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綱】 봄 2월에 柔然이 西魏를 침략하니, 魏主(文帝 元寶炬)가 예전 황후 乙弗氏를 죽였다.
目
【目】 西魏 文后가 이미 비구니가 되고 나서 별궁에 살았는데, 悼后가 오히려 그녀를 시기하였다. 柔然이 도후를 위해 나라의 군대를 일으켜 남쪽으로 침략하자, 魏主가 마침내 문후에게 자진할 것을 명령하였다.
宇文泰가 여러 군대를 소집하여 沙苑에 주둔하게 하고서 유연을 대비할 적에 周惠逹이 병사와 군마를 출동시켜 京城을 수비하여 여러 거리에 참호를 만들고 雍州刺史 王羆를 불러 논의하려 하였는데,
왕비가 使者에게 말하기를 “만약 蠕蠕(柔然)이 渭水의 북쪽에 도착하였다면 나 王羆는 스스로 향리의 무리들을 이끌고 그들을 물리칠 것이니, 어찌 천자께서 계시는 도성 안에서 이와 같은 놀랍고 시끄러운 일이 있어야 되겠소.”라고 하였다.注+① 王羆는 京兆 사람이다. 유연이 夏州에 도착하였다가 퇴각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후도 병에 걸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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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여름 윤5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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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가을 8월에 梁나라 司空 袁昻이 卒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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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袁昻은 疏를 남겨 추증하는 시호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梁主(武帝 蕭衍)가 허락하지 않으니 시호를 穆正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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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겨울 11월에 吐谷渾이 東魏로 使者를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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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吐谷渾에서는 莫折念生이 반란을 일으킨 뒤로 北魏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慕容伏連籌가 卒하자, 아들 慕容夸呂가 즉위하여 비로소 可汗이라고 칭하였으니, 그 지역은 동서로 3천 리이며, 남북으로 1천여 리였다. 이해에 처음으로 使者를 파견하여 柔然의 길을 빌려서 東魏에 빙문하였다.
역주
역주1柔然侵魏 魏主殺其故后乙弗氏 :
“옛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이고서 천하를 얻음은 하지 않았거늘’(≪孟子≫ 〈公孫丑 上〉) 하물며 죄가 없는데도 한 국가의 國母를 죽였으니 또다시 일에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다. 宇文黑獺(宇文泰)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외국의 수모를 막지 못하고 魏主는 외적에게 압박을 받아 뜻을 굽혀 살육을 행하였다. ≪資治通鑑綱目≫은 위에서 ‘柔然이 西魏를 침략하였다.[柔然侵魏]’라고 기록하고 아래에서 ‘魏主가 예전 황후를 죽였다.[魏主殺其故后]’라고 기록하였으니, 自立하지 못하고 제어를 받음이 분명함을 보인 것이다. 아! 두려워할 만하구나![古人殺一不辜而得天下 有所不爲 況以無罪殺一國母 而又無補於事乎 黑獺當國 不能制禦外侮 魏主迫於寇 屈意行戮 綱目上書柔然侵魏 下書魏主殺其故后 則見不能自立 受制明矣 吁 可畏也哉]” ≪發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