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三子가 旣出則圖之가 易矣라 旣又與優施로 謀作難之先後한대 優施가 知申生之可陷也하고 則請先之하여
其言에 曰 精潔易辱이라하며 又曰 甚精必愚라하니 蓋精潔之人은 惜名顧行하여 惟恐點汙라 故曰 易辱이라하고
以節自
하여 不以智自全
이라 故曰 必愚
라하니 申生
이 惟其精潔也
라 故一辱以弑君之名則必以死自明而後已
하니
蕭望之
가 其情
이 亦然
이라 夫必頑鈍無恥沉
有謀之人則雖辱之而不動
하나니
淮陰少年이 嘗辱韓信矣로되 信이 寧甘俛出跨下之恥언정 不死也하고
諸葛亮이 嘗辱司馬懿矣로되 懿가 寧得畏蜀如虎之誚언정 不戰也하니
若申生則輕死重名하여 不能如信‧懿之忍하여 可以術激之而使死라 故優施가 欲先陷焉하고
原注
然恐獻公이 未忍果於殺也하여 則又夜半而泣하여 以危言動之하여 謂申生이 有將爲逆之意라하여 自請先死하고
公
이 懼而謀之則又勸授之政而避禍焉
하니 夫獻公
은 猛人也
라 能滅霍‧魏‧虢‧虞諸國
하여 以
其封
하고
이 久主夏盟
이나 未嘗一爲之屈
하니 而肯爲其子屈乎
아 懷怒必殺之心
이 自此啓矣
라
然猶患無隙以加之罪也하여 則使將兵而伐翟焉하여 勝則加以得衆之名하고 敗則繩以覆師之罪하니 申生이 至是에 無逃死之路矣라
然又慮大臣이 或守正力爭則公之意가 未必不回也하여 則又使優施로 往飮里克而諷其附麗之計하니 鳥烏之歌가 亦猶二五晉都之歌也라
詩歌가 於人에 最爲易動하니 故三姦之言이 無不售焉이라 里克은 大臣也어늘 許以中立하니 則殺嫡立庶之謀가 成矣라
獻公이 旣惑驪姬之讒이라 故歸胙之詐가 最爲易辨而不復辨하고 申生之仁이 恐傷君意하여 又不忍自辨하니 惟有一死而已라
原注
21-7-나(안按)
[신안臣按] 여희驪姬가 신생申生을 참소한 것이 그 권모술수가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무릇 부자간의 정은 매일같이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기 때문에 이간하는 말이 먹혀들어가지 못하니
오직 방법을 써서 그들을 떼어놓은 뒤에야 참소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희가 맨 먼저 양오梁五와 동관폐오東關嬖五에게 뇌물을 주어 헌공獻公을 설득하여 세 공자를 지방으로 내보내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부자를 떼어놓는 방법입니다.
헌공이란 사람은 공적을 세우기 좋아하고 얻는 것을 탐하는 사람이라서 영토를 확대하는 것이 바로 그가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양오와 동관폐오가 이런 점을 이용하여 헌공을 꾀어내었고
또 이를 위한 가사를 지어 노래에 드러내어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헌공이 어떻게 기뻐하며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原注
신생申生, 중이重耳, 이오夷吾 세 공자가 지방으로 나가고 나니 그들을 도모하기가 쉬웠습니다. 얼마 뒤에 또 우시優施와 난을 일으킬 계획의 순서를 모의하였는데 우시가 신생을 함정에 빠뜨릴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먼저 모함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정결한 사람은 쉽게 모욕을 느낀다.”라고 하고, 또 “지나치게 정결한 사람은 틀림없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결한 사람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행동을 돌아보아 오직 더럽힐까만을 염려하기 때문에 “쉽게 모욕을 느낀다.”라고 하였고,
절제로써 스스로 면려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온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생申生이 오직 정결할 뿐이기 때문에 임금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죄명으로 모욕을 당하자마자 반드시 죽음으로써 스스로 결백을 밝힌 뒤에 그쳤으니,
신이 앞에서 논한 석현石顯이 소망지蕭望之를 무함했던 것이 그 정상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반드시 완고하고 둔하여 부끄러움을 모르고 침착하고 굳세어 지모가 있는 사람은 비록 모욕을 주어도 동요하지 않는 법입니다.
회음淮陰의 소년이 일찍이 한신韓信을 욕보였지만 한신은 차라리 기꺼이 몸을 굽혀 가랑이 아래를 기어 나오는 치욕을 받을지언정 죽지 않았고,
제갈량諸葛亮은 일찍이 사마의司馬懿를 욕보였지만 사마의는 차라리 촉蜀나라를 범과 같이 두려워한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생으로 말하면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명예를 중히 여겨서 한신이나 사마의처럼 참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계책을 써서 그를 격동시켜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시가 신생을 먼저 무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原注
그러나 여희驪姬는 헌공獻公이 죽이는 것을 차마 결행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또 한밤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로 헌공을 동요시켜 “신생申生이 장차 반역하려는 뜻을 품었다.”라고 하고서 스스로 먼저 죽기를 청하였습니다.
헌공이 두려워하여 상의를 하면 또 그에게 정권을 주어 화를 피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저 헌공은 굳세고 용맹한 사람이라서 곽霍나라, 위魏나라, 괵虢나라, 우虞나라 등 여러 나라를 멸망시켜 자신의 영토를 확대시킬 수 있었고,
비록 제 환공齊 桓公이 오랫동안 화하華夏의 회맹을 주관하였지만 헌공이 한 번도 그에게 굴복한 적이 없었으니 그 자식에게 굽히려고 했겠습니까. 노기를 품고 반드시 죽이려는 마음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죄명을 덮어씌울 틈이 없을까 근심하여 신생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서 적翟을 정벌하도록 해서 승리하면 민심을 얻었다는 죄명을 더하고 패배하면 군대를 궤멸되게 만들었다는 죄목을 엮으려 하였으니, 이에 이르러 신생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혹여 대신이 정도正道를 지켜 힘써 간쟁한다면 헌공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우시優施를 시켜 가서 이극里克에게 술을 대접하고 그에게 의탁하는 방법을 귀띔하였으니 까마귀의 노래는 또한 양오梁五와 동관폐오東關嬖五의 진도晉都의 노래와 같습니다.
시가詩歌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마음을 흔들기가 쉬운 것이니 그러므로 우시, 양오, 동관폐오 세 간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극里克은 대신이었는데도 중립을 지키는 데 동의하였으니 그렇다면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옹립하려는 계책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헌공이 이미 여희의 참소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고 보내온 술과 음식의 속임수는 가장 분별하기 쉬운 것이지만 더 이상 분별하지 않았고, 인자한 신생申生은 헌공의 뜻이 상할까 걱정하여 또 차마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으니 신생에게는 오직 죽는 길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原注
신생申生이 죽자 두 공자가 달아나 우시優施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 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헌공이 죽고 해제奚齊(혜공惠公)가 즉위하자 이극里克이 그를 시해하였고, 탁자卓子가 즉위하자 또 이극이 그를 시해하였고,
이오夷吾가 즉위하였으나 잘 마치지 못해서 중이重耳(문공文公)가 즉위한 뒤에야 안정되어 진晉나라의 혼란이 20년간 지속되었으니, 여희가 참소하고 세 간신이 그녀를 도운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포사褒姒가 괵 석보虢 石父 한 사람만으로도 함께 모의하여 태자인 의구宜臼를 축출할 수 있었는데, 하물며 여희는 도와주는 세 사람의 간신이 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자와 소인이 안팎에서 서로 결탁하는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집안을 망하게 하는 근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