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對策曰 臣
이 謹按春秋之文
호니 求王道之端
인댄 得之於正
이니
正次王하고 王次春하니 春者는 天之所爲也요 正者는 王之所爲也라
其意曰 上承天之所爲而下以正其所爲하여 正王道之端云爾라 然則王者가 欲有所爲인댄 宜求其端於天이니
天道之大者가 在陰陽하니 陽爲德이요 陰爲刑이니 刑은 主殺而德은 主生이라
是故陽은 常居大夏而以生育長養爲事하고 陰은 常居大冬而積於空虛不用之處하니 以此로 見天之任德不任刑也로소이다
天이 使陽으로 出布施於上而主歲功하고 使陰으로 入伏於下而時出佐陽하니
陽不得陰之助면 亦不能獨成歲언마는 終陽以成歲爲名하니 此가 天意也라
王者가 承天意以從事라 故任德敎而不任刑하나니 刑者는 不可任以治世가 猶陰之不可任以成歲也라
爲政而任刑이면 不順於天이라 故先王이 莫之肯爲也하시니
今에 廢先王德敎之官而獨任執法之吏治民하니 毋乃任刑之意與아
孔子
가 曰
을 謂之虐
이라하시니 虐政
을 用於下而欲德敎之被
四海
라 故難成也
니이다
25-7-가
漢 武帝 建元 초에 董仲舒가 다음과 같이 對策을 올렸다. “신이 삼가 《춘추春秋》의 글을 고찰해보니 왕도王道의 단서를 찾아본다면 ‘정正’에서 얻었습니다.
‘정正’은 ‘왕王’ 다음의 자리에 있었고, ‘왕王’은 ‘춘春’ 다음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춘春’은 하늘이 행하는 바이고, ‘정正’은 제왕이 행하는 바입니다.
그 의미는 ‘위로는 하늘이 행하는 바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신이 행하는 바를 바로잡음으로써 왕도王道의 단서를 바로잡는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왕이 훌륭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하늘에서 그 단서를 구해야 합니다.
천도天道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바로 음陰과 양陽에 있습니다. 양陽은 덕德이 되고 음陰은 형벌이 되니, 형벌은 죽임을 주관하고 덕은 생육을 주관합니다.
이 때문에
양陽은 항상 한여름에 머물면서 만물의 생장과 양육을 일로 삼고,
음陰은 항상 한겨울에 머물면서 텅 비어 작용하지 않는 곳에 쌓입니다. 이로 볼 때 하늘은 덕에 맡기지 형에 맡기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董仲舒
하늘은 양으로 하여금 나와서 위에 베풀어져 한 해의 일을 주관하게 하고, 음으로 하여금 들어가 아래에 잠복하여 때때로 나와서 양을 보좌하도록 하였습니다.
양이 음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또한 양 혼자서는 한 해의 일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양이 한 해의 일을 완수하는 것으로 이름을 삼았으니 이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왕도王道를 행하는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정사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덕과 교화에 맡기지 형벌에 맡기지 않습니다. 형벌은 맡겨서 세상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마치 음이 맡겨서 한 해의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사를 행하면서 형벌에 맡기면 하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훌륭한 군왕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전 시대의 훌륭한 군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덕과 교화를 맡은 관직을 폐지하고, 오직 법률을 집행하는 관리에게만 맡겨서 백성을 다스리니 형벌에 맡기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래에 학정虐政을 쓰면서 덕과 교화가 천하에 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