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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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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疏屢言災異하여 有驗하니 天子 說之하사 數召見房하더시니 石顯 注+이라
18-11-가
東郡의 京房이 소를 올려 자주 災異를 예언하였는데 잘 들어맞자 元帝가 기뻐하여 경방을 자주 召見하였다. 이 당시 石顯이 권력을 전횡하고 있었다.注+이때 弘恭은 이미 죽고 石顯이 이어서 중서령으로 있었다.
嘗宴見 問上曰 之君 何以危 所任者 何人也니잇고 上曰 君不明而所任者 巧佞이니라
京房이 한번은 한가한 시간에 알현했을 때 元帝에게 여쭈었다. “幽王과 厲王은 무엇 때문에 위태롭게 되었으며 등용한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원제가 말하였다. “군주가 밝지 못했기 때문이며 등용한 자들은 아첨에 뛰어난 자들이었다.”
曰 知其巧佞而用之잇가 將以爲賢也잇가 上曰 賢之니라 曰 然則今何以知其不賢也니잇고 上曰 以其時亂而君危 知之니라
경방이 말하였다. “아첨에 뛰어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기용한 것입니까? 아니면 어질다고 생각해서였습니까?” 원제가 말하였다. “어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방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으로 그들이 어질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까?” 원제가 말하였다. “그 시대가 어지럽고 그 군주가 위태로웠던 것으로 이를 안다.”
曰 若是인대 任賢必治‧任不肖必亂 必然之道也어늘 幽‧厲 何不覺悟而更求賢이며 曷爲卒任不肖以至於是니잇고
경방이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반드시 治世가 되고 不肖한 자를 등용하면 반드시 亂世가 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유왕과 여왕은 어찌하여 이를 깨닫지 못하고 다시 어진 사람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어찌하여 끝내 불초한 자를 등용하여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었습니까?”
上曰 臨亂之君 各賢其臣하니 皆覺悟 天下 安得危亡之君이리오
원제가 말하였다. “어지러운 세상의 군주는 저마다 자기 신하를 어질다고 여긴다. 가령 그들이 모두 이를 깨달았다면 천하에 어찌 위태로운 군주나 망하는 군주가 있겠는가?”
曰 齊桓公‧秦二世 亦嘗聞此君而非笑之언마는이나 則任하여 政日益亂하고 盜賊滿山하니
경방이 말하였다. “齊 桓公과 秦 二世 역시 일찍이 이 군주들의 일을 듣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豎刁와 趙高를 등용하여 정사는 날이 갈수록 더욱 어지러워지고 도적은 산에 넘쳤습니다.
何不以幽‧厲卜之而覺悟乎잇고 上曰 唯有道者 能以往知來耳니라
어찌하여 유왕과 여왕의 일로 이를 헤아려서 깨닫지 못했습니까?” 원제가 말하였다. “오직 才德을 지닌 자만이 지난 일을 가지고 앞으로 올 일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以示萬世之君하시니
京房이 이에 관모를 벗고 머리를 조아린 뒤 말하였다. “《춘추》에서는 242년 동안의 災異를 기록하여 만대의 후세 군주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今陛下 卽位以來 日月 失明하며 星辰 逆行하며 山崩泉湧하며 地震石隕하며 夏霜冬雷하며 春凋秋榮하며
지금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해와 달이 밝은 빛을 잃고 星辰이 거꾸로 운행하며, 산이 무너지고 샘이 용솟음치며, 지진이 나고 운석이 떨어지며,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겨울에 우레가 치며, 봄에 초목이 시들고 가을에 꽃이 피며,
하며 水旱하며 民人 饑疫하며 盜賊 不禁하며 滿市하여
서리가 내리는데도 풀이 죽지 않으며, 홍수와 가뭄이 발생하고 명충이 생기며, 백성들이 굶주리고 역병에 걸리며, 도적을 막지 못하고 肉刑을 받은 자들이 저자에 넘쳐납니다.
春秋所紀災異盡備하니 陛下 視今爲治邪잇가 亂邪잇가 上曰 亦極亂耳니라
그리하여 《춘추》에 기록된 재이가 모두 다 발생하였으니, 폐하께서 보시기에 지금은 치세입니까? 난세입니까?” 元帝가 말하였다. “또한 지극한 난세일 뿐이다.”
曰 今所任用者 誰歟잇고 上曰 然이나 幸其愈於彼注+愈, 猶勝也. 又以爲不在此人也라하노라
京房이 말하였다. “지금 임용된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元帝가 말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때보다는 낫다.注+‘愈’는 ‘勝(낫다)’과 같다. 또 재이의 책임은 이들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曰 前世之君 亦皆然矣 臣恐後之視今 猶今之視前也일까하노이다
경방이 말하였다. “전대의 군주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후세에서 지금을 보는 것이 지금 전대를 보는 것과 같을까 두렵습니다.”
