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1-2-나(안按)
[신안臣按] 모전毛傳에 이르기를 “유왕幽王이 신申나라 여인에게 장가들어 태자 의구宜臼를 낳았는데, 또 포사褒姒를 총애하여 아들 백복伯服을 낳자 그녀를 세워서 후后로 삼고 의구를 추방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태자의 사부가 이 시를 지어 유왕을 풍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자지간은 타고난 본성의 은혜이고 태자는 천하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유왕이 한번 포사의 참언을 듣자마자 마치 권하는 술잔을 받은 즉시 마시듯이 하여 조금도 참언을 막지 않았습니다.
참소하는 사람의 말은 얼핏 들으면 미혹될 수도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유왕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참소하는 말을 듣자마자 더 이상 찬찬히 그 실상을 살펴보지 않고 대번에 태자를 추방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태자가 스스로 결백을 밝힐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포사가 또한 어찌 스스로 직접 참소를 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국어國語》에 이르기를 “포사가 총애를 받아 이에 괵 석보虢 石父와 한패가 되어 의구를 쫓아냈다.”라고 하였습니다.
괵 석보는 참소하고 아첨하며 겉으로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왕이 그를 발탁하여 경사卿士로 삼았으니 정실正室로 맞이한 왕후가 버려지고 내첩內妾이 왕후가 되며 서얼이 총애받고 적장자가 위태로워진 것은 모두 괵 석보가 실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끝내 신후申侯가 분한 마음을 품고 견융犬戎을 불러들여 유왕이 죽고 포사가 사로잡혀 가고 의구가 즉위하기는 하였지만 주周나라가 동쪽으로 천도遷都하게 되었습니다. 참소하는 사람의 해악이 이와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살피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