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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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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3-2-나(按)
按 孔子 旣沒 異端 遂作하여 至孟子時盛矣
13-2-나(按)
[臣按] 공자가 별세한 뒤에 이단의 설이 마침내 나와서 맹자 때에 와서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衍‧之徒 各著書言治亂之事하여 以干世主者 不可勝數
로되
司馬遷의 기록에 따르면 騶衍을 비롯하여 淳于髡‧田騈의 무리가 저마다 글을 지어 治亂의 일을 논하여 당시 임금들에게 등용되기를 구한 자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其害 尤甚焉이어늘 而孟子所深距者 惟楊‧墨二氏 何哉
申不害와 商鞅 같은 무리가 그중에서도 폐해가 더욱 심했는데 맹자가 몹시 배척한 것이 오직 楊氏와 墨氏뿐이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原注
程頤는 일찍이 논하기를 “楊朱와 墨翟의 해로움은 申不害와 韓非子보다 더 심하다. 양주의 爲我(자신만을 위하는 것)는 義인가 의심스럽고 묵적의 兼愛(두루 사랑하는 것)는 仁인가 의심스럽다.
申‧ 則陋而易見이라 故孟子 止闢楊‧墨하시니 爲其惑世之甚也라하니
신불해와 한비자의 설은 식견이 낮아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맹자가 양주와 묵적만 배척한 것이니, 이 두 설이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킴이 심하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夫爲我之疑於義 何也 義者 任理而無情이니 楊朱 自一身之外 截然弗卹이라 故其迹 似乎義하고
무릇 爲我가 義인가 의심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義는 이치를 따르고 情이 없으니, 양주는 자신 한 몸 외에는 전혀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이 義와 유사합니다.
兼愛之疑於仁 何也 仁者 尙恩而主愛 墨翟 於親踈之間 無乎不愛 故其迹 似乎仁하니 殊不知
兼愛가 仁인가 의심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仁은 은혜를 높이고 사랑을 주장하니, 墨翟은 親疎간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모습이 仁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하의 이치가 근본은 하나이나 나뉘면 달라진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原注
故君子 親親而仁民하고 仁民而愛物하여 心無不溥而其施 有序하니 心無不溥則非爲我矣 其施 有序則非兼愛矣
그러므로 군자는 五服의 친속을 친히 하고 일반 사람들을 사랑하며, 일반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껴서, 마음이 두루 미치지 않은 바가 없으면서도 그 마음을 쓰는 데에는 차례가 있습니다. 마음이 두루 미치지 않은 바가 없으니 爲我가 아니며, 그 마음을 쓰는 것에 차례가 있으니 兼愛가 아닙니다.
楊朱 專於爲我則昧乎之一이요 墨翟 一於兼愛則昧乎分之殊로대 若是而曰仁義라하니 乃所以賊乎仁義也
그런데 楊朱는 爲我만을 오로지 주장했으니 이는 이치는 하나라는 것에 어두운 것이며, 墨翟은 겸애만을 오로지 주장했으니 이는 나뉘면 달라진다는 것에 어두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데도 이를 仁義라고 하니, 이것이 바로 仁義를 해치는 이유입니다.
夫事君 則致其身이어늘 楊朱 但知愛身而不知致身之義 故無君하고 立愛 必自親始어늘
무릇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양주는 단지 자신을 아낄 줄만 알아서 자신을 바치는 義는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확립하는 것은 반드시 친속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墨翟 愛無差等而視其至親 無異衆人이라 故無父하니 無父‧無君則人道 滅絶이라 是亦禽獸而已니라
그런데 묵적은 사랑에 차등이 없어서 지극히 가까운 친속을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사람의 도리가 없어진 것이니, 이 또한 금수일 뿐입니다.
原注
大抵正道‧異端 相爲消長이라 楊‧墨之道 不息則孔子之道 不明하고 邪說 得以誣罔民聽하며 塞絶正理하나니
무릇 正道와 異端은 한쪽이 사라지면 한쪽이 자라납니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밝아지지 않고, 공자의 도가 밝아지지 않으면 姦言과 邪說이 백성들의 귀를 속이고 바른 이치를 막아 단절시킬 수 있습니다.
