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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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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年(B.C. 387)
갑오년(B.C. 387)
十五年이라
[綱]나라 안왕安王 15년이다.
伐蜀하야 取南鄭注+蜀之先, 肇自人皇之際. 黃帝子昌意娶蜀山氏女, 生帝嚳. 旣立, 封其支庶於蜀, 歷虞‧夏‧商‧周. 周衰, 蠶叢先稱王. 班志 “南鄭縣, 屬漢中郡.”하다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남정南鄭을 취하였다.注+나라의 선조는 인황씨人皇氏 때부터 비롯하였다. 황제黃帝의 아들 창의昌意촉산씨蜀山氏의 딸과 혼인하여 제곡帝嚳을 낳았다. 제곡帝嚳이 즉위한 뒤에 그 지서支庶에 봉하여 나라, 나라, 나라, 나라까지 이어졌다. 나라가 쇠퇴하자 잠총蠶叢이 먼저 이라 칭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남정현南鄭縣한중군漢中郡에 소속되었다.”고 하였다.
◑魏侯斯卒하다
[綱]위후魏侯 하다.
◑魏吳起奔楚어늘 楚以爲相하다
[綱]나라 오기吳起나라로 달아나자 나라가 정승으로 삼았다.
魏武侯浮西河而下注+西河, 卽禹貢之龍門西河.러니 顧謂吳起曰 美哉
[目]나라 무후武侯서하西河에 배를 띄워 내려갈 때에注+서하西河는 곧 《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에서 말하는 용문서하龍門西河이다.오기吳起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아름답다.
山河之固
산하山河험고險固함이여.
此魏國之寶也로다 對曰 在德이요 不在險이니이다
이는 나라의 보배이다.”라고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를 지키는 것은 에 있고 험고險固함에 있지 않습니다.
三苗氏 左洞庭右彭蠡로대 德義不修어늘 禹滅之注+書蔡氏傳 “三苗國在江南荊‧揚之間, 恃險爲亂者也.” 集覽 “洞庭湖在岳州巴陵西, 西呑赤沙, 南連靑草, 橫亘七八百里. 彭蠡湖在潯陽東南.”하시고 夏桀之居 左河濟右泰華 伊闕 在其南하고 羊腸 在其北호대 修政不仁이어늘 放之注+集覽 “夏桀之居, 今河南陽翟縣是.” 濟, 子禮切. 地志 “濟水出常山房子縣贊皇山東, 至鉅鹿癭陶縣, 入汦.” 泰, 通作太. 地志 “太華山在弘農華陰縣.” 酈道元註 “水經云 ‘禹疏龍門以通水.’ 兩山相對, 望之若闕然, 伊水歷其間, 故名伊闕.” 集覽 “羊腸山在太原西北.”하시고 商紂之國 左孟門右太이요 常山 在其北하고 大河經其南호대 修政不德이어늘 武王 殺之注+孟門, 晉山隘也. 紂都朝歌, 孟門在其西. 今言“紂之國左孟門.” 則東邊別有孟門也. 行, 音抗. 太行, 亦晉山隘也. 集覽 “太行山在河內山陽縣西北上黨南.” 常山, 北嶽恒山, 漢避文帝諱, 作常山.하시니
옛날에 삼묘씨三苗氏는 왼쪽에 동정호洞庭湖가 있고 오른쪽에 팽려호彭蠡湖가 있었으나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으므로 임금이 멸망시켰고注+② 《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의 채씨전蔡氏傳에 “삼묘국三苗國강남江南형주荊州양주揚州의 사이에 있는데 지형의 험고함을 믿고 난을 일으킨 자이다.”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동정호洞庭湖악주岳州 파릉巴陵의 서쪽에 있는데 서쪽으로 적사赤沙를 포함하고 남쪽으로 청초靑草에 연결되어 너비가 7, 8백 리에 이른다. 팽려호彭蠡湖심양潯陽 동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하걸夏桀이 살던 도읍은 왼쪽에 하수河水제수濟水가 있고 오른쪽에 태화산泰華山이 있었으며 이궐산伊闕山이 그 남쪽에 있고 양장羊腸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政事를 닦음에 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임금이 추방하였고注+③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하걸夏桀의 도읍은 지금 하남河南 양적현陽翟縣이 이곳이다.”라고 하였다. 자례子禮이다. 〈지지地志〉에 “제수濟水상산常山 방자현房子縣에서 나와 찬황산贊皇山 동쪽을 지나 거록鉅鹿 영도현癭陶縣에 이르러 지수汦水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와 통용하여 쓴다. 〈지지地志〉에 “태화산太華山홍농弘農 화음현華陰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역도원酈道元에 “《수경水經》에 이르기를 ‘임금이 용문龍門을 뚫어 물이 통하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두 산이 서로 마주하여 바라보는 것이 과 같고 이수伊水가 그 사이를 자나가므로 이궐伊闕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양장산羊腸山태원太原 서북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상주商紂국도國都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태행산太行山이 있었으며 상산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대하大河가 그 남쪽을 경유하였으나 정사를 닦음에 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무왕武王이 죽였습니다.注+맹문孟門나라의 험한 산이다. 임금이 조가朝歌에 도읍을 정하였으니 맹문孟門이 그 서쪽에 있다. 지금 “국도國都 왼쪽에 맹문孟門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동쪽에 별도의 맹문孟門이 있는 듯하다. 은 음이 이다. 태행太行은 또한 나라의 험한 산이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태행산太行山하내河內 산양현山陽縣 서북쪽 상당上黨 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상산常山북악北嶽 항산恒山이니, 나라에서 문제文帝를 피하여 상산常山으로 하였다.
