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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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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8-4-나(按)
按 周公 使二叔으로 監殷하신대 二叔 以殷畔이어늘 旣奉行天討矣
8-4-나(按)
[臣按] 周公이 管叔과 蔡叔에게 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두 형제가 은나라를 기반인으로 하여 배반하자 주공은 하늘의 토벌을 봉행하였습니다.
使人處此 必且疾視同姓하여 恐踈棄之不亟而公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경우에 처했다면, 필시 형제를 성난 눈으로 노려보며 소원히 하고 버리는 것을 빨리 하지 못할까만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作此詩하여 以燕兄弟하여 方綢繆反復 謂如常棣華鄂之相依 脊令首尾之相應하여
그러나 주공은 이 시를 지어서 형제에게 잔치를 베풀고 간절하게 반복하여 말하기를, “산이스라지 꽃과 꽃받침이 서로 의지하며 할미새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호응하는 것처럼,
雖忿鬩於門之內하나 至有外侮則同力以禦之라하시니 愴然閔惻之至情 溫然篤叙之深恩 溢於言外하니
비록 담장 안에서는 화가 나서 다투더라도 밖에서 업신여김을 받게 되면 힘을 합쳐 이를 막아낸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서글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지극한 정과 따뜻하고 두터운 깊은 은혜가 언어 밖으로 넘쳐납니다.
原注
其後 有周 世賴宗强之助하여 王室之勢 安於磐石하여 雖歷變故而根本不搖러니 어시늘
그 뒤에 주나라는 대대로 강한 종실의 도움에 힘입어 왕실의 형세가 반석보다 편안하여 비록 변고를 겪었지만 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襄王이 鄭나라에 노하여 狄人의 군대로 정나라를 치려고 하자,
其臣富辰 諫曰 兄弟 雖有小忿이나 不廢懿親이니 今天子 不忍小忿하사 以棄鄭親하시나니 其若之何
신하 富辰이 다음과 같이 간하였습니다. “형제는 비록 작은 憤恨이 있더라도 至親을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작은 분한을 참지 못하여 친족인 정나라를 버리려고 하시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襄王 不從하사 果召狄難하시니 嗚呼 後世王者 欲知兄弟相須之切이면 其於是詩 可不深味之乎
양왕이 이 말을 따르지 않아 끝내 오랑캐의 난을 불렀으니, 아, 후세의 왕들이 형제간에 서로 의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이 시에서 그 뜻을 깊이 음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 대전본‧사고본에는 ‘他’로 되어 있다.
역주2 : 사고본에는 ‘惟’로 되어 있다.
역주3 : 사고본에는 ‘牆’으로 되어 있다.
역주4 襄王……伐之 : 鄭나라의 시조인 鄭 桓公은 周 厲王(재위 기원전 857~기원전 842)의 아들이자 周 宣王(재위 기원전 827~기원전 782)의 同母弟로, 정나라는 주나라 왕실과 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周 平王(재위 기원전 770~기원전 720)의 즉위와 함께 이루어진 東遷 때 가장 큰 공을 세워 주나라의 卿士로서 주나라 왕실의 정치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평왕이 죽고 桓王이 즉위하여 정나라의 권력을 虢나라에 넘겨준 뒤로 주나라 왕실과 원수가 되었다. 周 襄王 16년(기원전 636)에 정나라가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衛나라에 붙은 滑나라를 토벌하자, 양왕은 사신을 보내 활나라를 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鄭 文公이 활나라를 편드는 양왕을 원망하여 이 말을 듣지 않고 왕실에서 보낸 두 사신을 가두자, 양왕은 대부 富辰의 간언을 듣지 않고, 동년 여름에 狄人을 끌어들여 정나라를 토벌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4年》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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