者. 以齊獄市爲寄하노니 愼勿擾也하라
조참이 떠날 적에 후임 나라 정승에게 부탁하기를,注+후상後相”은 뒤에 나라의 정승政丞으로 부임해온 자이다.나라의 옥송獄訟시장市場에서 교역하는 일을 맡기노니, 삼가서 동요시키지 말라.” 하였다.
後相曰 治無大於此者乎잇가 參曰 獄市 所以幷容也 今擾之하면 姦人 何所容乎注+獄市, 兼受善惡, 若窮極姦人, 無所容竄, 久且爲亂.리오
후임의 나라 정승이 “다스리는 데에 이것보다 더 중대한 일이 없습니까?” 하고 되묻자, 조참이 말하기를, “옥송獄訟과 시장에서 교역하는 데에는 선인善人악인惡人을 아울러 용납해주니 지금 동요시키면 간인姦人이 어디에 용납되겠는가.”注+옥송獄訟시장市場의 교역에는 선인善人악인惡人을 아울러 용납해주니, 만약 간인姦人을 끝까지 추궁하여 용납될 곳이 없을 경우, 오래되면 난을 일으키게 된다. 하였다.
始參微時 與何善이라가 及爲將相 有隙이러니 至何且死하여는 所推賢 惟參注+推賢, 言推擧以爲賢也.이요
처음 조참이 미천했을 적에는 소하와 친하게 지내다가 장상將相이 되어서는 사이가 나빠졌는데, 소하가 임종할 적에 어진 사람이라고 추천한 자는 오직 조참뿐이었다.注+추현推賢”은 어진 사람으로 추천함을 말한다.
參代何爲相 擧事 無所變更하여 一遵何約束注+擧, 凡也.하다
조참이 소하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어서는 모든 일을 변경하지 않고 소하의 법령法令을 한결같이 따랐다.注+는 모두라는 뜻이다.
擇吏木訥重厚長者하여 召爲丞相史注+木, 質樸, 訥, 遲鈍也. 漢制, 丞相官屬, 長史之下, 有掾史‧令史等.하고 言文刻深하여 欲務聲名者 輒斥去之注+言文刻深, 謂持文法, 務於刻剝而深峻.하고 日夜飮醇酒注+醇酒, 厚酒也.하니라
관리 중에 질박하고 어눌하며 중후한 장자長者를 가려서 불러다가 승상丞相로 삼았으며,注+질박質樸하다는 뜻이고 지둔遲鈍하다는 뜻이다. 나라 제도制度승상丞相관속官屬장사長史 아래에 연사掾史영사令史 등이 있었다. 법조문을 각박하고 준엄하게 적용해서 명성을 얻기를 힘쓰는 자를 매번 배척하여 제거하고,注+언문각심言文刻深”은 법조문의 적용을 각박하고 준엄하게 하는 데에 힘씀을 이른다. 밤낮으로 맛이 좋은 술을 마셨다.注+순주醇酒”는 맛이 좋은 독한 술이다.
賓客 見參不事事하고 皆欲有言注+不事事, 言不事丞相之事.이어든 輒飮以醇酒하여 莫得開說注+飮, 去聲. 開說, 謂有所啓白.하고
빈객賓客들이, 조참이 승상의 일을 일삼지 않는 것을 보고 모두 말하고자 하면注+불사사不事事”는 승상丞相의 일을 일삼지 않음을 말한다. 조참이 그때마다 맛이 좋은 술을 마시게 해서 말을 할 수 없게 하였다.注+(마시게 하다)은 거성去聲이다. “개설開說”은 아뢰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見人有細過하면 專掩匿覆蓋之하니 府中 無事러라
그리고 작은 과실이 있는 자를 보면 오로지 숨겨주고 덮어주니, 승상부丞相府 안에 아무 일이 없었다.
參子窋 爲中大夫注+窋, 張律切.러니 帝怪參不治事하여 使窋私問之한대하여 笞窋曰 趣
[目] 조참曹參의 아들 조줄曹窋중대부中大夫가 되었는데,注+장률張律이다. 황제가 조참이 일을 처리하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겨서 조줄로 하여금 〈휴가를 받아 돌아가서〉 사적으로 묻게 하자, 조참이 노하여 조줄의 볼기를 치며 말하기를.
入侍하라
“너는 빨리 조정에 들어가 황제를 잘 모시기나 하여라.
