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寅年(B.C. 103)
무인년(B.C. 103)
二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태초太初 2년이다.
春正月 丞相慶하니 以公孫賀 爲丞相하다
봄 정월에 승상丞相 석경石慶하니, 공손하公孫賀승상丞相으로 삼았다.
朝廷多事하여 督責大臣하니 丞相 比坐事死注+比, 頻也.
[目] 이때 조정朝廷에 일이 많아서 황제가 대신大臣들을 독책督責하니, 승상丞相이 자주 일에 걸려 죽었다.注+는 자주이다.
賀引拜 不受印綬하고 頓首涕泣하니
공손하公孫賀가 이끌려 승상丞相에 제수되자, 인수印綬를 받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起去한대 賀不得已拜하고 出曰 我從是殆矣라하니라
이 일어나 나가자, 공손하는 부득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나와서 말하기를 “내 지금부터 위태로워질 것이다.” 하였다.
籍吏民馬注+籍者, 摠入籍錄而取之.하여 補車騎하다
[綱] 여름에 관리와 백성들의 말[]을 장부에 적어서注+총수總數를 장부에 적어서 취하는 것이다. 군대의 수레(병거兵車)와 기마(기마騎馬)를 보조하게 하였다.
◑ 秋하다
[綱] 가을에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 李廣利攻郁成不克하고 還屯燉煌하다
[綱] 이광리李廣利욱성郁成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돈황燉煌에 주둔하였다.
貳師過鹽水注+鹽水, 卽鹽澤也.하니 當道小國 各城守하고 不給食하여 比至郁成 士不過數千이요 皆饑罷
[目] 이사장군貳師將軍(이광리李廣利)이 염수鹽水를 지나가니,注+염수鹽水는 바로 염택鹽澤이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작은 나라들이 각각 을 지키고 양식을 공급하지 아니하여, 욱성郁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병사들이 〈죽거나 이탈하여〉 수천 명에 불과하였고 모두 굶주려 피폐하였다.
攻郁成하니 郁成 大破之어늘 貳師引兵還하여 至燉煌하니 士不過什一二
욱성을 공격하였으나 욱성이 도리어 나라 군대를 대파大破하자, 이사장군貳師將軍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돈황燉煌에 이르렀는데, 남아 있는 병사가 10명 중에 1, 2명에 불과하였다.
上書乞罷兵한대하여 使使遮玉門하고 曰 軍有敢入者 輒斬之하라하니 貳師恐하여 因留燉煌하니라
글을 올려 군대를 해산할 것을 청하자, 이 노하여 사자를 시켜 옥문관玉門關을 가로막고, 말하기를 “병사 중에 감히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즉시 목을 베라.” 하니, 이사장군貳師將軍이 두려워하여 그대로 돈황에 머물렀다.
遣趙破奴하여 擊匈奴러니 敗沒하다
[綱] 조파노趙破奴를 보내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패하여 모두 항복하였다.
猶以受降城 去匈奴遠이라하여 遣浚稽將軍趙破奴하여 將二萬騎하여 期至浚稽山注+浚, 音峻. 稽, 音雞. 浚稽山, 在武威郡北, 匈奴以爲障蔽.이러니
[目] 수항성受降城흉노匈奴와 거리가 멀다 하여 준계장군浚稽將軍 조파노趙破奴를 보내 2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준계산浚稽山에 이를 것을 기약했었다.注+은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니, 준계산浚稽山무위군武威郡 북쪽에 있었는데, 흉노匈奴가 이곳을 장폐障蔽(은신隱身하는 곳)로 삼았다.
旣至 左大都尉 欲發而覺이라
조파노가 준계산에 도착하였는데, 흉노의 좌대도위左大都尉가 군대를 출동하여 반란을 하고자 하다가 발각되었다.
單于誅之하고 發兵八萬騎하여 圍破奴獲之하고 因急擊其軍하니
선우單于가 그를 죽이고 8만 명의 기병을 징발해서 조파노를 포위하여 사로잡고, 이어서 그 군대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軍吏畏亡將而誅하여 遂沒于匈奴하다
병사와 관리들은 장수를 잃고 주벌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서 마침내 모두 흉노에 항복하였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