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
은 按 易
에 曰
라하니 道者
는 理也
요 器者
는 物也
라
精粗之辨이 固不同矣어니와 然理未嘗離乎物之中하니 知此則知有物有則之說矣라
蓋盈乎天地之間者가 莫非物而人亦物也며 事亦物也라
以人言之컨대 如目之視‧耳之聽은 物也요 視之明‧聽之聰은 乃則也며
君臣‧父子‧夫婦‧長幼는 物也요 而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夫婦之别‧長幼之序는 乃則也라
古人이 謂規‧矩‧準‧繩‧衡을 爲五則者는 以其方‧圓‧平‧直‧輕重이 皆天然一定之法故也라
原注
【臣按】 《주역》에 이르기를, “形而上의 것을 道라 하고, 形而下의 것을 器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道는 理이고 器는 物입니다.
정함[精]과 거침[粗]의 구분이 있어 본래 같지 않지만 理는 物 속에서 떠난 적이 없으니, 이를 안다면 “物이 있음에 법칙이 있도다.”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체로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物이 아닌 것이 없어서 사람도 物이며 일도 物입니다.
어떤 物이 있으면 이에 상응하는 理를 갖추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법칙’입니다.
사람으로 말해보면, 예컨대 눈이 보는 것과 귀가 듣는 것은 物이고, 보는 것이 밝은 것과 듣는 것이 밝은 것은 바로 법칙입니다.
그리고 君臣‧父子‧夫婦‧長幼는 物이고, 임금의 어짊‧신하의 恭敬‧자식의 孝‧어버이의 慈愛‧부부간의 分別‧연장자와 연소자 간의 秩序는 바로 법칙입니다.
‘則’은 ‘법칙’을 말하니, 고정되어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규規(그림쇠)‧구矩(곱자)‧준準(수평기)‧승繩(먹줄)‧형衡(저울)을 오칙五則이라 한 것은, 이들의 네모남‧둥긂‧평평함‧곧음‧가벼움과 무거움이 모두 자연적인 것으로 고정된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原注
物에 이 법칙이 있는 까닭은 하늘이 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니, 사람은 그저 그 법칙을 따라야 할 뿐입니다.
예컨대 보는 것은 본래 밝게 보도록 되어 있으니 보고도 밝게 보지 못한다면 이는 그 법칙을 잃은 것이고, 듣는 것은 본래 밝게 듣도록 되어 있으니 듣고도 밝게 듣지 못한다면 이는 그 법칙을 잃은 것이며, 임금은 마땅히 어질어야 하니 임금으로서 어질지 않으면 이는 그 법칙을 잃은 것이고, 신하는 마땅히 공경해야 하니 신하로서 공경하지 않으면 이는 그 법칙을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 가지 일에 대한 법칙일 뿐입니다.
만약 사람이 되어서도 사람이 된 이치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사람이 된 법칙을 잃은 것이어서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原注
‘떳떳한 性[彛]’을 말하면서 ‘잡는다[秉]’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혼연한 하나의 理가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어 옮기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것이 마치 꽉 잡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理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덕에 대해 좋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仁‧義‧忠‧孝는 이른바 ‘아름다운 덕’이기에 사람이라면 어진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할 것 없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不仁‧不義‧不忠‧不孝는 이른바 ‘악한 덕’이기에 사람이라면 어진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할 것 없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性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땅히 또 뒷장에 나오는 맹자의 말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