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4)

대학연의(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22-2-나(按)
按 坎牲埋書 伊戾 以之하여 誣太子痤矣 寺人柳 又用之하여 以誣華合比焉하니
22-2-나(按)
[臣按] 구덩이를 파고 희생을 써서 맹약한 글을 묻어두는 꾀를 惠牆伊戾가 써서 태자 痤를 모함하였고, 寺人 柳가 또 그 꾀를 써서 華合比를 모함하였습니다.
使三尺童子로도 嘗誤聽於前이면 猶必省悟於後어늘 而平公 又信之하여 以逐合比하여 區區小數 隨用輒驗하니
설사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이전에 잘못하여 참소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면 그래도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길 때에 틀림없이 잘 살펴서 알아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宋 平公이 또 참소를 믿어서 화합비를 축출하여 얕은 잔꾀가 쓰일 때마다 효과를 보았습니다.
非爲讒者之工이라 乃聽者之不聰也니이다 我朝仁宗時 撓邊이어늘 邊臣 有欲間其驍將者
이는 참소하는 자의 교묘함 때문이 아니라, 바로 듣는 사람이 밝게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宋나라 仁宗 때에 元昊가 변경을 어지럽히자 변경을 수비하던 관리 가운데 원호 휘하의 맹장을 상대로 이간책을 쓰려는 자가 있었습니다.
乃陳牲酒於野하여 若聞其將之死而祭之者하여 祝辭 具述交通之由而悼其不遂라가 元昊邏者 至則委而去之하니 是亦坎牲加書之類
그가 마침내 희생과 술을 들판에 차려놓고서 마치 그 맹장의 부음을 듣고 제사를 지내는 척하여 祝文 내용에 내통한 경위를 모두 서술하고 내통이 결실을 맺지 못한 점을 애도하다가 원호의 순찰병이 오자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났으니, 이 역시 구덩이를 파고 희생을 써서 맹약한 글을 묻어두는 유형입니다.
其術 至淺也어늘 元昊 且墮吾邊臣之計하여 疑其將而殺之하니 況平公乎
그 꾀가 매우 얄팍했는데, 원호는 교활한 놈임에도 우리 송나라 변경을 수비하던 관리의 계략에 빠져서 자신의 맹장을 의심하여 죽였습니다. 하물며 평공은 어떻겠습니다.
倂著之하여 以明讒臣之譖 敵國之間 用智略同하노니 人主 皆不可以弗察也니이다
신이 이 때문에 함께 수록하여 참소하는 신하가 참소를 할 때와 적국이 이간책을 펼 때 사용하는 계책이 대체로 같음을 밝히니, 임금 된 사람 모두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주
역주1 元昊 : 1003~1048(재위 1038~1048). 西夏의 초대 황제로 묘호는 景宗이다. 黨項族(탕구트족)의 혈통으로, 그의 조상은 원래 拓拔氏였는데 당나라 때 李氏 姓을 받은 적이 있으며, 조부 李繼遷이 宋 太祖에게 趙氏 姓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기록에 따라 ‘李元昊’ 또는 ‘趙元昊’라고도 한다. 일찍이 송나라로부터 西平王으로 봉해진 부친 趙德明에게 송나라의 명령을 받지 말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1038년에는 ‘大夏國’을 선포하고 ‘天授禮法延祚’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송나라를 침공하였으나, 宋 仁宗 慶曆 4년(1044)에 이르러서는 송나라에게 稱臣하고 歲幣를 요구하였다.
역주2 : 사고본에는 ‘猾’로 되어 있다.
역주3 로되 : 509본에는 ‘로다’로 되어 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固’로, 사고본에는 ‘故’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