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가 촉蜀나라를 정벌하여 남정南鄭을 취하였다.注+① 촉蜀나라의 선조는 인황씨人皇氏 때부터 비롯하였다. 황제黃帝의 아들 창의昌意가 촉산씨蜀山氏의 딸과 혼인하여 제곡帝嚳을 낳았다. 제곡帝嚳이 즉위한 뒤에 그 지서支庶를 촉蜀에 봉하여 우虞나라, 하夏나라, 상商나라, 주周나라까지 이어졌다.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잠총蠶叢이 먼저 왕王이라 칭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남정현南鄭縣은 한중군漢中郡에 소속되었다.”고 하였다.
綱
[綱]위후魏侯사斯가 졸卒하다.
綱
[綱]위魏나라 오기吳起가 초楚나라로 달아나자 초楚나라가 정승으로 삼았다.
目
[目]위魏나라 무후武侯가 서하西河에 배를 띄워 내려갈 때에注+① 서하西河는 곧 《서경書經》 〈하서夏書우공禹貢〉에서 말하는 용문서하龍門西河이다.오기吳起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아름답다.
산하山河의 험고險固함이여.
이는 위魏나라의 보배이다.”라고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를 지키는 것은 덕德에 있고 험고險固함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에 삼묘씨三苗氏는 왼쪽에 동정호洞庭湖가 있고 오른쪽에 팽려호彭蠡湖가 있었으나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으므로 우禹임금이 멸망시켰고注+② 《서경書經》 〈우서虞書순전舜典〉의 채씨전蔡氏傳에 “삼묘국三苗國은 강남江南의 형주荊州와 양주揚州의 사이에 있는데 지형의 험고함을 믿고 난을 일으킨 자이다.”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동정호洞庭湖는 악주岳州파릉巴陵의 서쪽에 있는데 서쪽으로 적사赤沙를 포함하고 남쪽으로 청초靑草에 연결되어 너비가 7, 8백 리에 이른다. 팽려호彭蠡湖는 심양潯陽 동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하걸夏桀이 살던 도읍은 왼쪽에 하수河水와 제수濟水가 있고 오른쪽에 태화산泰華山이 있었으며 이궐산伊闕山이 그 남쪽에 있고 양장羊腸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政事를 닦음에 인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탕湯임금이 추방하였고注+③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하걸夏桀의 도읍은 지금 하남河南양적현陽翟縣이 이곳이다.”라고 하였다. 제濟는 자례子禮의 절切이다. 〈지지地志〉에 “제수濟水는 상산常山방자현房子縣에서 나와 찬황산贊皇山 동쪽을 지나 거록鉅鹿영도현癭陶縣에 이르러 지수汦水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태泰는 태太와 통용하여 쓴다. 〈지지地志〉에 “태화산太華山은 홍농弘農화음현華陰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역도원酈道元의 주註에 “《수경水經》에 이르기를 ‘우禹임금이 용문龍門을 뚫어 물이 통하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두 산이 서로 마주하여 바라보는 것이
과 같고 이수伊水가 그 사이를 자나가므로 이궐伊闕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양장산羊腸山은 태원太原 서북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상주商紂의 국도國都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태행산太行山이 있었으며 상산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대하大河가 그 남쪽을 경유하였으나 정사를 닦음에 덕德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무왕武王이 죽였습니다.注+④ 맹문孟門은 진晉나라의 험한 산이다. 주紂임금이 조가朝歌에 도읍을 정하였으니 맹문孟門이 그 서쪽에 있다. 지금 “주紂의 국도國都 왼쪽에 맹문孟門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동쪽에 별도의 맹문孟門이 있는 듯하다. 행行은 음이 항抗이다. 태행太行은 또한 진晉나라의 험한 산이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태행산太行山은 하내河內산양현山陽縣 서북쪽 상당上黨 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상산常山은 북악北嶽항산恒山이니, 한漢나라에서 문제文帝의 휘諱를 피하여 상산常山으로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나라를 지키는 것은 덕德에 있고 험고險固함에 있지 않으니, 임금께서 만약 덕德을 닦지 않으면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적국敵國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무후가 이르기를 “훌륭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을 정승으로 삼으니, 오기吳起가 기뻐하지 아니하여 전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그대와 공功을 논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가?”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삼군三軍을 거느려 사졸士卒로 하여금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고 적국敵國이 감히 도모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注+① 여與는 여如이다.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백관百官을 다스리고 만민萬民을 친애하며 부고府庫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서하西河를 지켜서 진秦나라 군대가 감히 동쪽으로 향해 오지 못하고 한韓나라와 조趙나라가 손님처럼 따르게 하는 것은,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注+② 향鄕(향하다)은 향嚮으로 읽는다. 빈賓은 경敬과 같다.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이 세 가지는 그대가 모두 나보다 못한데도 지위地位가 나보다 위에 있음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군주가 어리고 나라가 의심스러워 대신大臣이 따르지 않고 백성百姓이 믿지 않으니注+③ 소少(어리다)는 거성去聲이다. 이러한 때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까, 나에게 맡기겠습니까?”注+④ 촉屬(맡기다)은 음이 촉燭이다.라고 하니,
오기가 묵묵히 한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맡기겠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에 위魏나라 정승 공숙公叔이 오기를 시기하여 참소하자注+⑤ 공숙公叔은 한韓나라의 공족公族이다. 해害는 미워하고 꺼리는 것이다.무후武侯가 의심을 하였다.
오기가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초楚나라로 도망하였다.
초楚나라 도왕悼王은 평소 그가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오기가 이르자 그에게 정사를 맡기고 정승으로 삼았다.
오기는 법法을 밝히고 명령을 살펴서 시급하지 않은 관리를 줄이고 공족公族으로 소원疏遠한 자들을 폐하여 전사戰士를 기르니注+⑥ 소疏는 소疎와 같다., 요체는 부국강병에 있었으며, 합종연횡合從連衡으로 유세하는 자들을 물리쳤다.注+⑦ 유세游說는 말을 꾸미고 속임수를 써서 천하天下에 분주히 다니면서 당시의 권세를 구하는 것이다. 종從은 장용將容의 절切이다. 횡橫은 형衡과 통하니 호맹胡盲의 절切이다. 이익으로 합하는 것을 종從이라 하고, 위력威力으로 서로 위협하는 것을 횡橫이라 한다.
이에 남쪽으로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삼진三晉을 물리치고 서쪽으로 진秦나라를 정벌하니注+⑧ 백월百越은 한 종류가 아님을 이르니 백만百蠻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각却은 물러남이다., 제후諸侯들이 모두 초楚나라의 강성함을 걱정하였고 초楚나라의 귀척대신貴戚大臣들 중에 오기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역주
역주1闕 :
천자나 제후의 宮門 밖에 두 개의 臺를 만들고 위에 樓觀을 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한다 하여 이름을 觀이라 하고, 두 觀을 양쪽에 세우고 중앙은 비워서 길을 만들기 때문에 이를 일러 闕(빠뜨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