良久曰 今爲亂者 誰哉 曰 明主 宜自知之니이다 上曰 不知也로라 如知인댄 何故用之리오
원제가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지금 어지럽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경방이 말하였다. “밝으신 폐하께서 의당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원제가 말하였다. “모르겠다. 알았다면 어찌 그들을 등용했겠는가?”
曰 上最所信任與圖事帷幄之中하여 進退天下之士者 是矣니이다 指謂石顯이러니 上亦知之하시고 曰 已諭로라
경방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가장 신임하는 사람으로 폐하의 측근에서 함께 일을 도모하여 천하의 선비들을 등용시키고 물러나게 하는 자, 바로 그자입니다.” 경방이 가리킨 자는 石顯이었는데, 원제 역시 이를 알고 말하였다. “이미 알겠노라.”
罷出이러니 亦不能退顯也 顯及注+五鹿姓, , 顯之黨也. 皆疾房欲遠之하여 建言宜以房爲라한대
경방이 알현을 마치고 나갔는데, 후에 원제가 역시 석현을 내치지 못하였다. 석현과 五鹿充宗이注+‘五鹿’은 성이고 ‘充宗’은 이름이니, 오록충종은 石顯의 당여이다. 모두 경방을 미워하여 그를 멀리 떼어놓고자 경방을 군수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於是 以房爲이러니 去月餘 하다
원제가 이에 경방을 魏郡 太守로 삼았다. 경방이 떠나고 한 달쯤 뒤에 일에 연루되어 불러서 하옥하고 棄市刑에 처하였다.
역주
역주1 18-11-가 : 《資治通鑑》 卷29 〈漢紀21 元帝 下〉 建昭 2년(기원전 37) 6월 조에 보인다.
역주2 : 사고본에는 ‘都’로 되어 있다.
역주3 京房 : 기원전 77~기원전 37. 本姓은 李이고 字는 君明이며 지금의 하남성 淸豐 서남쪽에 있던 東郡 頓丘 사람이다. 漢 元帝 때 魏郡 太守를 역임하였다. 焦延壽에게 易學을 배웠는데, 특히 災異의 예측에 뛰어나 京氏易學을 창시하였다. 石顯 등이 권력을 전횡한다는 탄핵 상소를 올린 일로 인해 석현과 五鹿充宗의 미움을 받아 魏郡 太守로 좌천되었다가 한 달여 만에 무고를 받아 하옥되어 죽었다. 《京氏易傳》이 전한다. 《漢書》 권75에 列傳이 있다. 이 京房 이전에 楊何에게서 역학을 전수받아 梁丘賀(?~?)에게 전수한 다른 京房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專’으로 되어 있다.
역주5 是時……書令 : 弘恭이 죽고 石顯이 중서령이 된 것은 漢 元帝 初元 2년(기원전 47)의 일이다.
역주6 幽厲 : 西周의 12번째 왕인 幽王(기원전 795~기원전 771, 재위 기원전 782~기원전 771)과 10번째 왕인 厲王(?~기원전 828, 재위 기원전 878~기원전 841)을 이른다. 厲王은 탐욕스러운 데다 학정을 일삼고 끊임없이 주변 민족과 전쟁을 벌였다. 결국 國人의 폭동이 일어나자 周나라의 변경 지역인 彘(체)로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여왕이 彘로 달아난 14년간은 주나라 최초의 공화정으로 불린다. 幽王은 褒姒를 총애하여 申后와 신후가 낳은 태자 宜臼를 폐하고 포사가 낳은 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이에 신후의 아버지 申侯는 기원전 771년에 犬戎과 연합하여 주나라에 쳐들어와 주나라의 수도인 鎬京을 파괴하고 유왕을 죽인 뒤 태자 의구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바로 周 平王이다. 평왕이 동쪽 洛邑으로 천도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東周라고 부른다.
역주7 : 사고본에는 ‘耶’로 되어 있다.
역주8 : 대전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다.
