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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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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太宗貞觀三年
利可汗 入朝어늘 謂侍臣曰 하시니
痛心이러니 今單于 稽顙하니 庶幾可雪前恥로다
四年 李靖 擒頡利可汗以獻한대 上皇 聞之歎曰 不能報어늘 今我子 能滅突厥하니 託付得人이라 復何憂哉리오
上皇 命置酒凌煙이러시니 酒酣 起舞하시고 公卿 迭起爲壽하니라


7-8-가2
당 태종 貞觀 3년(629)에 突利可汗이 입조하자, 상이 侍臣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전에 태상황이 백성 때문에 突厥에 신하를 칭하셨는데,
짐이 일찍이 이를 마음 아파했다. 이제 單于가 머리를 조아리니 전날의 치욕을 씻었다고 할 만하다.”
정관 4년에 李靖이 頡利可汗을 잡아서 바치자 상황이 이를 듣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漢 高祖가 白登山의 치욕을 겪고도 갚지 못했는데, 이제 내 아들이 돌궐을 멸망시켰으니 내가 후사를 맡길 사람을 얻었다.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상황이 凌煙閣에서 酒宴을 열도록 명하였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상이 일어나 춤추시고 공경대신들이 번갈아 일어나 축수하였다.


역주
역주1 7-8-가2 : 《資治通鑑》 卷193 〈唐紀9〉에 太宗 貞觀 3年 12月 戊辰과 貞觀 4年 4月 戊戌 기사에 보인다. 貞觀 3년(629)에 東突厥의 小可汗 突利可汗이 頡利可汗과 불화하여 당에 투항하였고, 行軍摠管 李靖 등이 동돌궐을 공격하여 정관 4년 힐리가한을 사로잡아 장안으로 압송하였다. 4월 무술일에 태종이 順天樓에서 힐리가한을 引見하고 數罪하였는데, 태상황인 高祖 李淵이 이 일을 漢 高祖의 白登山의 일에 견주고 주연을 베풀어 치하한 일을 서술한 것이다.
역주2 突利可汗 : 603~631. 이름은 阿史那什鉢苾로, 始畢可汗의 아들이다. 東突厥의 小可汗이자 頡利可汗의 조카이다, 624년 동돌궐 대가한 힐리가한과 당나라를 침입하였다가 唐 李世民과 의형제를 맺었다. 628년 힐리가한의 명에 따라 반란을 일으킨 薛延陀와 위구르를 공격하다가 패하여 처벌을 받자, 불만을 품고 당에 투항하여 힐리가한에 대항하였다. 630년 동돌궐이 당나라에 멸망당하자 順州都督에 제수되었다. 631년 입조하였다가 幷州에 이르러 죽었다. 아들인 賀邏鶻이 지위를 이었다.
역주3 : 저본에는 ‘頡’로 되어 있다. 대전본‧사고본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역주4 往者……突厥 : 隋 恭帝 義寧 원년(617) 6월에 唐 高祖 李淵이 太原에서 기병하여 장안으로 진군하였는데, 이때 돌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하로 칭하였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常’으로 되어 있다.
역주6 漢高祖困白登 : 漢 高祖 7년(기원전 200)에 한 고조가 직접 출정하여 흉노를 공격하였다가 平城 동쪽의 白登山에서 冒頓(묵특) 單于에게 7일간 포위를 당하여 결국 화친을 청하고 신하를 칭하는 치욕을 당한 일을 말한다.
역주7 : 대전본에는 ‘閤’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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