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주희朱熹가 말하였습니다. “우산牛山은 제齊나라 국도國都의 동남쪽에 있는 산이니, 그 산의 나무가 본래 아름다웠는데 나무를 베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氣의 화육化育이 유행流行하여 중단된 적이 없으니, 낮과 밤의 사이에 반드시 생장하는 바가 있기에 싹과 움돋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되었다. 이 때문에 민둥민둥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양심良心’은 본연의 선한 마음이니, 곧 이른바 ‘인의仁義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새벽의 기운’은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의 맑고 밝은 기운을 이른다.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들과 서로 가깝다.’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를 얻음을 말한다.
사람의 양심이 비록 이미 산일散逸되었지만 그 낮과 밤의 사이에 그래도 반드시 생장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새벽에 아직 사물과 접하지 않아서 그 기운이 맑고 밝을 때에는 양심이 그래도 반드시 발현되는 것이 있다.
다만 그 발현되는 것이 지극히 미미하고 낮에 행하는 선하지 못한 행실이 또 이미 따라서 속박하여 없애니, 마치 산의 나무가 베어졌어도 오히려 싹과 움돋이가 있지만 소와 말이 또 방목되는 것과 같다.
낮에 하는 소행이 이미 그 밤에 자라는 바를 해침이 있고 밤에 자라는 바가 또 낮에 하는 소행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반복하여 서로 해쳐서 밤에 자라난 기운이 생겨나는 것이 날로 점점 적어져서 인의仁義의 양심을 보존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새벽의 기운이 또한 맑지 못하여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마침내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原注
또 말하였습니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마음을 잡으면 여기에 있고 놓아버리면 잃어버려서 그 나고 듦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또한 일정한 곳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맹자孟子가 이를 인용하여 신명神明하고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은 얻었다가도 잃기 쉽고 보존하여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잠시라도 그 함양하는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니, 학문하는 자가 마땅히 어느 때든지 힘을 쓰지 않는 때가 없어서 정신이 맑고 기운이 안정되게 하여 항상 새벽녘과 같게 한다면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어디를 가든지 인의仁義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마음이 어찌 나고 듦이 있겠는가. 또한 잡아두는 것과 놓아버리는 것을 가지고 말했을 뿐이다. 마음을 잡아두는 방법은 공경하여 내면을 곧게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