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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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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성 차자
新除眞德秀 箚子奏호대
중봉대부中奉大夫로서 새로 제수된 권호부상서權戶部尙書 진덕수眞德秀차자箚子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聞聖人之道 有體有用하니
“신은 들으니, 성인의 가 있고 이 있다 하였습니다.
本之一身者 體也 達之天下者 用也
한 몸에 바탕을 둔 것은 이고 천하에 두루 통하는 것은 입니다.
堯‧舜‧之爲治 六經‧語‧孟之爲敎 不出乎此而大學一書 由體而用하여 本末先後 尤明且備하니
임금‧임금‧삼왕三王의 치세와 육경六經‧《논어》‧《맹자》의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대학》이라는 책은 에서 시작하여 에 이르러 본말本末선후先後가 더욱 분명하고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지금 옛사람이 학문을 했던 차례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책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논어》와 《맹자》는 그 다음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蓋其所謂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體也 其所謂齊家‧治國‧平天下者 用也 人主之學 必以此爲據依然後 體用之全 可以默識矣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이며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이니, 임금의 학문은 반드시 이것을 근거로 삼은 뒤에 이 온전히 구비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恭惟陛下 有高宗之하시고 有成王之하사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뜻을 겸손하게 하고 때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했던’ 고종高宗과 같은 학문과 ‘선왕의 덕을 계속하여 밝혔던’ 성왕成王과 같은 덕을 지니시어,
卽位以來 無一日不親近儒生하시며 無一日不講劘道義하시니 自昔好學之君 未有加焉者也니이다
즉위한 이래 어느 하루 유생儒生을 가까이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어느 하루 도의道義를 강마하지 않은 적이 없으셨으니, 예로부터 학문을 좋아했던 임금 중에 이보다 더한 분은 없었습니다.
昨值之初하여 獲陪講讀之末하여 嘗欲因大學之條目하여 附之以經史하여 纂集爲書하여 以備淸燕之覽이러니
신은 지난번 폐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폐하를 모시고 강독하는 직임에 있었기에 일찍이 《대학大學》의 조목을 기반으로 하여 여러 경문經文사적史蹟을 덧붙여서 책으로 찬집纂集하여 한가한 시간에 보실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는데,
하여 志弗之遂
황망히 도성을 떠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而臣 區區愛君憂國之念 雖在畎畒 未嘗少忘이라
그러나 신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초야에 있으면서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居閒無事 則取前所爲而未遂者하여 朝夕編摩하여 名之曰大學衍義라하니
그리하여 벼슬을 떠나 한가하게 살면서 일이 없게 되자, 전에 하려고 했다 이루지 못했던 것을 가져다가 밤낮으로 편집하여 《대학연의大學衍義》라 이름 붙였습니다.
首之以帝王爲治之序者 見堯‧舜‧禹‧湯‧文‧武之爲治 莫不自心身始也
의 첫머리에 〈역대 성왕聖王치세治世를 이룩해갔던 단계[帝王爲治之序]〉를 둔 것은 임금‧임금‧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의 치세가 몸과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인 것이고,
次之以帝王爲學之本者 見堯‧舜‧禹‧湯‧文‧武之爲學 亦莫不自心身始也 此所謂綱也
다음에 〈역대 성왕聖王이 학문을 해나갔던 근본[帝王爲學之本]〉을 둔 것은 요임금‧순임금‧우왕‧탕왕‧문왕‧무왕의 학문도 몸과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입니다.
首之以明道術‧辨人材‧審治體‧察民情者 格物致知之要也
의 첫머리에 〈를 분명히 밝힘[明道術]〉‧〈인재를 구별하는 방법들[辨人材]〉‧〈치국의 강령을 살핌[審治體]〉‧〈여론을 살피는 방법[察民情]〉을 둔 것은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지성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格物致知之要]’이며, 다음에 〈공경함과 두려워함을 존숭함[崇敬畏]〉‧〈안일과 욕심을 경계함[戒逸欲]〉을 둔 것은 ‘생각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체[誠意正心之要]’이며,
次之以崇敬畏‧戒逸欲者 誠意正心之要也 又次之以謹言行‧正威儀者 修身之要也 又次之以重妃匹‧嚴内治‧定國本‧教戚屬者 齊家之要也 此所謂目也
그 다음에 〈언행을 삼감[謹言行]〉‧〈위의를 바르게 함[正威儀]〉을 둔 것은 ‘자신을 수양하는 요체[修身之要]’이며, 그 다음에 〈배필을 중히 여김[重妃匹]〉‧〈궁위宮闈와 환관에 대한 단속을 엄히 함[嚴內治]〉‧〈국본을 정함[定國本]〉‧〈외척을 교화함[敎戚屬]〉을 둔 것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요체[齊家之要]’이니, 이것이 이른바 ‘’입니다.
