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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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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宗 始未甚重佛이러니 宰相 皆好佛호대 尤甚이러라
13-12-가
唐 代宗이 처음에는 그다지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다. 宰相 元載와 王縉이 모두 부처를 좋아하였는데, 왕진이 더 심하였다.
嘗問 佛言 果有之邪 載等 對曰 國家運祚靈長 非宿植福業이면 何以致之리오
대종이 한번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부처가 말하는 報應이 과연 있는가?” 원재 등이 대답하였다. “국가의 운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부터 福業을 심어놓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왔겠습니까.
福業 已定이면 雖時有小灾 終不能爲害하나니 所以하고 하고 不戰而退하니
복업이 정해지고 나면 이따금 작은 재앙이 생기더라도 마침내 해악이 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安祿山과 史思明은 모두 아들에게 화를 당하였고 僕固懷恩은 타지에서 병들어 죽었으며 두 夷狄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났으니,
此皆非人力所及이라 豈得言無報應也리잇고 由是 深信之하사 常於禁中 百餘人하고
이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보응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종이 이로 말미암아 불교를 깊이 신봉하여 늘 궁중에서 백여 명에게 飯僧을 하였다.
有寇 至則令僧으로하여 以禳之하고 寇去則厚加賞賜하니 良田美利 多歸僧寺하더라
그리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승려들을 시켜 《仁王經》을 강하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게 하고, 외적이 물러가면 상을 후하게 내려주니 좋은 전토와 많은 이익이 대부분 사찰에 귀속되었다.
載等 侍上 多談佛事하니 政刑 日紊矣러라
원재 등이 대종을 모실 때 佛事를 많이 이야기하니 政刑이 날로 문란해졌다.
역주
역주1 13-12-가 : 《資治通鑑》 卷224 〈唐紀40 代宗 中之上〉 大曆 2년(767) 조에 보인다.
역주2 元載 : ?~777. 당나라 때의 관료이다. 자는 公輔로, 鳳翔 岐山 사람이다. 玄宗 때에 邠州 新平尉, 肅宗 때에 戶曹侍郞, 江淮轉運使,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代宗 때에는 中書侍郞‧判天下元帥行軍司馬 등을 역임하였다. 내시들과 어울리면서 황제의 뜻을 염탐해 비위를 잘 맞추었는데, 大曆 5년(770)에는 대종과 공모하여 환관 魚朝恩을 주살하였다. 권력을 쥐고 불법을 자행하며 충신들을 배척하고 공공연하게 뇌물도 받았다. 계속 악행을 자행하다가 사람들의 고발을 접수한 황제에게 자살을 명받았다.
역주3 王縉 : 700~781. 당나라 때의 관료이다. 자는 夏卿으로, 河中 사람이며, 詩佛 王維(699~761)의 동생이다. 玄宗 때에 侍御史, 武部員外郞을 지냈으며, 安史의 난 때에는 李光弼을 도와 太原을 지킨 공으로 憲部侍郞이 되었다. 代宗 때에는 黃門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河南副元帥 등을 지냈다. 왕유와 함께 불교를 믿어 육식은 하지 않았으나, 성격이 탐욕스러워 뇌물을 받았다. 元載가 죄를 지어 죽은 후에 원재에게 아부했다 하여 括州刺史로 폄적되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5 報應 : 베푼 것이 있으면 반드시 보답이 있고 감동시킨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응하는 게 있다는 말로, 현재 복을 얻든 화를 얻든 모두 보응이 된다. 이를테면, 방생이나 보시 등과 같은 善業을 행하는 것은 善因을 심는 것이기 때문에 善報를 초래하게 되고, 살생이나 절도 등과 같은 惡業을 행하는 것은 바로 惡因을 심는 것이기 때문에 惡報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佛光大辭典 報應》
역주6 安史皆有子禍 : 安祿山(?~757)은 애첩 段氏의 소생 安慶恩을 후사로 삼으려 하였는데, 맏아들 安慶緖(?~759)가 환관 李豬兒를 보내 안경은을 암살하게 하고 大燕皇帝가 되었다. 그 후 唐 肅宗 乾元 2년(759)에 史思明(?~761)이 안경서를 살해하고 대연황제가 되었는데, 맏아들 史朝義을 죽이고 작은 아들 史朝淸을 후사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던 차에 사조의의 부장인 駱悅이 사사명을 살해하자 사조의가 즉위하였다. 《資治通鑑 卷219 唐紀35 肅宗 中之上 至德 2年, 卷221 唐紀37 肅宗 下之上 乾元 2年, 卷222 唐紀38 肅宗 下之下 上元 2年》
역주7 懷恩出門病死 : 懷恩은 僕固懷恩(?~765)을 가리킨다. 僕骨部의 수령으로, 755년 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부족을 이끌고 郭子儀를 도와 당나라를 위하여 싸웠다. 代宗 때에는 中書令‧朔方節度使 등을 역임하였으나 모반의 혐의를 받자, 廣德 2년(764)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휘하의 군사들이 곽자의에게 귀의하는 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回紇‧吐蕃 등을 끌어들여 다시 당나라와 맞섰다. 그런데 이듬해 갑작스러운 병에 걸려 돌아가다가 鳴沙에서 사망하였다.
역주8 二虜不戰而退 : 二虜는 回紇과 吐蕃을 가리키는데, 廣德 2년(764)에 僕固懷恩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면서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듬해 복고회은이 급사하자, 이들이 우두머리 자리를 다투어 내분이 생겼다. 곽자의가 이를 틈타 反間計로 회흘을 설득하고 회흘과 함께 토번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역주9 : 사고본에는 ‘寇’로 되어 있다.
역주10 飯僧 : 齋僧이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佛光大事典 齋僧》
역주11 仁王經 : 《仁王般若波羅蜜經》을 가리키는데, 부처가 16개 大國의 왕들에게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경이다. 이 경은 鳩摩羅什(344~413)이 번역하였는데, 異譯으로는 唐나라 때 不空(705~774)이 번역한 《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이 있다. 《시공불교사전 인왕반야바라밀경,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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