天下事非若所當言也니라
천하의 일은 네가 말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至朝時 帝讓參曰 乃者 我使諫君也注+乃者, 猶言曩者.로라 免冠謝曰 陛下自察聖武孰與高帝시니잇고 上曰 朕乃安敢望先帝리오
조회朝會할 때에, 황제가 조참을 꾸짖어 말하기를, “지난번에 내가 조줄을 시켜 그대에게 하게 한 것이다.”注+내자乃者”는 지난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니, 조참이 을 벗고 사죄하며 말하기를, “폐하陛下께서 스스로 성명聖明하고 영무英武함을 살펴보시건대, 고제高帝와 비교해서 누가 낫다고 여기십니까?” 하니, 이 말하기를 “이 어찌 감히 선제先帝와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臣孰與蕭何賢이니잇고 上曰 君似不及也로라
“그러면 신은 소하와 비교해서 누가 낫다고 여기십니까?” 하니, 이 말하기를, “그대가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하였다.
參曰 陛下言 是也로소이다
조참이 말하기를,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高帝與蕭何定天下하사 法令旣明하니이다
고제께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시고 만들어놓은 법령法令이 이미 분명합니다.
今陛下垂拱이어시든 參等 守職하여 遵而勿失 不亦可乎잇가 帝曰 善
지금 폐하께서 의관을 정제하고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계시면, 저희들이 직분을 지켜서 준행하고 잃지 않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하니, 황제가 좋다고 하였다.
參爲相三年 百姓 歌之曰 蕭何爲法 較若畫一이러니 曹參代之하여 守而勿失이로다
조참이 승상이 된 지 3년이 지나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소하가 법을 만듦에 분명하기가 일자一字를 그은 것과 같더니, 조참이 그를 대신함에 그 법을 그대로 지켜 잃지 않았네.
載其淸浄하니 民以寧壹注+較, 音覺, 明白易見之義. 畫一, 言其整齊也. 載, 猶乘也.이라하니라
맑고 깨끗한 정치를 행한 덕분에 백성들이 이 때문에 편안하고 한결같다.”注+는 음이 (교)이니 명백明白해서 보기 쉽다는 뜻이다. “화일畫一”은 정제整齊된 것을 말한다. 는 탄다는 말과 같다. 하였다.
역주
역주1 齊王 劉肥 : 劉肥가 齊王에 봉해진 것은 본서 47쪽에 보인다.
역주2 相國酇侯蕭何卒 : “《資治通鑑綱目》에서 兩漢의 여러 신하가 卒한 것에 대해 관직과 작위와 姓을 갖추어 쓴 것은 美稱이고, 姓을 쓰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칭호이고, 관직을 쓰지 않은 것은 폄하한 것이다. 兩漢의 여러 신하들이 卒하였을 적에 관직과 작위를 쓰고 姓을 쓴 것이 37명이니, 蕭何, 曹參, 陳平, 霍去病, 衛靑, 金日磾(김일제), 霍光, 張安世, 魏相, 丙吉, 卓茂, 祭遵(채준), 馮異, 吳漢, 鄧禹, 揚賜는 모두 관직과 작위와 姓을 갖추어 쓴 자들이고, 張良, 尹翁歸, 趙充國, 辛慶忌, 寇恂, 朱祜, 馬援, 樊宏, 賈復, 耿弇(경엄), 竇融, 鄧訓, 王渙, 鄧宏, 梁育, 荀淑, 朱穆, 黃瓊(황경), 胡廣, 陳實, 荀爽은 혹은 관직이나 작위를 쓰고 姓을 갖추어 쓴 자이다. 관직을 쓰지 않은 자가 네 명이니, 王譚, 單超, 馬日磾, 荀攸이다.[綱目於兩漢諸臣卒 具官爵姓者 美稱也 不書姓者 恒稱也 惟不書官者 爲貶之 兩漢諸臣卒 書官爵書姓者三十七 蕭何曹參陳平霍去病衛靑金日磾霍光張安世魏相丙吉卓茂祭遵馮異吳漢鄧禹揚賜 皆官爵姓具者也 張良尹翁歸趙充國辛慶忌寇恂朱祜馬援樊宏賈復耿弇竇融鄧訓王渙鄧宏梁育荀淑朱穆黃瓊胡廣陳實荀爽 或官或爵而具姓者也 不書官者四 王譚單超馬日磾荀攸]” 《書法》
역주3 아래도 같다 : 131쪽 “趣入侍”의 趣을 가리킨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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