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2-5-나(
안按)
蓍 龜 [
신안臣按]
오자서伍子胥는
선왕先王(
합려闔閭)의
모신謀臣으로 나라와 한 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차夫差에게 간할 때
월越나라를 도모하는 데 전념하고
제齊나라는 뒤에 도모하기를 바랐으니,
약석藥石과 같은 충성심과 시귀蓍龜와 같은 지혜가 오자서를 능가하는 이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태재 백비太宰 伯嚭는 대신의 몸으로 월나라의 많은 뇌물을 받고 도리어 오자서를 참소하였으니, 오자서가 죽은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백비가 오자서를 참소한 말을 보니 첫째도 둘째도 원망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신하가 되어 자신의 임금을 원망하는 것은 틀림없이 주살될 죄입니다.
그러므로 백비가 이것으로 오자서를 중상하였으니, 후대의 참인讒人 가운데 충직한 대신을 모함하려고 하는 자는 대부분 이 술책을 본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임금에게 원망을 가진 신하를 과연 죽이는 것이 옳겠습니까.
原注
원망은 같은 것 같지만 실정은 같지 않습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섬길 때 비록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니,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데 순임금에게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과, 《시경》 〈소아小雅〉에 원망하고 비방하는 내용의 시가 있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는 것은 정도正道이지만 성심을 가지고 의리를 간직했음에도 임금이나 어버이가 이를 알아주지 않는 데까지 이르면 혹 하늘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하소연을 하기도 하니,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인가.”라고 하고, “하늘이 나를 낳음이여! 나의 시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소離騷〉를 지은 것 또한 원망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나, 나라를 보존하고 임금을 편안하게 하는 의리가 한 편의 글 속에서 여러 차례 그러한 의미가 드러났으니, 여기에서의 원망은 다만 충성하고 효도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오자서의 원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참으로 알 수 없지만,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자서 또한 틀림없이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여 나온 것인데 부차는 백비의 참소 때문에 오자서를 갑자기 주살하였으니, 그 나라가 망한 것이 마땅합니다.
훗날의 참신讒臣이 원망이라는 말을 가지고 군자를 헐뜯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깊이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