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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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班固 贊曰 王莽 始起外戚하여 折節力行하여 以要名譽하고
及其居位輔政하여 成‧哀之間 勤勞國家하여 動見稱述하니 豈所謂者邪
莽旣不仁而有佞邪之材하고 又乘歷世之權하여 遭漢中微하여 而太后 壽考하여 爲之宗主
故得肆其姦慝하여 以成簒竊之禍하고 及其竊位南面하얀 處非所據 顚覆之勢 險於桀‧紂而莽 라하여
迺始恣睢하여 奮其威詐하여 滔天虐民하여 窮凶極惡하여 毒流諸夏하며 亂延蠻貊하니
自書傳所載 亂臣賊子無道之人考其禍敗컨대 未有如莽之甚者也니라


17-12-가2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하였다. “왕망은 처음에 외척에서 일어나 자신을 굽혀 남에게 낮추고 힘써 노력하여 명예를 구하였으며,
높은 자리에 올라 국정을 보좌하기에 이르러서는 성제成帝애제哀帝 연간에 국가를 위해 부지런히 애써서 번번이 칭송을 받았으니, 어찌 이른바 겉으로는 을 취하면서도 행동은 어긋나는 자가 아니겠는가.
왕망이 불인不仁하면서 영사佞邪한 재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네 제부諸父가 누대에 걸쳐 이루어놓은 권세에 올라타고서 나라 중엽의 쇠미한 때를 만나 나라의 대통大統이 세 번이나 단절되었고 태후(원후元后)가 장수하여 왕망의 뒷배가 되었다.
그러므로 왕망이 그 간특함을 마음껏 부려 찬탈의 화란을 이룰 수 있었으며, 제위帝位를 찬탈하여 군림하게 되어서는 차지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나라가 패망하는 형세는 걸왕桀王주왕紂王 때보다도 위태로웠다. 그러나 왕망은 편안하게 스스로, 황제黃帝임금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비로소 거리낄 것이 없어져서 그 위세와 기만을 떨어 백성들을 학대함이 하늘에 닿을 듯이 했고, 흉악한 짓을 극도로 저질러 해악이 중화中華에 퍼지고 화란禍亂이적夷狄에까지 미쳤으니,
역대 전적典籍이 기록된 이래 무도한 난신적자들이 일으킨 재앙과 패망을 살펴보면 왕망처럼 심한 경우가 없었다.”


역주
역주1 17-12-가2 : 《前漢書》 卷99下 〈王莽傳〉 贊에 보인다. 17-4-가부터 17-12-가1 참조.
역주2 色取仁而行違 : 《논어》 〈顔淵〉 제20장에 보인다.
역주3 四父 : 17-4-가의 원주② ‘繼四父而輔政’ 참조.
역주4 國統三絶 : 서한 말의 황제인 成帝‧哀帝‧平帝에게 후사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음을 말한다.
역주5 晏然……出也 : 新나라 地皇 3년(22) 2월에 왕망이 내린 글에서 “나는 神明聖祖인 黃帝와 舜임금의 후예로서 천명을 받아 地皇 4년에 이르면 15년째가 된다.[予以神明聖祖黃虞遺統受命 至于地皇四年爲十五年]”라는 내용이 보인다. 《前漢書 卷99下 王莽傳》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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