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夫四者之心을 所以人人이 皆有者는 由其具仁‧義‧禮‧智之性故也라
鑠者는 以火銷金之名이니 火之銷金은 由外以至內也어니와 性則我所固有라 非自外來니
本然之才가 初無限量하여 極天下之善하여 無不可爲者니
曰思曰求而又曰盡이라하시니 此가 孟子教人用功之至要라
烝民之詩는 其説이 已見前章하니 合而觀之가 可也니이다
原注
그러므로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여겨 세 사람의 설을 늘어놓아 孟子를 배척하였는데, 맹자는 그와 변론하지 않고 오직 性이 발현된 것만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이른바 ‘性’이라는 것은 仁‧義‧禮‧智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 발현되기 전에는 볼 수 있는 조짐이 없다가 오직 외물에 감촉되어 動하여서 惻隱‧羞惡‧恭敬‧是非가 된 뒤에야 본성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선한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발현하여 情이 된 것 역시 선합니다.
情이 선한 것을 통해서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善’이라는 것은 본성이고 능히 善을 행하는 것은 재질입니다.
본성은 體로 말한 것이고 재질은 用으로 말한 것이니, 재질은 본래 善이 될 수 있고 惡은 될 수 없는데 이제 마침내 不善을 행하는 데 이른 것은 이것이 어찌 재질의 탓이겠습니까.
原注
저 네 가지의 마음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仁‧義‧禮‧智의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鑠’은 불로 쇠를 녹이는 것을 이름한 것이니, 불이 쇠를 녹이는 것은 밖으로부터 안에 이르는 것이지만 본성은 나에게 본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대저 物이 구함이 있는데도 얻지 못하는 것은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성은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니 어찌 얻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본연의 재질은 애초에 한정이 없어서 천하의 善을 지극히 하여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마침내 善과 惡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그 재질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다[思]’라고 하고 ‘구하다[求]’라고 하고 또 ‘다하다[盡]’라고 하였으니, 이는 孟子가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쓰도록 한 지극한 요체입니다.
〈烝民〉시는 그 내용이 이미 앞 장에 보이니 합쳐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