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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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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正始中 尙書 好老莊書하여之徒 競爲하여 祖尙虛無하여이라하니
13-9-가1
魏나라 正始 연간(240~248)에 尙書 何晏이 老莊의 글을 좋아하여 夏侯玄‧荀粲‧王弼의 무리와 함께 앞을 다투어 淸談을 하여 虛無를 숭상해서 “六經은 聖人의 찌꺼기이다.”라고 하였다.
由是 天下士大夫 慕效하여 遂成風流하니 不可復制러라注+正始, 魏主曹芳年號. 是時, 司馬懿專國. 晏蓋之黨.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사대부가 흠모하고 본받아서 마침내 풍속을 이루니 다시 제재할 수 없었다.注+‘正始’는 魏主 曹芳의 연호이다. 이 당시에 司馬懿가 국정을 專斷하였다. 何晏은 曹爽의 黨與이다.
역주
역주1 13-9-가1 : 《資治通鑑》 卷75 〈魏紀7 邵陵厲公 中〉 嘉平 원년(249) 조에 보인다.
역주2 何晏 : 190~249. 삼국시대 魏나라의 玄學家이다. 13-4-나(按) ‘何晏’ 주석 참조.
역주3 夏侯玄 : 삼국시대 魏나라의 관료이다. 자는 太初이다. 沛國 譙縣 사람이다. 夏侯尙의 아들이며 曹爽의 고종 사촌이다. 약관에 散騎黃門侍郞이 되었고, 齊王 曹芳을 보좌하여 散騎常侍‧中護軍 등을 지냈다. 또 征西將軍으로 雍凉州諸軍事가 되었다. 조상이 실각하고 司馬懿가 집권한 뒤에 大鴻臚‧太常 등을 역임하였다. 中書令 李豊‧光祿大夫 張緝 등과 함께 司馬師를 제거하고 정권을 曹氏에게 되돌릴 것을 꾀했으나 누설되어 살해당했다. 正始 연간의 명사로, 名理를 잘 말했고 何晏‧王弼 등과 함께 玄學을 창도했다. 작품으로는 〈時事議〉‧〈樂毅論〉‧〈皇胤賦〉 등이 있다.
역주4 荀粲 : ?~?. 자는 奉倩이다. 삼국시대 魏나라 潁川 潁陰 사람이다. 荀彧의 아들이다. 老莊의 설을 좋아하였다. 부인이 미인이었는데, 열병에 걸려 죽자 너무 애통해하다가 죽었다.
역주5 王弼 : 226~249. 삼국시대 魏나라의 經學家이자 玄學家이다. 13-4-나(按) ‘王弼’ 주석 참조.
역주6 淸談 : 魏晉 시기 老莊學의 영향을 받아 虛無를 숭상하고 玄理에 대한 空論을 일삼던 풍조를 말한다. 玄談이라고도 한다. 주로 有無와 本末에 대한 分辨에 집중하였고, 노장의 학설을 이용하여 유가의 經義를 해석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魏나라의 何晏‧夏侯玄‧王弼 등에서 시작되어 晉나라 王衍 등에 이르러 더욱 성대해졌고, 南朝의 蕭齊‧蕭梁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역주7 六經……糟粕 : 齊 桓公이 당상에서 聖人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輪扁이 글을 쓴 聖人이 살아 있는지를 묻고서 이미 죽었다면 환공이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다.[古人之糟魄已夫]”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 이유에 대해 성인이 터득한 오묘한 진리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옛사람이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을 것이다.[古之人與其不可傳也 死矣]”라고 설명하였다. 《莊子 天道》
역주8 曹爽 : 삼국시대 魏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昭伯이다. 沛國 譙縣 사람이다. 大將軍 曹眞의 아들이다. 魏나라 明帝 曹睿 때 散騎侍郞을 거쳐 城門校尉에 올랐다. 散騎常侍를 겸하고 武衛將軍으로 轉職되었다. 明帝의 顧命을 받아 司馬懿와 함께 齊王 曹芳을 옹립하고 보좌하였다. 大將軍‧中外諸軍事에 올라 병권을 장악하고 何晏‧鄧颺(양) 등을 黨與로 삼아 조정을 장악하였다. 사마의를 지나치게 견제하다가 정변을 촉발시켜 실각하고 멸족당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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