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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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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林甫 恐士對詔 或斥己하여 卽建言호대
19-12-가
이 당시에 조서를 내려 천하의 선비 중에서 한 가지 才藝라도 있는 사람은 모두 조정에 와서 考試에 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李林甫가 선비들이 對策에서 혹시라도 자신을 배척할까 두려워하여 즉시 다음과 같이 건의하였다.
士皆草茅 未知禁忌하고 徒以狂言으로 亂聖聽하나니 請悉委尙書省長官試問하고
“선비들은 모두 재야의 출사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금기를 알지 못하고 한갓 터무니없는 말로 聖上의 이목을 어지럽힐 뿐입니다. 전부 尙書省의 장관에게 맡겨 試策하도록 하십시오.”
使御史中丞監摠하니 而無一中程者 林甫 因賀上以爲野無라하더라
그리고 御史中丞에게 감독,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니 한 사람도 합격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이임보가 재야에 남겨진 인재가 없다고 현종에게 경하를 올렸다.
역주
역주1 19-12-가 : 《新唐書》 卷223上 〈姦臣列傳 李林甫〉에 보인다. 天寶 6년(747)의 일이다.
역주2 詔天……就選 : 唐代의 인재 선발 방식의 하나인 과거제는 隋代에 시작되었으나 唐 太宗‧武則天‧玄宗 때 비로소 완정한 체제를 갖추었다. 唐의 과거는 매년 정기적으로 거행되는 常科와 황제의 下詔에 따라 임시로 거행되는 制科로 구분되었다. 常科는 처음에는 吏部의 考功員外郞이 주관하였으나 점차 禮部 侍郞이 주관하게 되었는데, ‘權知貢擧’라고 불렀다. 常科 급제 후에는 吏部의 選試를 거쳐 합격해야만 관직에 임명되었다. 殿試는 武則天이 載初 원년(690) 2월에 洛成殿에서 직접 貢人에게 策問을 시행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唐 玄宗은 재위 기간 중에 장안과 낙양의 궁전에서 여덟 차례나 과거응시자의 面試를 통한 取才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科目은 秀才‧明經‧進士‧俊士‧明法‧明字‧明算 등 50여 종이 있었다. 唐初에는 秀才科가 매우 중시되었으나 점차 폐지되었고 明經과 進士가 주요 과목이 되었다. 과거 응시자로는 경사와 주현의 學館 출신인 生徒와 解試 급제자인 鄕貢이 있었다. 주현의 고시는 解試라고 하였고 尙書省의 고시는 省試 또는 禮部試라고 하였다. 명경과 진사 모두 처음에는 經義와 時務에 대한 試策으로 선발하였으나 대체로 진사는 문학적 재능이 요구되는 詩賦를 중시하고 명경은 經文의 암기 여부를 시험하는 帖經과 경문의 자구에 대해 간단하게 筆答하는 墨義를 중시하였다. 특히 高宗 이후로는 진사과가 중시되어 진사 출신에서 많은 재상이 배출되었으나, 급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역주3 : 사고본에는 ‘遺’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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