역주9 豎刁 : 춘추시대 五霸 중 첫 번째 霸者였던 齊 桓公(?~기원전 643, 재위 기원전 685~기원전 643)의 환관인 寺人 貂를 이른다. 豎貂라고도 한다.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스스로 거세하고 궁에 들어가 환공에게 총애를 받았다. 환공이 위독해지자 수조는 음식을 주지 않아 환공을 굶어죽게 하였다. 환공이 죽은 뒤에는 요리사였던 寵臣 易牙와 함께 내란을 일으켜 관리들을 죽이고 서자인 公子 無詭를 임금으로 옹립하였다. 태자인 公子 昭(훗날의 齊 孝公)는 宋나라로 망명하였다. 뒤에 공자 소가 宋 襄公의 도움으로 기원전 642년에 송나라 군대를 대동하고 제나라로 들어오자 병권을 쥐고 있었던 역아가 나가서 이를 맞아 싸웠는데, 노신 高傒가 이 틈을 타고 궁에 군사를 매복시킨 뒤 수조를 불러들여 살해하였다. 무궤 역시 즉위한 지 3개월 만에 피살되고 역아는 魯나라로 망명하였다.
역주10 趙高 : 18-1-가 ‘趙高’ 주 참조.
역주11 免冠頓首 : 관모를 벗고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황제에게 용서를 구할 때 하는 행동이다. 여기에서는 極諫을 하기 위해 미리 용서를 구한 것이다.
역주12 春秋……災異 : 공자가 찬술한 《춘추》는 魯 隱公 원년(기원전 722)부터 魯 哀公 14년(기원전 481)까지 모두 24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日食이나 지진 등 天變災異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역주13 隕霜不殺 : 草妖의 일종이다. 《春秋穀梁傳》 僖公 33년(기원전 627) 조에 “서리가 내리는데도 풀이 죽지 않았다.[隕霜不殺草]”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대한 晉 范寗의 集解에 “《경방역전》에 이르기를 ‘군주가 신하에게 권한을 빌려주면 서리가 내려도 풀을 죽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京房易傳曰 君假與臣權 隕霜不殺草]”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4 螟蟲 : 蟲災의 일종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5년(기원전 718) 孔穎達의 正義에 舍人의 말을 인용하여 “싹의 속을 파먹는 벌레에 ‘螟’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깜깜하여 알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食苗心者名螟 言冥冥然難知也]”라고 하고, 또 李巡의 말을 인용하여 “벼의 속을 파먹는 벌레를 ‘螟’이라고 한 것은, 그 간사함을 깜깜하여 알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食禾心爲螟 言其姦冥冥難知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5 刑人 : 18-4-가 ‘五刑’ 주 참조.
역주16 러라 : 509본에는 ‘러니’로 되어 있다.
역주17 五鹿充宗 : 서한의 저명한 유학자이다. 漢 元帝(기원전 74~기원전 33) 때 石顯의 힘으로 尙書令이 되었으며 九卿의 하나인 少府에까지 올랐다. 漢 成帝(기원전 51~기원전 7, 재위 기원전 31~기원전 7)가 즉위한 뒤 석현이 권력을 잃자 그도 따라서 玄菟 太守로 좌천되었다. 《齊論語》와 《梁丘易》을 전수받았으며, 그가 지은 《略說》 3편이 《漢書》 〈藝文志〉에 수록되어 있다.
역주18 充宗名 : 사고본에는 ‘名充宗’으로 되어 있다. 대전본에는 ‘充名宗’으로 되어 있으나, 오류이다.
역주19 郡守 : 縣 이상의 행정 단위인 郡의 행정 장관을 이른다. 漢代에는 太守라고 하였다.
역주20 魏郡 : 治所는 鄴城이다. 지금의 하북성 臨漳縣 서남쪽에 있었다.
역주21 坐事徵下獄棄市 : 京房에게는 제자이자 사위였던 張博이란 자가 있었는데, 장박은 漢 元帝의 아우인 懷陽王 劉欽(?~기원전 27)의 외삼촌으로, 간사하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경방은 황제를 알현하고 나오면 황제와 나눈 대화를 장박에게 얘기하곤 하였는데, 漢나라 제도에 따르면 궁궐의 일을 외부에 누설하는 것은 대역부도에 해당하는 죄였다. 장박이 유흠에게 잘 보이고자 경방이 얘기한 궁궐의 일을 모두 기록하여 유흠에게 보내자, 石顯이 이를 알고서 “경방과 장박이 통모하여 정사를 비방하고 천자에게 그 죄를 돌리며 제후왕을 연루시켜 죄를 짓게 하였다.[房與張博通謀 非謗政治 歸惡天子 詿誤諸侯王]”라고 고하였다. 이 일로 인해 경방은 하옥되어 棄市刑에 처해졌다. ‘기시형’은 사형 중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형으로 저자에서 죽이는데, 사람들과 함께 그를 버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漢 景帝 2년(기원전 155) 2월에, 5대의 수레에 말을 메어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찢어서 죽이는 이전의 磔刑을 기시형으로 바꾸었다. 18-4-가 ‘五刑’ 주 참조. 《漢書 卷5 景帝紀》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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