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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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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年(243)
六年이라
魏正始四年이요 吳赤烏六年이라
夏五月朔 하다
◑冬十月 遣前監軍王平督漢中하다
◑十一月 以費禕爲大將軍錄尙書事하다
◑魏王昶 徙屯新野注+據王昶傳, 揚當作荊.하다
昶言地有常險하되 守無常勢하니 今屯宛 去襄陽三百餘里 有急不足相赴라하니 遂徙屯新野하다


癸亥年(243)
[] 나라(蜀漢) 後主 延熙 6년이다.
[] 魏主 曹芳 正始 4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赤烏 6년이다.
[] 여름 5월 초하루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 겨울 10월에 〈나라(蜀漢)가〉 前監軍 王平을 보내 漢中을 감독하게 하였다.
[] 11월에 〈나라(蜀漢)가〉 費禕大將軍 錄尙書事로 삼았다.
[] 나라 荊州豫州都督王昶新野로 이동하여 주둔하였다.注+三國志≫ 〈魏書 王昶傳〉에 의하면 은 마땅히 으로 되어야 한다.
[] 王昶上言하기를 “땅은 변하지 않는 험준함이 있으나 수비는 고정된 형세가 없다. 지금 에 주둔하여 襄陽과의 거리가 3백여 리니, 급보가 있어도 서로 달려가 구원할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마침내 新野로 옮겨서 주둔하였다.


역주
역주1 日食旣 : “皆旣日蝕은 큰 변고이다. 이로부터 陳祗와 黃皓가 권력을 부려서 蜀漢이 망하였으므로 이를 삼가 기록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일식을 기록한 것이 367번이고, 皆旣日蝕은 12번인데 모두 크게 감응하지 않은 적이 없다.(惠帝 7년 〈5월 조에〉 자세하다.)[食旣 大變也 自是 陳祗黃皓用事 而漢亡矣 故謹書之 終綱目 書日食 三百六十七 而食旣者十二 無不有大應者也(詳惠帝七年)]” ≪書法≫
역주2 (揚)[荊]豫都督 : 저본에는 ‘揚’으로 되어 있으나, 아래 訓義에 의거하여 ‘荊’으로 바로잡았다. 荊豫都督은 都督荊州豫州諸軍事를 가리킨 것이다. 督은 後漢 光武帝 시기에 督軍御史라는 직명이 보이나 後漢 말기에서 三國時代에 집중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당시 혼란으로 인해 刺史를 중심으로 한 지방통치체제가 한계를 나타내고, 또한 지방에 주둔한 군대의 역할이 중시되었다. 주둔군의 사령관이 그 지방의 민정까지 통할하게 되면서 都督某州諸軍事, 또는 都督諸州諸軍事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吳나라와 蜀나라는 군사적 요지에 督이나 都督을 두어 그 지역의 민정까지 통할하였으며, 魏나라의 경우 文帝 黃初 初期에 정식으로 都督諸軍事를 두었다고 보고 있다.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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