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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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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太子 安國君 有子二十餘人이로되
17-3-가
秦 昭王의 아들 安國君이 태자가 되었다. 안국군이 아들 20여 명을 두었지만 그 愛姬인 華陽夫人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其愛姬 無子러니 夏姬之子 爲秦質子於趙하니 不甚禮子楚
夏姬의 아들 子楚가 秦나라의 인질로써 趙나라에 있었는데, 조나라가 자초를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子楚 居處하여 不得志러니 陽翟大賈 賈邯鄲見之曰 此 奇貨 可居라하고
자초는 처지가 곤궁하여 실의에 차 있었다. 陽翟의 큰 장사꾼 呂不韋가 邯鄲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를 보고 말하였다. “이는 진기한 물건이다. 사둘 만하다.”
乃往見하여 請以千金西游하여 事安國君及華陽夫人하여 立子爲適嗣호리라한대 子楚 曰 必如君策인대 請得分秦國하여 與君共之호리라
마침내 자초를 찾아가 만나보고서, 천금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섬겨 자초를 適嗣로 세우겠다고 하자 자초가 말하였다. “만약 그대의 계책대로 된다면 진나라를 나누어 그대와 공유하겠소.”
不韋 乃以五百金으로 與子楚하여 爲進用結賓客하고 復以五百金으로 買奇物玩好하여 自奉而西游秦하여
여불위가 이에 5백 금을 子楚에게 주어 밑천으로 삼아 빈객들과 교분을 맺게 하고, 또 5백 금으로 기이한 물건과 玩好物을 사들여 직접 가지고 서쪽으로 秦나라에 가서,
求見華陽夫人姊而以其物 獻華陽夫人하고 因言 子楚 賢智하여 結賓客徧天下하고
화양부인의 언니와 만나기를 청하여 그 물건들을 화양부인에게 바치고 이어서 말하였다. “자초가 어질고 지혜로워 교분을 맺은 빈객이 천하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常曰 楚也 以夫人爲天하여 日夜 泣思太子及夫人이라한대 夫人 大喜어늘 不韋 因使其姊說夫人하여 請立子楚以爲嗣한대
그리고 항상 말하기를 ‘내가 부인을 하늘로 여겨 밤낮으로 울면서 태자와 부인을 생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화양부인이 크게 기뻐하자 여불위는 이어서 화양부인의 언니에게 화양부인을 설득하여 자초를 세워 후사로 삼도록 청하게 하였다.
安國君 許之하여 乃與夫人刻玉符하여 約以爲適嗣而請呂不韋傅之하다
안국군이 이를 허락하자 이에 화양부인과 玉符를 새겨 嫡嗣로 삼기로 약속하고 여불위에게 자초의 사부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不韋 取邯鄲諸姬絶好善舞者與居하여 知有身이러니 子楚 從不韋飮하다가 見而說之하여 因起爲壽請之한대
여불위는 邯鄲의 여자들 가운데 絶色이면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데려와 함께 살다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초가 여불위와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그 여자를 보고 기뻐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축수를 하고 그 여자를 달라고 청하였다.
不韋라가 念已破家爲子楚 乃遂獻其姬한대 自匿이러니
여불위는 노여워하다가 이미 가산을 털어 자초를 도운 것이 생각났다. 이에 마침내 그 여자를 바쳤는데 여자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숨겼다.
하여 生子하니 子楚 遂立姬爲夫人하다 昭王커늘 安國君 立爲王하여 華陽夫人으로 爲王后하고 子楚 爲太子러니
열두 달이 되어 아들 政을 낳으니 자초가 마침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삼았다. 秦 昭王이 죽자 안국군이 왕으로 즉위하여 華陽夫人을 王后로 삼고 子楚를 태자로 삼았다.
秦王 立三日커늘 孝文王이라하고 子楚하니 是爲莊襄王이라 以不韋爲丞相하고 封文信侯하다
秦王이 즉위한 지 3일 만에 죽자 시호를 孝文王이라 하고 자초가 즉위하니 바로 莊襄王이다. 장양왕이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文信侯에 봉하였다.
