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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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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靈帝 학문
好文學하여 自造五十章하고 因引諸生能爲文賦者하여 竝待制하고
後諸爲尺牘及工書 皆加引召하여 遂至數十人이러니
‧賈護 多引無行之徒하여 置其間하고 憙陳閭里小事하니 帝甚悅之하여 待以不次之位하니라


영제靈帝의 학문
4-13-가
후한後漢 영제靈帝는 문학을 좋아하여 친히 《황희편皇羲篇》 50을 짓고, 뒤이어 유생들 가운데 문장과 를 잘 짓는 이들을 불러들여 모두 홍도문鴻都門 아래에서 조명詔命을 짓게 하였다.
후에 척독尺牘을 짓고 조전鳥篆을 잘 쓰는 사람들을 모두 추가로 불러들여 마침내 수십 명에 달하였다.
시중좨주侍中祭酒악송樂松가호賈護가 품행이 단정하지 않고 권세를 쫓는 무리를 많이 끌어들여서 그 속에 두고 항간의 사소한 이야기를 즐겨 아뢰니, 영제가 매우 기뻐하여 그들을 파격적인 지위로 대우하였다.


역주
역주1 4-13-가 : 《後漢書》 卷90下 〈蔡邕傳〉, 《資治通鑑》 卷57 〈漢紀49 靈帝 上之下〉에 보인다.
역주2 後漢靈帝 : 156~189(재위 168~189). 東漢 11대 황제로, 휘는 宏이다. 桓帝의 황후인 竇太后에 의해 옹립되었다. 정치적 실권이 없는 상태에서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국정을 크게 그르쳤다. 치세 기간에 竇太后의 부친 竇武가 陳蕃‧李膺 등과 함께 환관들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黨錮의 禍가 있었고, 184년(中平1)에는 黃巾賊의 亂을 시작으로 각처에서 거병하는 일이 많아졌다.
역주3 皇羲篇 : 皇羲는 伏羲氏를 가리킨다. 王先謙의 《後漢書集解》에 따르면, 《皇羲篇》은 靈帝가 熹平 4년(175) 5월에 지은 것이다. 《後漢書集解 卷60下》
역주4 鴻都門 : 洛陽에 있는 문으로, 178년(光和1)에 東漢의 靈帝가 여기에 鴻都門學을 창설하였다. 당시 太學은 儒家의 자제들이 독점하였는데, 그들이 경전에 의거하여 정치를 담론하면서 士族 세력의 기반이 되었다. 서화와 문학을 애호하였던 영제는 홍도문에 辭賦‧尺牘‧書畵 등을 학습시킬 학교를 세우고, 조서를 내려 州郡의 三公에게 학생을 뽑아 올리라 하였는데, 이때 올라온 학생들은 주로 호족이나 강성한 세력을 가진 이들의 자제였다. 士族들의 눈에 차지 않는 이들이었음에도 영제는 이 학생들을 높은 관직과 많은 녹봉으로 후대하였다. 《中國古代政治制度史辭典 鴻都門學》
역주5 鳥篆 : 고대 한자 서체의 일종으로, 鳥蟲書 또는 鳥書라고도 부른다. 일종의 美術字體로, 처음에는 미관을 위하여 새나 물고기 모양을 필획 위에 장식으로 그려 넣었다. 이후에는 그 무늬를 필획 내부에까지 그려 넣거나 그 무늬로 필획을 대체하였다. 그 복잡성으로 인해 證書를 쓰는 데 활용되었다. 《中國文字訓詁學辭典 鳥蟲書》
역주6 侍中祭酒 : 侍中僕射를 말한다. 侍中은 秦나라 때 창설되었다. 西漢 때에는 정해진 인원이 없었는데, 황제의 좌우에 있어 궁중을 드나들면서 顧問에 대비하는 직임으로, 점차 존중을 받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공이 높고 職次에 오래 있었던 이를 長官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시중복야이다. 시중복야는 동한 때 시중좨주로 명칭이 바뀌었다. 《中國歷代官制大辭典 侍中, 侍中僕射, 侍中祭酒》
역주7 樂松 : ?~?. 漢 靈帝 때의 환관으로, 奉車都尉‧侍中‧侍中祭酒‧中常侍 등을 역임하였다. 178년(和光1)에 鴻都門學이 생겼을 때 품행이 좋지 않고 趨時附勢하는 이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당시 사대부들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역주8 : 사고본에는 ‘趨’로 되어 있다.
역주9 : 대전본에는 ‘執’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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