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武王이 商나라를 쳐서 막 이겼을 때 洪範에 대해 箕子에게 묻고, 무왕께서 막 즉위하였을 때 또 丹書에 대해 太公에게 물었으니, 道를 묻는 것을 급선무로 여긴 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공망이 아뢰었던 내용이 敬과 義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는 공경하면 온갖 善이 모두 확립되고 태만하면 만 가지 선이 모두 폐해지며, 의로우면 이치가 그 주인이 되고 욕심을 부리면 외물이 그 주인이 되는지라, 吉凶과 存亡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上古의 성인들은 이미 이 敬과 義에 삼감을 지극히 하셨습니다.
무왕이 그 道를 듣고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器物에 그 道를 새겨 넣어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이것은 경과 의가 잠깐이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태만과 욕심이 그 틈을 탈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原注
그 뒤에 孔子가 《易經》을 부연하여 〈坤卦〉의 六二 爻辭에 “敬하여 안을 곧게 하고 義하여 밖을 방정하게 한다.”라고 하자, 先儒가 해석하기를 “敬이 확립되면 안이 곧아지고, 義가 드러나면 밖이 방정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공경하면 이 마음에 사사롭고 간사한 허물이 없게 되니 안이 이 때문에 곧아지게 되고, 의로우면 사물마다 제각기 그 분수에 합당하게 되니 외면이 이 때문에 방정하게 됩니다.
黃帝로부터 武王에 이르기까지, 무왕으로부터 孔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道일 것입니다.
原注
혹자는 “요堯임금‧순舜임금 이후의 성왕聖王들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성인聖人인데 이제 ‘학문學問’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합니다.
그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의리의 근원일 뿐입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법은 참으로 학문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 기록에 요堯임금‧순舜임금‧우왕禹王‧탕왕湯王은 모두 스승이 없는 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논어論語》를 상고해보면 ‘옛것을 믿고 좋아하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자허自許하였던 것이고, ‘학문을 강마講磨하지 않는 것’은 공자께서 일찍이 우려하였던 것입니다.
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또 ‘열 가구가 사는 작은 고을에도 진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태어날 때부터 아는 성인이라 하더라도 학문에 힘쓰지 않은 분은 없었습니다.
原注
그러나 상商나라 이전에는 아직 ‘학문學問’이라는 명칭이 없었으니, 《서경書經》에 실린 몇몇 성인의 마음으로 전수하고 대면하여 명한 것과 군신 간에 서로 훈계하고 고해준 것을 살펴보면 학문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치세治世를 염원하는 임금이 진실로 그 책 전체에 나아가 반복하여 익숙하게 익히면 천년 성학聖學의 원류가 장차 가슴속에서 명료해질 것이니, 부지런히 힘써 행하면 이제삼왕二帝三王이 이룩했던 성세盛世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그 대요大要만을 발췌하여 이 책에 써서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