正理 絶滅하면 不惟禽獸 食人이라 人亦將相食이니 孟子之所以懼而不容不辯也
바른 이치가 없어지면 금수만 사람을 잡아먹을 뿐 아니라 사람들끼리도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맹자가 두려워하며 변론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原注
閑者 防閑之義 距楊墨‧放淫辭‧闢邪說者 卽所以閑先聖之道也
‘閑’은 ‘보위하다’라는 뜻이니, 양주와 묵적을 막고 淫辭를 배척하며 邪說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先聖의 도를 보위하는 방법입니다.
天下之治亂 其源 實出於人心하나니 邪說 一溺於其心則發於心而害於事하며 發於事而害於政 蓋必然之勢也
천하의 治亂은 그 근원이 실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니, 邪說이 한번 그 마음속에 들어오면 마음에서 발로되어 일에 해로움을 끼치고 일에서 발로되어 정사에 해로움을 끼치는 것은 필연적인 형세입니다.
事者 政之目이요 政者 事之綱이니 一念 差則一事하고 一目 隳則大綱 亦從而隳하나니
‘일’은 정사의 조목이며, ‘정사’는 일의 강령입니다. 하나의 생각이 빗나가면 하나의 일이 어그러지고, 하나의 조목이 무너지면 큰 강령이 마찬가지로 따라서 무너지게 되니,
邪說所以不可不闢이며 人心所以不可不正也
이것이 邪說을 물리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며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原注
抑洪水하시며 周公 兼夷狄‧驅猛獸하시며 孔子 作春秋하시니 事雖不同而其天下之患하며 立生民之極則一이니
禹王은 홍수를 막고, 周公은 夷狄을 兼倂하고 맹수를 몰아내며, 공자는 《春秋》를 지었으니, 일은 비록 다르나 천하의 환난을 구제하고 生民의 표준을 확립하였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孟子之心 亦三聖之心也 言旣終 復謂能言距楊‧墨者 卽聖人之徒라하시니
맹자의 마음 역시 세 聖人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뒤에 다시 “양주와 묵적의 邪說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聖人의 무리이다.”라고 하였으니,
蓋所以勉天下學者하여 皆以闢異端‧扶正道 爲心하여 庶幾生人之類 不淪胥於禽獸케하시니 니이다
이것은 천하의 학문하는 자들을 권면하여 모두 이단을 물리치고 正道를 붙드는 것으로 마음을 삼아서, 사람들이 서로 끌고 금수가 되는 지경까지 빠져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맹자의 공이 禹王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역주
역주1 司馬……勝數 : 《史記》 卷74 〈孟子列傳〉에 “추연을 비롯하여 齊나라의 稷下先生, 예를 들면 淳于髡‧愼到‧環淵‧接子‧田騈‧騶奭과 같은 무리가 저마다 글을 지어 治亂의 일을 논함으로써 당시 임금들에게 등용되기를 구한 것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自騶衍與齊之稷下先生 如淳于髡‧愼到‧環淵‧接子‧田騈‧騶奭之徒 各著書言治亂之事 以干世主 豈可勝道哉]”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2 騶衍 : 기원전 305?~기원전 240. 전국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陰陽家의 창시자이다. 제나라 臨淄의 稷下에 모인 학사들 중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魏‧趙‧燕 등의 나라에서 예우를 받았으며, 일찍이 燕 昭王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다. 五德終始說로 왕조의 흥망성쇠를 설명하였다. 저서에 《主運》‧《終始》‧《大聖》‧《鄒子》‧《鄒子終始》가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역주3 : 사고본에는 ‘鄒’로 되어 있다.
