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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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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6-5-나(按)
按 人之度量 相去豈不遠哉 方亞夫之軍細柳也 持軍之嚴 雖人主 無所屈이라
文帝 乃以是知之曰 緩急 眞可將也라하시고 其後作相 因事數諫하여 積忤上心이라
景帝 以是疑之曰 鞅鞅非少主臣也라하시니 細柳之事 在孝景時則亞夫 必以傲上誅 尙何兵之可將이리오
使其得相文帝하여 盡忠論諫則必以社稷臣目之 二帝之度量相去不同 如此하니 其所以然者
文帝 不以拂己爲忤하고 景帝 專以適己爲悅故也 故人君 欲眞知臣下之賢否인댄 其必自去私意始니이다


原注
16-5-나()
[신안臣按] 사람의 도량에 있어 그 차이가 얼마나 현격합니까. 주아부가 세류細柳에 주둔했을 때 군대를 거느린 위엄이 임금에게도 굽힌 바가 없었습니다.
문제가 이에 이것으로 주아부를 알아보고 말하기를 “위급한 일에 참으로 장수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주아부가 승상이 되었을 때 일로 인해 자주 간하여 임금의 마음을 여러 번 거슬렀습니다.
경제景帝가 이것으로 주아부를 의심하여 “앙앙불락鞅鞅不樂하는 것이 어린 군주의 신하는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류細柳의 일이 만약 경제 때에 있었다면 주아부는 틀림없이 임금에게 오만했다고 하여 주살되었을 것이니, 그러고도 어떻게 군대를 이끌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주아부가 문제文帝의 재상이 되어 충성을 다해 의론하고 간언할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사직지신社稷之臣으로 지칭되었을 것입니다. 두 황제의 도량의 차이가 달랐던 것이 이와 같았으니 그러했던 이유는,
문제는 자신을 거스르는 것을 가지고 거역한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경제는 자신에게 맞추는 것만 기쁨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신하의 현부賢否를 진정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사로운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사고본에는 ‘倘’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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