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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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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 卷22
格物致知之要(二)
辨人材
憸邪罔上之情[讒臣]
使往注+使太子往.이어늘 伊戾 請從之한대 公曰 夫 不惡女乎注+夫, 謂太子也. 女, 音汝.
對曰 小人之事君也 惡之不敢遠하며 好之不敢近이요 敬以待命하니 敢有二心乎잇가 臣請往也하노이다
至則欿用牲加書하고 注+詐作盟處, 爲太子反證驗.而騁하여 告公曰 太子 將爲亂이라 旣與楚客盟矣니이다
公曰 爲我子 又何求리오 對曰 欲速注+言欲速得公位.이니이다 使視之則信有焉이어늘
問諸注+夫人, 平公夫人, 左師, , 皆惡太子.하시니 則皆曰 固聞之로이다 하다 徐聞其無罪也하고 伊戾하니라


대학연의 권大學衍義 卷22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지성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2)
인재人材를 구별하는 방법들
간사奸邪한 자들이 임금을 속인 정상[참소하는 신하들]
22-1-가
나라의 사인 혜장이려寺人 惠牆伊戾태자太子내사內師가 되었으나 총애를 받지 못했다.注+혜장惠牆’은 이고 ‘이려伊戾’는 이름이다. 태자太子는 이름이 로, 송 평공宋 平公의 아들이다. 그런데 나라의 사신使臣나라로 빙문聘問을 갈 때 송나라를 지나가자, 태자가 야외에서 연향을 베풀어주자고注+향지享之’는 초나라의 사신使臣에게 연향宴享을 베푼다는 것이다. 송 평공宋 平公에게 청하였다.
평공이 가게 하자注+사왕使往’은 태자에게 가라고 한 것이다. 혜장이려가 태자를 수행하기를 청했는데, 평공이 말하였다. “태자가 너를 싫어하지 않는가.”注+’는 태자太子를 이른다. ‘’는 음이 ‘(여)’이다.
혜장이려가 대답하였다. “소인이 군자를 섬길 때에는 소인을 미워해도 감히 군자를 소원하게 여기지 못하며 소인을 좋아해도 감히 군자를 친근하게 여기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명을 기다리는 것이니, 감히 두 마음을 품겠습니까. 신은 가기를 청합니다.”
혜장이려가 도착해서는 구덩이를 파고 희생에 맹약한 글을 놓아둔 뒤에 이를 증거로 삼아注+맹약한 장소를 거짓으로 만들어서 태자가 반역했다는 증거로 삼은 것이다. 말을 달려 돌아와 평공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태자가 난을 일으키려고 이미 초나라의 사신과 맹약을 하였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내 아들이니 태자가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혜장이려가 대답하였다. “임금이 빨리 되려는 것입니다.”注+욕속欲速’은 의 자리를 빨리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한다. 평공이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였는데 정말로 그곳에 증거가 있었다.
그러자 부인과 좌사左師에게 물으니,注+부인夫人’은 송 평공宋 平公의 부인이며 ‘좌사左師’는 향술向戌이니, 이들 모두 태자를 미워하였다. 그들이 모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다는 말을 정말로 들었습니다.” 평공이 태자를 감옥에 가두자, 태자가 이에 목을 매어 죽었다. 평공은 태자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 마침내 혜장이려를 팽형烹刑에 처하였다.


역주
역주1 22-1-가 : 《춘추좌씨전》 襄公 26년(기원전 547) 기사에 보인다.
역주2 宋寺……內師 : 寺人은 환관이다. 楊伯峻에 따르면, ‘內師’는 太子宮 내에 소속된 환관들의 우두머리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修訂本), 北京:中華書局, 1995, 1118쪽》
역주3 其姓 : 사고본에는 ‘氏’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座’로 되어 있다.
역주6 宋平公 : ?~기원전 532(재위 기원전 575~기원전 532). 성은 子, 이름은 成으로, 宋 共公(?~기원전 576, 재위 기원전 588~기원전 576)의 아들이다.
역주7 楚客……享之 : 이해 가을에 초나라의 사신이 晉나라로 빙문을 갔는데, 宋 太子 痤와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6年》
역주8 : 사고본에는 이 뒤에 ‘之’ 1자가 있다.
역주9 夫人 : 宋나라의 大夫인 芮(예)司徒의 딸로 이름은 棄이며, 佐의 모친이다. 佐는 송 평공의 아들로, 태자 痤가 죽고 나서 곧바로 태자가 되었다. 22-2-가의 ‘太子佐’ 주석 참조. 《春秋左氏傳 襄公 26年》 《春秋經傳集解 襄公 26年》
역주10 左師 : 宋나라의 벼슬 이름으로, 執政의 지위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向戌을 가리키며, 그의 채읍이 合縣에 있어 ‘合左師’라고도 하였다. 태자 痤는 외모가 아름다웠으나 성격이 사나웠는데, 상술이 그러한 痤를 두려워한 나머지 미워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6年》 《楊伯峻, 春秋左傳注(修訂本), 北京:中華書局, 1990, 1031쪽》 《陳克烱, 左傳詳解詞典, 鄭州:中州古籍出版社, 2004, 441쪽》
역주11 : 대전본에는 ‘句’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12 : 저본‧대전본‧사고본에는 ‘戍’로 되어 있으나, 통행본 《춘추좌씨전》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위의 ‘左師’ 주석 참조.
역주13 囚太子한대 : 509본에는 ‘囚太한대 子’로 되어 있으나, 오류이다.
역주14 乃縊而死 : 太子 痤가 갇힌 뒤에 이복형제인 佐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며 그가 평공에게 자신의 사면을 부탁하도록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佐에게 정오가 될 때까지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것으로 알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左師 向戌이 그 말을 듣고 佐에게 가서는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약속 시간인 정오를 넘기게 만들었다. 결국 佐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태자 痤는 낙담하여 자진하고 말았다. 《春秋左氏傳 襄公 26年》
역주15 乃烹伊戾 : 宋나라 때 林堯叟는, 혜장이려를 먼저 죽이고 나서 그 시체를 삶은 것으로 보았다. 《音注全文春秋括例始末左傳句讀直解 襄公 26年》
역주16 : 劉熙의 《釋名》에 “솥에 끓이는 것을 ‘烹’이라고 하니, 짐승의 고기를 삶는 것과 같은 것이다.[煮之於鑊曰烹 若烹禽獸之肉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釋名 釋喪制》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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