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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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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顯 威權日盛하니 公卿以下 畏顯하여 重足一하더라‧少府으로 結爲黨友하니 諸附倚者 皆得寵位 自知擅權하여 事柄 在掌握하니 恐天子 納用左右以하여 乃時歸誠取一信以爲驗하더니
18-12-가
石顯의 위세와 권력이 날로 강성해지자 公卿 이하의 사람들이 석현을 두려워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였다. 석현이 中書僕射 牢梁, 少府 五鹿充宗과 붕당을 짓자 이에 빌붙는 자들이 모두 현달한 지위를 얻었다. 석현은 자신이 권력을 전횡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권력이 자신의 수중에 있으니 元帝가 하루아침에 자신을 헐뜯는 近臣들의 말을 받아들일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때때로 충성을 나타내어 실제 일을 들어서 이를 무고의 증거로 삼았다.
嘗使至諸官有所徵注+使往諸官司, 徵召而取發也.할새 先自白호대 恐後漏盡宮門閉하노니 請使詔吏開門하노이다
石顯은 일찍이 사명을 받들고 여러 관사에 가서 사람들을 징발할 때,注+使命을 받들고 여러 관사에 가서 징집하여 출동시키는 것을 이른다. 먼저 스스로 元帝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나중에 시간이 다 되어 궁문이 닫힐까 두려우니, 詔命을 받든 관리에게는 문을 열어주도록 하소서.”
許之한대 故投夜還하여 稱詔開門入이러니 果有上書告顯 顓命矯詔開宮門이라하여늘 天子하시고 笑以其書示顯하신대
원제가 이를 허락하자, 석현은 일부러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와서 조명을 칭하여 궁문을 열게 한 뒤에 들어왔다. 뒤에 과연 글을 올려 석현이 제멋대로 조명을 빙자하여 궁문을 열게 하였다고 고하는 자가 있자, 원제가 이를 듣고 웃으면서 그 글을 석현에게 보여주었다.
因泣曰 陛下 過私小臣하사 屬任以事하시니 群下 無不嫉妬欲陷害臣者 事類如此하니 唯獨明主 知之시니이다
석현이 이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소신을 과분할 정도로 총애하시어 일을 맡기시니 신하들이 신을 질투하여 모함하고 해치고자 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저들이 고하는 일들이 대개 이와 같으니, 오직 밝으신 폐하만은 아실 것입니다.
愚臣 微賤하여 誠不能以一軀 稱快萬衆이라 願歸樞機職하고 受後宮掃除之役이면 無所恨이니
어리석은 신은 미천하여 진실로 한 몸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추어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이 중요한 직책을 돌려드리고 후궁에서 청소하는 일을 맡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唯陛下 哀憐財幸하사 以此全活小臣하소서 天子 以爲然而憐之하여 數勞勉顯하시고 加厚賞賜하시니 賞賜及賂遺 一萬萬이러라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불쌍히 여기고 결단을 내리시어 이것으로 소신을 온전히 살게 해주소서.” 원제가 옳다고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석현을 누차 위로하고 독려하였다. 그리고 후한 상을 내려주니, 원제가 내려준 상과 관리들이 뇌물로 바친 재물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역주
역주1 18-12-가 : 《資治通鑑》 卷29 〈漢紀21 元帝 下〉 建昭 2년(기원전 37) 6월 조에 보인다.
역주2 : 사고본에는 ‘跡’으로 되어 있다.
역주3 中書僕射牢梁 : ‘中書僕射’는 관직명으로 中書令의 副職이다. ‘牢梁’은 18-11-나 ‘以中……之黨’ 주 참조.
역주4 五鹿充宗 : 18-11-가 ‘五鹿充宗’ 주 참조.
역주5 : 저본‧512본에는 ‘朝’로 되어 있으나, 조선 태조 李旦의 避諱이므로 바로잡았다.
역주6 : 대전본에는 ‘聞’으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7 : 대전본에는 ‘奏’로 되어 있다.
역주8 : 대전본에는 ‘使’로 되어 있다.
역주9 : 대전본에는 ‘訾’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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