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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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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4-8-나(按)
4-8-나(按)
按 憲宗 玩意經籍하여 集其事以爲龜鑑하시니 用意美矣
【臣按】 憲宗이 典籍에 흥미를 느끼고서 그 事跡들을 모아 귀감으로 삼았으니 마음 씀씀이가 훌륭합니다.
之後 驕侈遽形하여 以忠直見疎하고 以讒諂用하고 하니
그러나 蔡州를 평정한 후에는 교만과 사치가 갑자기 나타나서 裴度가 忠直함으로 소외되었고, 李逢吉이 참소와 아첨으로 등용되었으며, 皇甫鏄과 程异가 羨餘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是邪正 未嘗辨이요 賢臣 未嘗任也 忠諫 未嘗納이요 勳賢 未嘗錄也
이는 邪正을 분변하지 못한 것이고 賢臣을 중용하지 않았던 것이며, 忠諫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훈과 재능이 있는 이를 녹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土木 興則反於節儉하고 聚斂 行則乖於德政하여 凡所謂十有四條 無一不悖戾者하니 其故 何哉
토목공사가 일어나면 節儉에 위배되고 조세를 각박하게 징수하면 德政에 어긋나서, 이른바 열네 조항에 있어 어느 하나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게 되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原注
蓋居中而制萬事者 心也 古先聖王 必於此乎用力이라
안에 있으면서 만사를 제어하는 것은 마음이니, 옛 聖王들은 반드시 여기에 힘썼습니다.
故一心正而萬事 莫不正하나니
그러므로 마음 하나가 바르게 되면 만사가 바르지 않은 것이 없게 됩니다.
憲宗 知監前代成敗之迹而不知古人大學之源이라
헌종이 前代 성패의 사적을 거울로 삼을 줄은 알았으나 옛사람의 《大學》의 근원은 몰랐습니다.
藩鎭 未平 猶能勉强策勵라가 一旦奏功 侈然自肆하니
그래서 藩鎭이 평정되기 전에는 그래도 능히 노력하고 분발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승전했다는 보고를 받게 되자 교만방자해졌습니다.
雖在 志慮 已移 視之爲虛器矣 由其心之不治故也
귀감으로 삼았던 병풍은 비록 그대로 있었으나 생각은 이미 바뀌었으므로 이를 쓸모없는 기물로 보았으니, 그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當時群臣 獨一
能進正心之說而心之所以正者 亦莫之及焉하여 徒擧其綱而不告以用力之地하니
당시 신하들 가운데 유독 裴垍 한 사람만이 능히 마음을 바르게 하는 말을 진언하였으나,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을 또한 언급하지 않아서 그저 그 강령만 들고 힘을 써야 할 데는 아뢰지 않았습니다.
是猶敎人以克己復禮而不語以視聽言動之目이라 其能有益乎
이는 마치 사람들에게 克己復禮를 가르치면서 視‧聽‧言‧動의 조목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그것이 보탬이 될 수 있겠습니까.
故爲人臣而不知大學이면 未有能引其君以當道者니이다
그러므로 신하가 되어 《대학》을 모르면 자신의 임금을 인도하여 正道에 합당하도록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原注
以上 叙漢光武‧明‧‧唐三宗之學하다
이상은 광무제光武帝명제明帝장제章帝 태종太宗현종玄宗헌종憲宗의 학문을 서술하였다.
역주
역주1 平蔡 : 蔡州에 웅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淮西 節度使 吳元濟를 토벌한 것을 말한다. 817년(元和12)에 헌종은 裴度를 淮西 招討使로 삼아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해 10월에 절도사인 李愬가 오원제를 사로잡아 난이 평정되었다.
역주2 裴度 : 765~839. 자는 中立으로, 河東 聞喜 사람이다. 中書舍人, 御史中丞 등을 역임하고 815년(元和10)에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얼마 후 吳元濟를 진압한 것을 계기로 河北의 번진들이 조정에 귀순하게 되었다. 부화뇌동하지 않는 성격으로 時弊에 대해 직언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절도사를 억압하고 환관에 대해 강경책을 취하였다.
역주3 李逢吉 : 758~835. 자는 虛舟로, 隴西 사람이다. 憲宗‧穆宗‧敬宗‧文宗 대에 걸쳐 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재상으로 있으면서 賢能한 이들을 질투하고 자신과 뜻이 다른 이들을 배척하여 私黨을 결성하고 환관 및 장수들과 결탁하였다. 裴度‧李紳‧武昭 등이 모두 그의 배척을 받았다.
역주4 皇甫鎛 : ?~?. 安定 朝那 사람이다. 涇州 臨涇 사람이라고도 한다. 憲宗이 吳元濟를 토벌할 때 재정 상황이 급해지자 戶部 侍郎으로 있으면서 조세를 각박하게 징수하여 황제에게 아첨하고 군량을 착복하였다. 결국 御史大夫로 발탁되었다. 정치적으로는 李逢吉‧令狐楚와 함께 裴度를 배척하였다. 818년(元和13)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역주5 程异 : ?~819. 자는 師擧, 京兆 長安 사람이다. 德宗 때 王叔文의 개혁에 참가했다가 개혁이 실패하면서 郴州 司馬로 폄적되었다. 憲宗 즉위 후 국고가 바닥나자 南方 각지에 남아도는 재정을 조정에 바치게 하여 국고가 풍족해졌다. 818년(元和13)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성품이 청렴하여 죽을 때 집에 가산이 없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시호는 恭이다.
역주6 羨餘 : 당나라 때 부세 이외의 나머지라는 명목으로 관원이 황제에게 바쳤던 세금을 말한다. 德宗 때 藩鎭들은 부세를 가중하고 상품을 판매하였으며 녹봉을 착복하는 방식으로 재물을 긁어모았는데, 이 연여를 구실로 황실에 세금을 바쳐 황제의 환심을 사기도 하였다. 《中國歷史大辭典 羨餘》
역주7 : 대전본에는 ‘幛’으로 되어 있다.
역주8 裴垍……之說 : 憲宗이 치세를 이룩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배기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십시오.[先正其心]”라고 대답하였다. 《資治通鑑 卷237 唐紀53 憲宗 上之上》
역주9 裴垍 : ?~810. 자는 弘中으로, 絳州 聞喜 사람이다. 監察御史‧殿中侍御史‧翰林學士‧戶部 侍郞 등을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同平章事에 이르렀다. 직간을 잘하였고, 인재를 선발할 때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청탁이나 뇌물을 받지 않고 실질적인 재주만으로 사람을 뽑았다.
역주10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11 : 대전본에는 없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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