莊襄王 立三年커늘 太子政 爲王하여 尊不韋爲相國하고 稱仲父하다
장양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죽자 태자 政이 왕이 되어 여불위를 높여 相國으로 삼고 仲父라 불렀다.
秦王 年少 太后 時時私竊通不韋러니 始皇帝하얀 不韋 事發誅하다
秦王이 나이가 어릴 때 태후가 늘 여불위와 몰래 사통하였는데, 후에 시황제가 장성하고 나서 여불위는 일이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역주
역주1 17-3-가 : 관련 내용이 《史記》 卷85 〈呂不韋列傳〉에 보인다.
역주2 秦昭王 : 기원전 324~기원전 251. 재위 기원전 306~기원전 251. 전국시대 秦나라의 임금 昭襄王 嬴稷이다. 秦 武王의 이복동생으로 宣太后의 아들이다. 무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范睢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司馬錯(조)‧白起 등을 장수로 기용하여 東進 정책을 편 결과 韓‧趙‧魏‧楚 등을 패퇴시켰으며 西周를 멸망시켰다. 이후 秦 始皇의 천하 통일에 기초를 마련하였다.
역주3 安國君 : 기원전 303~기원전 250. 재위 기원전 251~기원전 250. 전국시대 秦나라의 임금 孝文王 嬴柱로 安國君은 즉위하기 전의 봉호이다. 昭襄王의 아들로 소양왕 32년(기원전 265)에 태자인 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태자가 되었다. 소양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으나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역주4 華陽夫人 : ?~기원전 230. 楚나라 사람이다. 安國君의 총애를 받았으나 아들이 없어 呂不韋의 주선으로 子楚(莊襄王)를 양자로 삼았다. 안국군이 孝文王으로 즉위한 뒤에 王后가 되었으며, 후에 태자 자초가 즉위하면서 華陽太后로 높여졌다.
역주5 子楚 : 기원전 281~기원전 247. 재위 기원전 250~기원전 247. 秦나라의 임금 莊襄王 嬴子楚이다. 초명은 異人이다. 昭王 때 趙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으나 呂不韋의 도움을 받아 安國君(孝文王)의 총애를 받는 華陽婦人의 양자가 되고 귀국하여 태자가 되었다. 효문왕이 죽자 즉위하여 여불위를 相國으로 임명하였다.
역주6 呂不韋 : ?~기원전 235. 衛나라 濮陽 사람이다. 원래 韓나라 陽翟의 巨商이었는데 趙나라 邯鄲에서 인질로 잡혀 와 있던 秦나라 公子 子楚(莊襄王)를 후원하여 왕이 되게 하였다. 장양왕이 즉위한 후 丞相이 되고 文信侯에 봉해졌으며, 嬴政(秦 始皇)이 즉위한 후에는 仲父로 불리며 정권을 장악하였다. 진 시황 10년(기원전 237)에 영정이 親政을 하자 봉지인 洛陽으로 쫓겨났다가 六國의 使者들과 내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蜀郡으로 옮겨졌는데, 결국 음독자살하였다.
역주7 : 사고본에는 ‘其’로 되어 있다. 통행본 《사기》에는 ‘有’로 되어 있다.
역주8 大期 : 徐廣에 따르면 期는 열두 달을 가리키며, 譙周에 따르면 사람이 열 달 만에 태어나는데 두 달이 더 지났기 때문에 大期라고 하였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裴駰集解‧司馬貞索隱》
역주9 : 기원전 259~기원전 210. 재위 기원전 246~기원전 210. 秦나라 최초의 皇帝로 政은 이름이다. 莊襄王의 아들이다. 13살에 즉위하였는데 당시에는 생모인 태후와 呂不韋가 집권하였다. 재위 9년째인 기원전 238년부터 친정을 시작하여 李斯 등을 중용하였으며, 기원전 230년에 韓나라를 멸한 것을 시작으로 六國을 차례로 멸하여 기원전 221년에 천하를 통일하였다. 이후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의 도로를 정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법령을 엄하게 하고 焚書坑儒를 자행하고 不死藥을 찾는 등의 과오를 범했다.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순행을 나갔는데, 기원전 210년에 순행 도중 沙丘에서 병사하였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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