由此觀之컨대 在德이요 不在險이니 君若不修德하시면 舟中之人 皆敵國也니이다 武侯曰 善하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나라를 지키는 것은 에 있고 험고險固함에 있지 않으니, 임금께서 만약 을 닦지 않으면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적국敵國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무후가 이르기를 “훌륭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魏相田文하니 起不悅하야 謂文曰 請與子論功 可乎인저 文曰 可
[目]나라가 을 정승으로 삼으니, 오기吳起가 기뻐하지 아니하여 전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그대와 을 논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가?”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起曰 將三軍하야 使士卒樂死하고 敵國 不敢謀 子孰與起注+與, 如也. 文曰 不如子로라
오기가 말하기를 “삼군三軍을 거느려 사졸士卒로 하여금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고 적국敵國이 감히 도모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注+이다.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起曰 治百官親萬民實府庫 子孰與起 文曰 不如子로라
오기가 말하기를 “백관百官을 다스리고 만민萬民을 친애하며 부고府庫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起曰 守西河而秦兵 不敢東鄕하고 韓趙賓從 子孰與起注+鄕, 讀曰嚮. 賓, 猶敬也. 文曰 不如子로라
오기가 말하기를 “서하西河를 지켜서 나라 군대가 감히 동쪽으로 향해 오지 못하고 나라와 나라가 손님처럼 따르게 하는 것은, 그대가 어찌 나만 같겠는가?”注+(향하다)은 으로 읽는다. 과 같다.라고 하니, 전문이 대답하기를 “당신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起曰 此三者 子皆出吾下而位加吾上 何也
오기가 말하기를 “이 세 가지는 그대가 모두 나보다 못한데도 지위地位가 나보다 위에 있음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文曰 主少國疑하야 大臣 未附하고 百姓 不信注+少, 去聲.하니 方是之時 屬之子乎 屬之我乎注+屬, 音燭.
전문이 대답하기를 “군주가 어리고 나라가 의심스러워 대신大臣이 따르지 않고 백성百姓이 믿지 않으니注+(어리다)는 거성去聲이다. 이러한 때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까, 나에게 맡기겠습니까?”注+(맡기다)은 음이 이다.라고 하니,
起默然良久曰 屬之子矣리라
오기가 묵묵히 한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맡기겠다.”라고 하였다.
久之 魏相公叔 害起譖之注+公叔, 韓之公族. 害, 嫉也, 忌也.한대 武侯疑之어늘
얼마 후에 나라 정승 공숙公叔이 오기를 시기하여 참소하자注+공숙公叔나라의 공족公族이다. 는 미워하고 꺼리는 것이다.무후武侯가 의심을 하였다.
起懼誅하야 遂奔楚하니
오기가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나라로 도망하였다.
楚悼王 素聞其賢이러니 至則任之爲相하다
나라 도왕悼王은 평소 그가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오기가 이르자 그에게 정사를 맡기고 정승으로 삼았다.
起明法審令하야 捐不急之官하고 廢公族疏遠者하야 以養戰士注+疏, 與疎同.하니 要在彊兵하며 破游說之言從橫者注+游說, 飾辯辭, 設詐謀, 於天下, 以要時勢者. 從, 將容切. 橫, 與衡通, 胡盲切. 以利合曰從, 以威力相脅曰橫.러라
오기는 을 밝히고 명령을 살펴서 시급하지 않은 관리를 줄이고 공족公族으로 소원疏遠한 자들을 폐하여 전사戰士를 기르니注+와 같다., 요체는 부국강병에 있었으며, 합종연횡合從連衡으로 유세하는 자들을 물리쳤다.注+유세游說는 말을 꾸미고 속임수를 써서 천하天下에 분주히 다니면서 당시의 권세를 구하는 것이다. 장용將容이다. 과 통하니 호맹胡盲이다. 이익으로 합하는 것을 이라 하고, 위력威力으로 서로 위협하는 것을 이라 한다.
於是 南平百越하고 北却三晉하고 西伐秦注+百越, 謂非一種, 猶言百蠻. 却, 退也.하니 諸侯皆患楚之彊而楚之貴戚大臣 多怨起者러라
이에 남쪽으로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삼진三晉을 물리치고 서쪽으로 나라를 정벌하니注+백월百越은 한 종류가 아님을 이르니 백만百蠻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은 물러남이다., 제후諸侯들이 모두 나라의 강성함을 걱정하였고 나라의 귀척대신貴戚大臣들 중에 오기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역주
역주1 : 천자나 제후의 宮門 밖에 두 개의 臺를 만들고 위에 樓觀을 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한다 하여 이름을 觀이라 하고, 두 觀을 양쪽에 세우고 중앙은 비워서 길을 만들기 때문에 이를 일러 闕(빠뜨림)이라고 한다.
역주2 : 항
역주3 田文 : 《資治通鑑》의 註에 여기의 田文은 齊나라 田文(孟嘗君)이 아니라 하였다.
역주4 (遂)[馳遂] : 저본에는 ‘𩢎遂’으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馳遂’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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