而目之中 又有細目焉하니 每條之中 首之以聖賢之典訓하고 次之以古今之事迹하고 諸儒之釋經論史 有所發明者 錄之하고 臣愚一得之見 亦竊附焉하니
그리고 에는 또 세목細目이 있어서, 매 조목마다 처음에는 성현의 가르침을 두었고 다음에는 고금의 사적事迹을 두었으며, 각 조목의 아래에는 여러 유자儒者들이 경전을 해석하고 역사를 논한 것 중에 새롭게 밝힌 것을 채록하고 어리석은 신의 소견을 또한 외람되이 여기에 덧붙였습니다.
雖其銓次 無法하고 論議 無取 然人君所當知之理 所當爲之事 粗見於此하니이다
비록 그 편집한 차례에 법도가 없고 논의에 취할 만한 것은 없지만 임금이 알아야 할 이치와 해야 할 일이 여기에서 대강 보입니다.
하니 爲卷 이요 爲帙 貳拾有貳
폐하께서 친정親政을 하신 초기에 신의 책이 마침 완성되었으니, 권으로는 43권이요 책으로는 22책입니다.
輒因하여 冒昧以聞하노니 伏望聖慈 察臣一念愛君之篤하시고 矜臣拾年用功之勤하사 特降叡旨하사 許令投進而陛下
완성되자마자 소대召對하는 기회를 통해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아뢰오니,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한마음으로 임금을 사랑하는 신의 진정을 살피시고 10년 동안 애쓴 신의 노고를 긍휼히 여기시어 특별히 조령詔令을 내려 이 책을 올리도록 허락해주소서.
於機政之暇 講讀之餘 賜以覽觀하시면 其於體用之學 不無秋毫之補
그리하여 폐하께서 국사를 돌보고 강독을 하시고 나서 여가에 친람해주신다면 의 학문에 털끝만한 도움이나마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取進止하노이다
재결해주소서.”
玖月拾肆日 同奉聖旨하니 疾速投進하라하시다
9월 14일에 삼성三省이 함께 성지聖旨를 받으니, “속히 올리도록 하라.”라고 하셨다.

右箚 送新除權戶部眞尙書

차자箚子는 새로 제수된 권호부상서權戶部尙書 진덕수眞德秀에게 보낸다.

端平元年玖月拾伍日

단평端平 원년(1234) 9월 15일
역주
역주1 尙書省箚子 : 사고본에는 ‘大學衍義箚子’로 되어 있다. 이 箚子는 진덕수의 나이 57세 때인 理宗 端平 원년(1234)에 지어진 것이다. 차자는 北宋 때 처음 등장한 간략한 형식의 공문서로, 크게는 윗사람에게 올리는 것[上行]과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것[下行]으로 구분된다. 윗사람에게 올리는 차자로는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거나 직위가 낮은 관원이 長官에게 자신의 생각을 진술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 올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황제에게 上奏하는 차자에는 첫머리에 구체적인 직함을 생략하고 말미에는 ‘取進止[재결해주소서]’라는 문구를 써넣었는데, 이러한 차자는 ‘奏箚’라고도 하였다.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차자로는 황제가 백관에게 詔令을 내리거나 中書省‧尙書省‧樞密院 등이 명령을 선포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본문의 〈尙書省箚子〉에는 황제에게 아뢰는 上行의 내용과 명령을 하달하는 下行의 내용이 같이 들어 있다. 따라서 본문 전체 내용을 작성한 發信者와 이를 최종적으로 受取하는 사람이 불분명하여 ‘상서성 차자’로 번역하였다. 《李平, 宋代公文箚子硏究, 蘭臺世界 36期, 聊城大學文學院, 2013, 64~65쪽》
역주2 中奉大夫 : 文散官名으로 徽宗 大觀 2년(1108)에 설치하였다. 秩은 종5품이다. 《中國官制大辭典 中奉大夫》
