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大學의 道는 致知를 으뜸으로 삼으니, 바로 총명함을 틔워 지혜와 식견을 계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後魏의 拓跋珪는 夷狄의 임금인지라 애초에 학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사람의 정신과 지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으니, 절실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적만 한 것이 없다는 李先의 대답 또한 잘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書契 이후로 세상에 서적이 늘어나 지금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만약 임금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찌 모이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라고 대답한 것은 매우 잘못한 것입니다.
고금의 서적이 비록 많지만, 임금의 德과 治國의 방도에 절실한 것은 六經일 뿐이며 《論語》와 《孟子》일 뿐입니다.
육경의 大義를 임금이라면 모두 마땅히 들어야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정무를 보기 때문에 이것들을 두루 읽고 널리 통달할 도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중 한두 책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아울러 《論語》‧《孟子》‧《大學》‧《中庸》에 온 힘을 다하면서 틈틈이 儒臣에게 명하여 역대의 잘잘못을 진언하게 하였다면, 총명함을 틔우고 지혜와 식견을 계발하는 것이 또한 어찌 적겠습니까.
李先은 평범하고 고루한 유생인지라 지혜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여 後魏의 임금으로 하여금 단지 서적을 모으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여기게 하였을 뿐 서적에서 얻는 것은 없도록 하였으며, 신선을 찾고 형벌을 남용하며 음란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에 빠져 끝내 무도함으로 제 자신을 죽게 하였습니다.
이는 비록 도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더라도 과연 만에 하나라도 어찌 보탬이 되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