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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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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王闔閭 以伍子胥之謀 하고 하고 이러니
22-5-가
吳王 闔閭가 伍子胥의 계책을 써서 서쪽으로는 강대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齊나라와 晉나라에 위엄을 떨치고 남쪽으로는 越나라 사람들을 정벌하였다.
후에 합려가 월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월나라가 요격하여 오나라를 姑蘇에서 패배시키니 합려가 전사하였다.
합려의 아들 夫差가 즉위하여 전투와 활쏘기를 훈련시켜서 월나라를 夫椒에서 패배시켰는데, 越王 勾踐이 이에 남은 병력 5천 명을 이끌고 會稽山 위에 있으면서
使大夫種으로 厚幣遺吳太宰嚭하여 以請和하고 求委國爲臣한대 吳王 將許之어늘
大夫 文種을 시켜 상당한 예물을 吳나라의 太宰 伯嚭에게 보내 화친을 청하고 월나라를 바쳐 신하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吳王(夫差)이 이를 수락하려고 하자,
伍子胥 曰 越王爲人 能辛苦注+能, 音耐.하니 今王 不滅하시면 後必悔之하리이다 吳王 不聽하고 用太宰嚭計하여 與越平하다
오자서가 말하였다. “월왕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注+
伍子胥伍子胥
‘能’는 음이 ‘耐(내)’이다.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멸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오왕은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에 따라 월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어늘 子胥 諫曰 吳之有越 腹心之疾也어늘 不先越而務齊하시니 不亦謬乎잇가
그 후에 오왕 夫差가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齊나라를 정벌하자 伍子胥가 간하였다. “吳나라에 越나라가 있는 것은 腹心의 병과도 같은데 왕께서 월나라를 먼저 도모하지 않고 제나라 정벌에 힘쓰시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吳王 不聽하고 大敗齊師以歸하여 益疏子胥之謀러라 其後 吳王 又將伐齊어늘
오왕이 듣지 않고 제나라 군대를 크게 패퇴시키고 돌아와서는 오자서의 계책을 더욱 소홀히 여겼다. 그 후에 오왕이 또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越王勾踐 乃率衆助吳하고 而重寶 以獻遺太宰嚭하니 旣數受越賂 日夜 爲言
越王 勾踐이 이에 군사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돕겠다고 하고 귀중한 보물을 伯嚭에게 보냈다. 그러자 백비가 이미 월나라의 뇌물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밤낮으로 구천을 위하여 오왕에게 말했다.
吳王 信嚭之計어늘 伍子胥 諫願釋齊而先越호대 吳王 不聽이어늘 太宰嚭 因讒曰
오왕이 백비의 계책을 믿자 오자서가 간하여 제나라를 놔두고 월나라를 먼저 도모하기를 청했으나 오왕이 듣지 않자, 태재 백비가 이로 인하여 참소하였다.
子胥爲人 剛暴少恩이라 前日 欲伐齊어시늘 子胥 以爲不可라하더니
“오자서의 사람됨이 剛暴하고 은혜를 경시합니다. 전날에 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오자서가 불가하다고 하였는데
卒伐之而有大功하시니 子胥 恥其計謀不用하여 常鞅鞅怨望하나니 願王 早圖之하소서
왕께서 결국 제나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거두니 오자서가 자신의 계책이 쓰이지 않은 것을 수치로 여겨 늘 불만에 차서 원망하였습니다. 왕께서는 일찌감치 그를 도모하십시오.”
王曰 微子之言이라도 吾亦疑之라하고 之劍曰 子 以此死하라
오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나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에 使者를 보내 오자서에게 屬鏤劍을 하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으로 죽어라.”
子胥 仰天曰 嗟乎 讒臣嚭 爲亂矣로다 告其曰 而縣吾目於東門하여 以觀越之入吳也케하라하고
오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서 말하였다. “아, 讒臣 백비가 난을 꾸미는구나.” 그리고 자신의 舍人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너는 내 눈을 도성 동문에 걸어 월나라가 오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게 해다오.” 마침내 오자서가 스스로 목을 찔렀다.
