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
이 爲太子
라 安國君
이 有子二十餘人
이로되 其愛姬
이 無子
러니
子楚
가 居處
가 困
하여 不得志
러니 陽翟大賈
가 賈邯鄲見之曰 此
는 奇貨
라 可居
라하고
乃往見하여 請以千金西游하여 事安國君及華陽夫人하여 立子爲適嗣호리라한대 子楚가 曰 必如君策인대 請得分秦國하여 與君共之호리라
不韋가 乃以五百金으로 與子楚하여 爲進用結賓客하고 復以五百金으로 買奇物玩好하여 自奉而西游秦하여
求見華陽夫人姊而以其物로 獻華陽夫人하고 因言 子楚가 賢智하여 結賓客徧天下하고
常曰 楚也가 以夫人爲天하여 日夜에 泣思太子及夫人이라한대 夫人이 大喜어늘 不韋가 因使其姊說夫人하여 請立子楚以爲嗣한대
安國君이 許之하여 乃與夫人刻玉符하여 約以爲適嗣而請呂不韋傅之하다
不韋가 取邯鄲諸姬絶好善舞者與居하여 知有身이러니 子楚가 從不韋飮하다가 見而說之하여 因起爲壽請之한대
不韋
가 怒
라가 念已破家爲子楚
라 乃遂獻其姬
한대 姬
가 自匿
身
이러니
至
時
하여 生子
하니 子楚
가 遂立姬爲夫人
하다 昭王
이 薨
커늘 安國君
이 立爲王
하여 華陽夫人
으로 爲王后
하고 子楚
로 爲太子
러니
秦王이 立三日에 薨커늘 諡를 孝文王이라하고 子楚가 立하니 是爲莊襄王이라 以不韋爲丞相하고 封文信侯하다
莊襄王이 立三年에 薨커늘 太子政이 爲王하여 尊不韋爲相國하고 稱仲父하다
秦王이 年少라 太后가 時時私竊通不韋러니 後에 始皇帝가 壯하얀 不韋가 事發誅하다
17-3-가
진 소왕秦 昭王의 아들 안국군安國君이 태자가 되었다. 안국군이 아들 20여 명을 두었지만 그 애희愛姬인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하희夏姬의 아들 자초子楚가 진秦나라의 인질로써 조趙나라에 있었는데, 조나라가 자초를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자초는 처지가 곤궁하여 실의에 차 있었다. 양적陽翟의 큰 장사꾼 여불위呂不韋가 한단邯鄲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를 보고 말하였다. “이는 진기한 물건이다. 사둘 만하다.”
마침내 자초를 찾아가 만나보고서, 천금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섬겨 자초를 적사適嗣로 세우겠다고 하자 자초가 말하였다. “만약 그대의 계책대로 된다면 진나라를 나누어 그대와 공유하겠소.”
여불위가 이에 5백 금을 자초子楚에게 주어 밑천으로 삼아 빈객들과 교분을 맺게 하고, 또 5백 금으로 기이한 물건과 완호물玩好物을 사들여 직접 가지고 서쪽으로 진秦나라에 가서,
화양부인의 언니와 만나기를 청하여 그 물건들을 화양부인에게 바치고 이어서 말하였다. “자초가 어질고 지혜로워 교분을 맺은 빈객이 천하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말하기를 ‘내가 부인을 하늘로 여겨 밤낮으로 울면서 태자와 부인을 생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화양부인이 크게 기뻐하자 여불위는 이어서 화양부인의 언니에게 화양부인을 설득하여 자초를 세워 후사로 삼도록 청하게 하였다.
안국군이 이를 허락하자 이에 화양부인과 옥부玉符를 새겨 적사嫡嗣로 삼기로 약속하고 여불위에게 자초의 사부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여불위는 한단邯鄲의 여자들 가운데 절색絶色이면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데려와 함께 살다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초가 여불위와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그 여자를 보고 기뻐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축수를 하고 그 여자를 달라고 청하였다.
여불위는 노여워하다가 이미 가산을 털어 자초를 도운 것이 생각났다. 이에 마침내 그 여자를 바쳤는데 여자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숨겼다.
열두 달이 되어 아들 정政을 낳으니 자초가 마침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삼았다. 진 소왕秦 昭王이 죽자 안국군이 왕으로 즉위하여 화양부인華陽夫人을 왕후王后로 삼고 자초子楚를 태자로 삼았다.
진왕秦王이 즉위한 지 3일 만에 죽자 시호를 효문왕孝文王이라 하고 자초가 즉위하니 바로 장양왕莊襄王이다. 장양왕이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하였다.
장양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죽자 태자 정政이 왕이 되어 여불위를 높여 상국相國으로 삼고 중부仲父라 불렀다.
진왕秦王이 나이가 어릴 때 태후가 늘 여불위와 몰래 사통하였는데, 후에 시황제가 장성하고 나서 여불위는 일이 발각되어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