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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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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 曰 不仁哉 梁惠王也 仁者 以其所愛 及其所不愛하고 不仁者 以其所不愛 及其所愛니라
12-20-가
맹자가 말하였다. “仁하지 않구나, 梁 惠王이여! 仁한 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까지 미치고, 仁하지 않은 자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까지 미친다.”
公孫丑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양 혜왕이 땅을 얻을 욕심에 자신의 백성을 몹시 다치게 하면서까지 싸워서 크게 패하고는,
將復之호대 恐不能勝故 驅其所愛子弟하여 以殉之하니 是之謂以其所不愛 及其所愛也注+謂使太子申與齊戰, 爲齊所也.니라
장차 다시 싸우려 하면서 이기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子弟를 몰아서 죽게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까지 미친다.’라고 하는 것이다.”注+梁 惠王이 태자 申에게 齊나라와 싸우게 했다가 태자 신이 제나라의 포로가 된 것을 이른다.
역주
역주1 12-20-가 : 《孟子》 〈盡心 下〉 제1장에 보인다.
역주2 梁惠王以……殉之 : 梁 惠王은 魏나라 惠王으로, ‘惠’는 시호이고, ‘王’은 호칭이다. 당시에 王을 참칭하는 나라가 일곱이었는데, 魏나라의 수도가 大梁이었기 때문에 梁王이라고 부른 것이다. ‘子弟’는 태자 申을 이른다. 魏 惠王 30년(기원전 341)에, 혜왕이 趙나라를 치자 조나라는 齊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 급보를 받은 齊 宣王이 孫臏의 계책을 써서 조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魏나라 혜왕을 치자, 위나라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龐涓을 장수로 삼고 태자 신을 上將軍으로 삼아 제나라와 싸웠다. 이 전쟁에서 위나라는 馬陵에서 대패하여 태자 신은 포로로 잡히고 장군 방연은 죽었다. 《孟子集註 梁惠王 上 第5章》 《史記 卷44 魏世家》
역주3 : 사고본에는 ‘擄’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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