吳王하여 取子胥尸盛於鴟夷注+革囊也.하여 浮之江하니 吳人 憐之하여 祠於江上하고 因命曰이라하니라
그러자 오왕이 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가죽부대에注+‘鴟夷’는 가죽부대이다. 넣어 강에 흘려버리니, 오나라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강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곳의 산을 胥山으로 이름 지었다.
역주
역주1 22-5-가 :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卷66 〈伍子胥列傳〉에 보인다.
역주2 西破彊楚 : 기원전 512년(吳王 闔閭3, 楚 昭王4)에 합려가 伍子胥, 伯嚭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의 舒縣을 함락한 뒤 오나라 公子로서 초나라로 망명했던 蓋餘와 燭庸을 죽였다. 이듬해에 또 초나라를 공격하여 六邑과 𤅬邑(첨읍)을 차지하였다. 기원전 509년(吳王 闔閭6, 楚 昭王7)에는 초나라의 子常이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하자 오나라는 초나라 군대를 豫章에게 격파시키고 초나라의 居巢邑을 점령하고 돌아왔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역주3 : 대전본에는 ‘强’으로 되어 있다.
역주4 北威齊晉 : 《史記》 〈十二諸侯年表〉와 〈吳太伯世家〉에 따르면, 오자서를 등용한 후 오나라가 齊나라와 晉나라에 위엄을 떨친 것은 闔閭 때가 아닌 夫差 때의 일로 보인다. 기원전 485년(吳王 夫差11)에 오나라가 魯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공격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2년 뒤에는 오나라가 진나라를 비롯한 여러 제후들과 黃池에서 회맹을 하였다. 《史記 卷14 十二諸侯年表, 卷31 吳太伯世家》
역주5 南伐越人 : 기원전 510년(吳王 闔閭5)에 오나라가 越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역주6 後闔……閭死 : 기원전 496년(吳王 闔閭19) 여름에 합려가 월나라를 치자, 越王 句踐이 檇李(취리)에서 합려를 맞아 싸웠다. 구천은 군령을 어겨 형벌을 받아야 할 군사들로 구성된 결사대를 세 줄로 정렬시킨 뒤에 큰 소리를 외치고 나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게 하였다. 오나라 군대가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에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姑蘇에서 패퇴시켰다. 이때 합려는 손가락에 상처를 입고서 7리를 물러났는데, 결국 상처 때문에 중병이 들어 사망했다. 《春秋左氏傳 定公 14年》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역주7 敗越……越平 : 기원전 494년(吳王 夫差2)의 일이다.
역주8 其後……伐齊 : 기원전 489년(吳王 夫差7)의 일이다. 기원전 490년에 齊 景公이 죽자 齊나라의 대신들은 총애를 다투었고 경공의 어린 아들 晏孺子는 막 즉위하여 제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부차는 제나라로 쳐들어가 艾陵에서 제나라 군대를 패퇴시켰으며 제나라와 魯나라의 남쪽 지역을 공략하였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역주9 於吳王吳王 : 대전본에는 ‘於吳王’으로, 사고본에는 ‘而吳王’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乃使……此死 : 《사기》 〈吳太伯世家〉에 따르면, 기원전 485년(吳王 夫差11)에 부차가 다시 齊나라를 치려고 했는데 오자서가 이를 만류했음에도 부차가 그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때 오자서는 오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제나라 대부인 鮑息에게 자신의 아들을 맡기고 돌아왔다. 백비가 이 일을 가지고 부차에게 오자서를 모함하자 부차가 분노하여 오자서에게 칼을 내려 자진하게 하였다.
역주11 屬鏤 : 검의 이름이다. 기록에 따라 ‘屬盧’, ‘屬鹿’, ‘獨鹿’, ‘屬婁’라고도 한다. 《史記辭典 屬鏤》
역주12 : 사고본에는 ‘嘆’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舍人 : 顔師古에 따르면, 가까이 있으면서 보좌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漢書 卷1 高帝紀 顔師古注》
역주14 乃自……之江 : 기원전 485년(吳王 夫差11)의 일이다. 《춘추좌씨전》에는 哀公 11년(기원전 484) 기사에 보인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春秋左氏傳 哀公 11年》
역주15 胥山 : 太湖 가 胥湖의 동쪽 기슭에 있는 산이다. 《史記 卷66 伍子胥列傳 張守節正義》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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