역주4 淳于髡 : 기원전 386?~기원전 310. 전국시대 齊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미천한 신분[贅婿]으로, 키가 7尺이 안 되었고 변설에 능하였으며 견식이 넓고 해학과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와 관련하여 많은 일화가 있는데, 이 중 순우곤이 齊 威王의 客卿으로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제 위왕이 정사를 등한시하고 술에 빠져 살자 순우곤은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있습니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데, 왕께서는 이 새가 무슨 새인 줄 아십니까?[國中有大鳥 止王之庭 三年不蜚 又不鳴 王知此鳥何也]”라고 하자, 제 위왕은 “이 새는 날지 않으면 날지 않았지 한번 날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울지 않았지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라고 대답하고서 정사에 힘써 이후 36년간 제후들간에 제나라의 위엄이 떨쳐졌다고 한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저서에 《王度記》가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淳于髡》
역주5 田騈 : 기원전 370?~기원전 291. 전국시대 齊나라의 사상가로, 稷下學士 중 道家에 속한다. 《戰國策》‧《莊子》 등에 그와 관련된 일화가 전한다. 저서에 《田子》가 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戰國策 齊4》 《莊子 天下》
역주6 申不害 : 기원전 385? 또는 기원전 420~기원전 337. 전국시대 鄭나라 사람으로 申子라고도 부른다. 기원전 375년에 정나라가 韓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뒤 刑名學으로 韓 昭侯에게 유세하여 기원전 351년에 한나라의 재상으로 등용되었다. 이후 15년 동안 그가 죽을 때까지 한나라는 태평성세를 구가하며 다른 나라에 침략당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저서에 《申子》가 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역주7 商鞅 : 기원전 395?~기원전 338. 전국시대 衛나라의 公子로, 이름은 鞅이다. 姓은 姬, 氏는 公孫이기 때문에 衛鞅 또는 公孫鞅이라고도 하며, 뒤에 戰功을 세워 商에 봉해졌기 때문에 商君 또는 商鞅이라고도 한다. 法家의 대표적인 인물로, 變法을 통해 秦나라의 토지제도를 비롯하여 행정구획, 조세제도, 軍功爵位 등 수많은 법을 제정‧시행하여 秦나라를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법을 商鞅變法이라고도 한다. 重農抑商을 주장하였다. 기원전 338년에 秦 孝公이 죽고 그 아들 惠文王이 즉위한 뒤 公子虔의 무고를 받자, 봉읍인 商으로 달아나 군사를 일으켰으나 패하여 죽었다. 사후 그의 시신은 咸陽으로 보내져 車裂刑에 처해졌다. 《史記 卷63 申不害列傳, 卷68 商君列傳》
역주8 程頤……甚也 : 저본의 인용문은 《二程遺書》에는 程子로, 《近思錄》‧《孟子精義》에는 程顥의 말로 되어 있다. 저본에서 程頤의 말로 본 것은 오류로 보인다. 또한 저본의 인용은 ‘楊墨之害 甚於申韓’ 다음에 ‘佛老之害 甚於楊墨(불씨와 노자의 해로움은 양주와 묵적보다 심하다)’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으며, 저본의 ‘楊氏爲我疑於義 墨氏兼愛疑於仁’은 《孟子集註》‧《近思錄》에는 저본과 같으나 《二程遺書》‧《孟子精義》에는 ‘楊氏爲我疑於仁 墨氏兼愛疑於義’로 되어 있어 仁과 義가 반대로 되어 있다.
역주9 : 韓非子(기원전 280?~기원전 233)를 이른다. 전국시대 韓나라의 公子로, 法家 사상의 집대성자이다. 李斯와 함께 荀子에게 배웠다. 저서에 《韓非子》 55편이 있다. 일찍이 그가 지은 〈孤憤〉‧〈五蠹〉를 본 秦 始皇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탄식했다 한다. 뒤에 韓나라 왕의 명을 받고 秦나라로 가서 진 시황의 총애를 받았는데, 당시 秦나라의 승상으로 있던 李斯의 시기를 받아 감옥에 갇혀 죽었다. 《史記 卷63 韓非列傳》
역주10 天下……則殊 : 12-14-나(按) 참조.
역주11 : 사고본에는 ‘本’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孔子之道不明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13 : 사고본에는 ‘而’로 되어 있다.
역주14 姦言 : 《荀子》 〈非相〉에 “무릇 先王의 도에 부합하지 않고 禮義를 따르지 않은 말을 姦言이라고 한다.[凡言不合先王 不順禮義 謂之姦言]”라는 내용이 보이며, 《前漢書》 卷99下 〈王莽傳〉에 “옛날에 秦나라가 《詩經》과 《書經》 등 옛 전적들을 불태워 私議를 확립하고 新나라의 王莽이 六經을 인용하여 姦言을 꾸며서 똑같이 正道와 다른 길로 들어가더니 모두 이 때문에 멸망하였다.[昔秦燔詩書以立私議 莽誦六藝以文姦言 同歸殊途 俱用滅亡]”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5 : 사고본에는 ‘救’로 되어 있다.
역주16 孟子……下也 : 韓愈의 〈맹 상서에게 보내는 편지[與孟尙書書]〉에 “지난날 맹자가 없었다면 지금 모두 夷狄의 옷을 입고 夷狄의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일찍이 맹자를 추존하여 그 공이 우왕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向無孟氏 則皆服左袵而言侏離矣 故愈嘗推尊孟氏以爲功不在禹下者 爲此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韓愈全集 與孟尙書書》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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