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光武帝는 일찍이 儒生이었는데 즉위하고 나서 經術에 부지런히 힘쓴 것이 또 이와 같았으니, 예전의 漢나라를 되찾고 그 자신의 대에 태평을 이룩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夏 少康‧周 宣王과 비교했을 때 거의 가까웠으나, 아쉽게도 그 당시에 伏湛‧侯霸의 무리처럼 儒臣으로서 황제를 보좌하는 이들이 모두 章句之學을 일삼는 書生으로 옛사람이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았던 일에 밝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광무제가 재위했던 30여 년 동안 비록 잘못한 일은 드물었으나,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正后를 폐위하고 太子를 바꾸었으니 집안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리에 부끄러운 점이 있었으며, 直諫한다는 이유로 大臣을 죽였으니 물 흐르듯 순순히 간언을 따르는 미덕에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광무제의 학문이 善을 밝히고 자신을 성실하게 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父子‧夫婦‧君臣 관계에 있어 유감스러움이 없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聖學이 밝아지지 않아 비록 광무제처럼 불세출의 자질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침내 역대 聖王의 盛世는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군주가 학문에 힘쓰는 데에 있어 구차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