역주3 權戶部尙書 : ‘權’은 관원 임용 유형 중의 하나로 攝과 비슷하다. 唐代에는 知‧判‧兼 등의 임용에 종종 權을 덧붙여 權知‧權判‧權兼이라 하여 임시 임용이라는 것을 표시하였는데, 宋代에는 京朝官이 파견되어 여러 府州를 맡을 때 그 資序가 1등이 떨어지는 것을 權知라 불렀다. 元祐(1086~1094) 연간에 다시 규정을 바꾸어, 給事中‧中書舍人‧待制 이상을 역임하지 않은 사람이 尙書‧侍郞에 임용될 때에는 모두 權자를 붙였다. 진덕수는 紹定 5년(1232)에 戶部尙書에 제수되었다. 尙書는 宋나라 제도에 종2품이다. 《中國官制大辭典 權》 《宋元學案 卷81 西山眞氏學案》
역주4 三王 : 夏‧商‧周 三代의 임금으로, 范寧의 《春秋穀梁傳集解》에 따르면 夏나라 禹王‧商나라 湯王‧周나라 武王을 가리킨다. 趙岐의 《孟子注》에서는 武王 대신 文王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역주5 先儒……次之 : 先儒는 程頤를 말한다. 朱熹의 《大學章句》에 비슷한 내용이 인용되어 있으나 일부 글자가 다르다.
역주6 遜志時敏 : 《書經》 〈說命 下〉에 傅說이 高宗에게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수양이 올 것입니다. 독실하게 믿어 이것을 생각하면 道가 그 자신에게 쌓일 것입니다.[惟學遜志 務時敏厥修乃來 允懷于玆 道積于厥躬]”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7 緝熙光明 : 《詩經》 〈大雅 文王〉에 “穆穆한 문왕이여, 아, 敬을 계속하여 밝히셨도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라는 내용이 보인다. 周公이 문왕의 光明한 덕을 追述하여 周나라 왕실에서 천명을 받아 商나라를 대신한 것이 모두 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힘으로써 成王을 경계한 것이다.
역주8 龍飛 : 임금이 즉위하는 것을 말한다. 《周易》 〈乾卦〉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9 匆匆去國 : 진덕수는 寧宗 嘉定 16년(1223)에 사직하고서 浦城으로 돌아와 夢筆山麓에 堂을 짓고 강학하였다. 그는 당시 起居舍人兼侍講으로서 金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여 主和派였던 史彌遠과 갈등을 빚었다. 《대학연의》는 진덕수가 사직하기 전인 嘉定 15년(1222)에 西山精舍에서 纂集하였다. 《向鴻全, 眞德秀及其大學衍義之硏究, 國立中央大學博士學位論文, 2005, 9쪽》
역주10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11 陛下……適成 : 嘉定 17년(1124)에 寧宗이 죽자 승상 史彌遠의 詔書 위조에 의해 理宗이 황제로 옹립되었는데, 紹定 6년(1233)에 사미원이 죽고 나서야 理宗이 親政하였다. 《大學衍義》는 嘉定 15년(1222)에 처음으로 纂成되었는데, 진덕수는 浦城으로 물러나 있는 동안 《대학연의》를 더 보충하고 다듬어서 紹定 2년(1229)에 완성하여 端平 원년(1234)에 올렸다. 《欽定四庫全書總目 卷92 子部 儒家類2 大學衍義》 《中國歷代人名大辭典 眞德秀》 《向鴻全, 眞德秀及其大學衍義之硏究, 國立中央大學博士學位論文, 2005, 9쪽》
역주12 肆拾參 : 대전본‧사고본에는 ‘四十有三’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召對 : 임금이 신하를 불러 관련 정무나 經義 등에 대해 대답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14 三省 : 中書省‧門下省‧尙書省을 말한다.
역주15 押押假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의미가 자세하지 않아 번역하지 않았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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