使大夫種으로 厚幣遺吳太宰嚭하여 以請和하고 求委國爲臣한대 吳王이 將許之어늘
伍子胥
가 曰 越王爲人
이 能辛苦
注+能, 音耐.하니 今王
이 不滅
하시면 後必悔之
하리이다 吳王
이 不聽
하고 用太宰嚭計
하여 與越平
하다
어늘 子胥
가 諫曰 吳之有越
은 腹心之疾也
어늘 王
이 不先越而務齊
하시니 不亦謬乎
잇가
吳王이 不聽하고 大敗齊師以歸하여 益疏子胥之謀러라 其後에 吳王이 又將伐齊어늘
越王勾踐
이 乃率衆助吳
하고 而重寶
로 以獻遺太宰嚭
하니 嚭
가 旣數受越賂
라 日夜
에 爲言
吳王이 信嚭之計어늘 伍子胥가 諫願釋齊而先越호대 吳王이 不聽이어늘 太宰嚭가 因讒曰
子胥爲人이 剛暴少恩이라 前日에 王이 欲伐齊어시늘 子胥가 以爲不可라하더니
王이 卒伐之而有大功하시니 子胥가 恥其計謀不用하여 常鞅鞅怨望하나니 願王은 早圖之하소서
王曰 微子之言
이라도 吾亦疑之
라하고 之劍曰 子
가 以此死
하라
子胥
가 仰天
曰 嗟乎
라 讒臣嚭
가 爲亂矣
로다 告其
曰 而縣吾目於東門
하여 以觀越之入吳也
케하라하고
吳王
이 怒
하여 取子胥尸盛於鴟夷
注+革囊也.하여 浮之江
하니 吳人
이 憐之
하여 祠於江上
하고 因命曰
이라하니라
22-5-가
오왕 합려吳王 闔閭가 오자서伍子胥의 계책을 써서 서쪽으로는 강대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에 위엄을 떨치고 남쪽으로는 월越나라 사람들을 정벌하였다.
후에 합려가 월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월나라가 요격하여 오나라를 고소姑蘇에서 패배시키니 합려가 전사하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즉위하여 전투와 활쏘기를 훈련시켜서 월나라를 부초夫椒에서 패배시켰는데, 월왕 구천越王 勾踐이 이에 남은 병력 5천 명을 이끌고 회계산會稽山 위에 있으면서
대부 문종大夫 文種을 시켜 상당한 예물을 오吳나라의 태재 백비太宰 伯嚭에게 보내 화친을 청하고 월나라를 바쳐 신하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오왕吳王(부차夫差)이 이를 수락하려고 하자,
오자서가 말하였다. “월왕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注+伍子胥 ‘내能’는 음이 ‘내耐(내)’이다.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멸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오왕은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에 따라 월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그 후에 오왕 부차夫差가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齊나라를 정벌하자 오자서伍子胥가 간하였다. “오吳나라에 월越나라가 있는 것은 복심腹心의 병과도 같은데 왕께서 월나라를 먼저 도모하지 않고 제나라 정벌에 힘쓰시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오왕이 듣지 않고 제나라 군대를 크게 패퇴시키고 돌아와서는 오자서의 계책을 더욱 소홀히 여겼다. 그 후에 오왕이 또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월왕 구천越王 勾踐이 이에 군사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돕겠다고 하고 귀중한 보물을 백비伯嚭에게 보냈다. 그러자 백비가 이미 월나라의 뇌물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밤낮으로 구천을 위하여 오왕에게 말했다.
오왕이 백비의 계책을 믿자 오자서가 간하여 제나라를 놔두고 월나라를 먼저 도모하기를 청했으나 오왕이 듣지 않자, 태재 백비가 이로 인하여 참소하였다.
“오자서의 사람됨이 강포剛暴하고 은혜를 경시합니다. 전날에 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오자서가 불가하다고 하였는데
왕께서 결국 제나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거두니 오자서가 자신의 계책이 쓰이지 않은 것을 수치로 여겨 늘 불만에 차서 원망하였습니다. 왕께서는 일찌감치 그를 도모하십시오.”
오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나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에 사자使者를 보내 오자서에게 촉루검屬鏤劍을 하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으로 죽어라.”
오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서 말하였다. “아, 참신讒臣 백비가 난을 꾸미는구나.” 그리고 자신의 사인舍人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너는 내 눈을 도성 동문에 걸어 월나라가 오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게 해다오.” 마침내 오자서가 스스로 목을 찔렀다.
그러자 오왕이 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가죽부대에
注+‘치이鴟夷’는 가죽부대이다. 넣어 강에 흘려버리니, 오나라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강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곳의 산을
서산胥山으로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