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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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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問 中和之義한대 朱熹 曰 天命之性 萬理具焉이라
喜怒哀樂 各有攸當하니 方其未發 渾然在中하여 無所偏倚 故謂之中이요 及其發而皆得其當하여 無所乖戾 故謂之和
謂之中者 所以狀性之德이니 道之體也 以其天地萬物之理 無所不該 故曰 天下之大本이요
謂之和者 所以著情之正이니 道之用也 以其古今人物之所共由 故曰 天下之達道니라
原注
蓋天命之性 純粹至善而具於人心者 其體用之全 本皆如此 不以聖愚而有加損也어니와
然靜而不知所以存之則天理 昧而大本 有所不立矣 動而不知所以節之則人欲 肆而達道 有所不行矣
惟君子自其不睹不聞之前而所以戒愼恐懼者 愈嚴愈敬하여 以至於無一毫之偏倚而守之常不失焉則爲有以致其中而大本之立 日以益固矣
尤於之際而所以其善惡之幾者 愈精愈密하여 以至於無一毫之差謬而行之每不違焉則爲有以致其和而達道之行 日以益廣矣리라
原注
致者 用力而推致之하여 以極其至之謂 致焉而極其至하여 至于靜而無一息之不中則吾心 正而天地之心 亦正이라
故陰陽動靜 各止其所而天地於 動而無一事之不和則吾氣 順而天地之氣 亦順이라
故充塞無間하여 歡欣交通而萬物 於此乎育矣니라
原注
然則中和 果二 曰 觀其一體一用之名則安得不二 察其一體一用之實則此爲彼體 彼爲此用이니
如耳目之能視聽‧視聽之由耳目이라 亦初非有二也니라


原注
11-5-나4(朱)
어떤 이가 ‘中和’의 뜻에 대해 묻자, 朱熹가 말하였다. “하늘이 명한 性은 만 가지 이치가 여기에 갖춰져 있다.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이 각각 도리에 맞는 것이 있으니 아직 발현하지 않았을 때에는 渾然히 中에 있어서 편벽되거나 치우치는 것이 없으므로 ‘中’이라 하고, 그것이 발현했을 때 모두 그 도리에 맞게 되어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이 없으므로 이를 ‘和’라고 한다.
‘中’이라고 이른 것은 性의 德을 형상한 것이니, 道의 體이다. 中은 천지 만물의 이치가 포괄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 때문에 ‘천하의 큰 근본[天下之大本]’이라고 이른다.
‘和’라고 이른 것은 情의 올바름을 드러낸 것이니, 道의 用이다. 和는 고금의 사람과 사물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것이니 이 때문에 ‘천하의 공통된 道[天下之達道]’라고 이른다.
原注
대개 하늘이 명한 性이 순수하고 지극히 선하여 인심에 갖추어져 있는 것은 그 體‧用의 완전함이 본래 모두 이와 같기 때문에 聖人이라고 더하고 愚人이라고 덜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요한 때에 이를 보존할 줄 알지 못하면 天理가 어두워져 큰 근본이 확립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動하는 때에 이를 절제할 줄 모르면 人欲이 부려져서 공통된 道가 행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직 君子만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부터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더욱 엄히 하고 공경히 하여 털끝만큼도 편벽되거나 치우치는 것이 없어서 이를 지켜 항상 잃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 그 中을 미루어 지극히 하여 ‘큰 근본[大本]’이 확립되는 것이 날로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특히 어둡고 작아서 자기 혼자만 아는 때에 그 선악의 기미를 삼가는 것이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나거나 잘못되는 것이 없도록 하여 이를 행하여 항상 어기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 그 和를 미루어 지극히 하여 ‘공통된 道[達道]’가 행해지는 것이 날로 더욱 넓어질 것이다.
原注
‘致’는 힘을 써서 미루어 지극히 하여 지극한 경지까지 완전히 다하는 것을 말하니, 이를 미루어 지극히 하여 그 지극한 경지를 완전히 다하여 아직 발현하지 않아 고요한 때에 잠깐 동안이라도 中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면 나의 마음이 바르게 되어 천지의 마음도 바르게 된다.
때문에 陰陽과 動靜이 각각 제자리에 그쳐 천지가 이에 자리를 편안히 하게 된다. 발현하여 동하는 때에 한 가지 일이라도 和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면 나의 氣가 순하게 되어 천지의 氣도 순하게 된다.
때문에 천지 사이에 和한 기운이 빈틈없이 가득 채워져서 기쁨이 서로 통하여 만물이 이에 잘 길러지게 된다.”
原注
“그렇다면 ‘中’과 ‘和’는 과연 별개의 것인가?” “그 한 體와 한 用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어찌 두 가지가 아니겠으며, 그 한 體와 한 用의 실상을 보면 이것은 저것의 體가 되고 저것은 이것의 用이 된다.
마치 귀와 눈이 보고 들을 수 있고 보고 듣는 것이 눈과 귀를 통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애당초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역주
역주1 11-5-나4(朱) : 《中庸或問》에 보인다. 해당 인용문의 ‘問中和之義’는 본래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何也’로 되어 있다. 이외에 字句상의 생략이 있다.
역주2 隱微幽獨 : 朱熹의 《中庸章句》에 따르면, ‘隱’은 ‘어두운 곳[暗處]’, ‘微’는 ‘작은 일[細事]’, ‘獨’은 ‘남들은 모르고 나만 홀로 아는 부분[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이다.
역주3 : 사고본에는 ‘愼’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此乎位矣 : 대전본에는 ‘之心亦正矣’로 되어 있다.
역주5 : 《中庸或問》에는 ‘物’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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