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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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회령 우후懷令 虞詡가
임상任尙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注+회령懷令은 회현懷縣의 영令이다. “
병법兵法에 의하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공격하지 못하고 달리는 자가 나는 자를 쫓지 못하니, 이는 자연의 형세입니다.
지금 오랑캐가 모두 기마병이라서 하루에 수백 리를 행군하여, 쳐들어올 때에는 폭풍우와 같고 떠나갈 때에는 쏜살같으니, 보병으로 추격하면 형편상 미칠 수가 없는바, 비록 20여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켜도 오랫동안 전공戰功이 없는 이유입니다.
사군使君(임상任尙)을 위하여 계책을 세워보건대, 여러 군郡의 군대를 해산하고 각각 이들로 하여금 수천 전錢을 내게 해서 20명이 말 한 필을 함께 사서 1만의 기병대로 수천의 오랑캐를 쫓아서 후미를 추격하고 습격하여 차단하는 것만 못하니,
이와 같이 하면 오랑캐가 나오는 길이 저절로 막히게 되어 백성들에게 편리하고 일이 순조로워서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注+미尾는 그 뒤를 따라 공격하는 것이다. 엄掩은 기습함이고, 절截은 요격함이다. “기도자궁其道自窮”은 오랑캐가 나오는 길이 저절로 막혀서 신속히 나와 노략질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임상이 즉시
상언上言하고 이 계책을 따라 경무장한 기병을 보내어서
두계공杜季貢을
정해성丁奚城에서 격파하였다.
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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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태후太后가 ‘
우후虞詡에게 장수의 지략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후를
무도태수武都太守로 삼으니,
강족羌族의 무리 수천 명이
진창陳倉의
효곡崤谷(효곡)에서 우후를 가로막았다.
注+호삼성胡三省이 말하였다. “이 효곡崤谷은 마땅히 진창현陳倉縣 경계에 있어야 하니 바로 지금의 대산관大散關이고, 홍농군 민지현弘農郡 澠池縣(민지현)의 효산崤山이 아니다.”
우후는 즉시 군대를 멈추어 전진하지 않고 선언宣言하기를 “조정에 상서上書하여 군대를 증원해줄 것을 청하였으니, 이들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할 것이다.” 하니, 강족羌族들이 이 말을 듣고 마침내 나누어 인근의 현縣을 노략질하였다.
우후는 강족羌族의 병사들이 흩어진 틈을 타서 밤낮으로 길을 전진하여 하루에 이틀 길을 가서 백여 리를 행군하고, 관리와 병사들로 하여금 각각 두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해서 날마다 배로 증가시키니, 강족羌族이 이것을 보고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였다.
혹자가 묻기를 “
,
병법兵法에 의하면 하루에 행군이 30리에 불과한데 지금 하루에 장차 200리를 행군함은 어째서인가?” 하니,
우후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오랑캐의 병사들은 많고 우리의 병사는 적으니, 천천히 행군하면 적에게 쉽게 따라잡힐 것이요, 속히 진군하면 저들이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오랑캐들은 우리 군의 아궁이 수가 날로 증가함을 보면 반드시
군郡의 군대가 와서 맞이한다고 생각할 것이요, 병력이 많고 행군이 신속하면 반드시 우리를 추격함을 꺼릴 것이니, 손빈은 약함을 보였고 나는 지금 강함을 보임은 형세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注+견見(보이다)은 현편賢遍의 절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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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우후虞詡가 부임하자,
군郡의 병력이 3천 명이 못되었고,
강족羌族의 무리 만여 명이
적정赤亭을 수십 일 동안 공격하여 포위하였다.
注+살펴보건대, ≪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무도군 하변현武都郡 下辨縣에 적정赤亭이 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후는 마침내 군중軍中에 명해서 강한 쇠뇌는 발사하지 말고 은밀히 작은 쇠뇌를 발사하게 하니, 강족羌族들은 한漢나라 군대의 화살의 힘이 약해서 자신들의 진영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병력을 합쳐서 급히 공격하였다.
우후가 이에 20개의 강한 쇠뇌로 적 한 사람을 쏘게 하니, 발사하면 맞추지 못함이 없었다. 강족羌族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후퇴하자,
우후는 인하여 성城을 나가 크게 공격해서 적을 부상시키고 죽인 것이 많았고, 다음 날에는 군대를 모두 진열하고서 병사들로 하여금 동쪽 성문을 따라 나갔다가 북쪽 성문으로 들어오게 하되 의복衣服을 바꿔 입어서 몇 차례를 돌리니,
강족羌族들은
한漢나라 군대의 병력을 짐작하지 못하여 번갈아 서로 두려워하고 동요하였다. 우후는 적들이 마땅히 물러갈 것을 헤아리고는 마침내 은밀히 500여 명을 보내어서 얕은 물가에 매복을 설치하여
적賊이 도망갈 길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注+〈“어천수설복 후기주로於淺水設伏 候其走路”는〉 우후虞詡가 적賊이 물러갈 적에 물을 만나면 반드시 얕은 곳을 따라 건너갈 것을 알고는 인하여 이곳에다가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린 것이다.
오랑캐들이 과연 크게 달려오자, 인하여 습격해서 대패시켜 목을 베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으니, 적賊이 이로 말미암아 패하여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