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2-1-나2(呂)
呂大臨이 말하였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단지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이 기질을 이기면 어리석은 사람이 밝음에 나아갈 수 있고 유약한 사람이 강함에 나아갈 수 있으며,
덕이 기질을 이기지 못하면 비록 학문에 뜻을 둔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밝게 되지 못하고 유약한 사람이 굳건히 서게 되지 못한다. 모두가 善이고 惡이 없는 것은 본성이니, 사람이면 똑같이 있는 것이다.
어두움‧밝음‧강함‧유약함과 같이 타고난 것이 똑같지 않은 것은 재질이니,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성실함이 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똑같이 있는 본성으로 되돌아가고 그 다른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재질을 가지고서 변화시켜 아름답게 하고자 한다면 그 노력을 백 배로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거칠고 엉성한 학문을 가지고 하다 말다 하면서 그 아름답지 않은 재질을 변화시키려고 하다가,
변화되지 않으면 ‘타고난 재질이 아름답지 않으니 학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自棄]’에 과감한 것이니 그 不仁함이 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