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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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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늘 國忠 取禾之善者하여 獻之曰 雨雖多 不傷稼也라한대 以爲然이러시니
19-21-가
현종이 장맛비로 농사를 망칠 것을 염려하였는데 楊國忠이 잘 여문 곡물을 가져다가 현종에게 바치면서 말하였다. “비가 비록 많이 내리기는 하였지만 농사에 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종이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扶風太守 言所部水災어늘 國忠 使御史推之하니 是歲 天下 無敢言災者러라
扶風 太守 房琯이 관내의 水災를 아뢰자 양국충이 어사에게 심문하여 추고하도록 하니 이해에 천하 사람들 중에서 감히 재해에 대해 아뢰는 자가 없었다.
역주
역주1 19-21-가 : 《資治通鑑》 卷217 〈唐紀33 玄宗 下之下〉 天寶 13년(754) 9월 조에 보인다.
역주2 憂雨傷禾 : 天寶 12년(753)부터 수해와 한해가 연이어져 關中 지역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천보 13년(754) 가을에는 장맛비가 60여 일 동안이나 그치지 않자, 현종은 재상 중에 혹시 직분에 걸맞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左相 陳希烈을 체차하고 文部 侍郞 韋見素를 武部 尙書‧同平章事에 임명하였다.
역주3 房琯 : 697~763. 唐朝의 宰相이다. 자는 次律이다. 河南 偃師 사람이다. 부친은 正諫大夫 房融이다. 校書郞, 馮翊縣尉, 監察御史, 給事中, 太子左庶子, 刑部侍郞 등을 역임하고 漳南縣男에 봉해졌다. 安史의 난이 발발하자 唐 玄宗을 호종하여 蜀에 들어가 吏部 尙書‧同平章事에 제수되었다. 765년에 肅宗이 즉위하자 중용을 받았으나 用兵에 미숙하고 用人에 과오가 많아 崔圓 등의 비판을 받고 점차 숙종과 소원해졌다. 장안을 수복한 뒤 淸河郡公에 進封되었다. 당여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폄척되어 邠州 刺史가 되었다. 후에 太子賓客, 禮部 尙書, 晉州 刺史, 漢州 刺史 등을 거쳐 廣德 원년(763)에 刑部 尙書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 太尉에 추증되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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