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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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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年 以亞夫爲丞相이러니 其後 어시늘 亞夫 爭之不能得하니 由此疏之하시다
16-5-가3
景帝 中元 3년(기원전 147)에 주아부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그 후에 경제가 栗太子를 폐하려 하자 주아부가 간쟁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경제가 이로 말미암아 주아부를 멀리하였다.
역주
역주1 16-5-가3 : 관련 내용이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周亞夫〉, 《前漢書》 卷40 〈周勃傳 周亞夫〉,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中元 3년(기원전 147) 2월 기사 등에 보인다. 《자치통감》에는 주아부를 승상으로 임명한 것이 前元 7년(기원전 150) 2월의 일로 되어 있다.
역주2 上廢栗太子 : 栗太子는 臨江王으로 강등된 劉榮을 말한다. 유영은 景帝의 큰아들이자 栗姬의 소생으로 前元 4년(기원전 153)에 태자가 되었다. 경제의 누이인 長公主 劉嫖가 자신의 딸을 유영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는데, 유영의 어미인 율희가 허락하지 않자, 율희를 미워하여 참소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경제가 율희와 태자를 미워한 끝에 전원 7년(기원전 150) 11월에 태자를 폐위하여 임강왕으로 삼았다. 中元 2년(기원전 148) 3월에 유영이 文帝 廟의 영역을 침범하여 궁전을 지었다가 中尉 郅都에게 심문을 받던 도중 두려움으로 자살하였다. 《前漢書 卷53 景十三王傳 臨江閔王傳》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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