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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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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支郞中
善窺上意所愛惡而迎之러니
24-8-가4
魚袋魚袋
度支郞中 楊釗가 玄宗의 마음속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잘 엿보아 이에 영합했는데,
以聚斂으로 驟遷하여 歲中 領十五餘使하고 遷給事中兼御史中丞하여 專判度支하니 恩幸 日隆이러라
가렴주구로 빠르게 승진하여 1년 사이에 열다섯 남짓 되는 使職을 겸하고 給事中 兼 御史中丞으로 승진하여 度支 업무를 전담하니 현종의 은총이 날로 커졌다.
八載春 引百官하여 觀左藏하시고 賜帛有差하시다 是時 州縣 殷富하여 倉庫粟帛 動以
天寶 8년(749) 봄 3월에 현종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左藏庫를 둘러보고서 차등을 두어 비단을 하사하였다. 이 당시에 州縣이 부유하여 창고의 곡식과 비단이 걸핏하면 천 단위로 헤아려졌다.
楊釗 奏請所在 하여 輕賫하고 及徵‧地稅 皆變布帛하여 輸京師하고
양소가, 전국 곳곳에 오랜 동안 쌓여 있는 물자들을 꺼내 輕貨로 바꾸게 하고 거두어들인 丁租와 地稅를 모두 布帛으로 바꾸어 京師(長安)로 수송하자고 주청하였다.
屢奏帑藏充 古今罕儔 故上 率群臣觀之하시고 賜釗하시다
그리고 국고가 충실한 것이 고금에 비견될 사례가 드물다고 여러 차례 상주하였다. 이 때문에 현종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좌장고를 둘러본 것이며 양소에게 金魚袋와 紫衣를 하사하였다.
以國用豐衍이라 故視金帛如糞土하여 賞賜貴寵之家 無有限極注+釗後更名國忠. .하더라
현종은 나라의 재용이 풍족해졌기 때문에 황금과 비단을 糞土처럼 하찮게 보아서 총애하는 權貴 집안에 상을 내리기를 한정 없이 하였다.注+楊釗는 후에 이름이 ‘國忠’으로 바뀌었다. 양국충에 관한 일은 앞에 보인다.
역주
역주1 24-8-가4 : 《資治通鑑》 卷216 〈唐紀32 玄宗 下之上〉 天寶 7년(748) 6월, 8년(749) 2월 기사에 보인다.
역주2 楊釗 : ?~756. 唐 玄宗 연간의 權臣 楊國忠을 가리킨다. 蒲州 永樂 사람으로, 貴妃 楊玉環의 堂兄이다.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給事中‧御史中丞‧專判度支事가 되었는데 계산 능력에 뛰어나 현종의 신임을 얻었다. 天寶 9년(750)에는 ‘國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王鉷(왕홍)과 결탁하여 楊愼矜을 죽음으로 몰았다가, 왕홍의 위세가 커지자 그를 죄에 얽어 죽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 이임보가 죽은 후 온갖 전횡을 일삼다가, 安祿山의 난이 일어난 후 현종과 함께 四川으로 피난 갔을 때 불만을 품은 군사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역주3 : 대전본에는 ‘揚’으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4 : 사고본에는 ‘二’로 되어 있다. 《資治通鑑》에도 이 기사가 2월 조에 보인다.
역주5 : 《資治通鑑》에는 ‘萬’으로 되어 있다.
역주6 出滯積 : 대전본에는 ‘糶(조)’로 되어 있다.
역주7 : 대전본에는 이 뒤에 ‘爲’ 1자가 더 있다.
역주8 丁租 : 丁男 한 사람이 해마다 납부하는 2섬의 곡물을 가리킨다. 24-8-가3의 ‘租庸調’ 주석 참조.
역주9 : 대전본‧사고본에는 ‘羨(연)’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金紫 : 《新唐書》 〈楊國忠列傳〉에 따르면 金魚와 紫衣를 가리킨다. 金魚는 《資治通鑑》 胡三省 注의 내용으로 미루어 金魚袋로 보인다. 금어대는 물고기 모양의 符信인 魚符를 담는 주머니에 금장식을 한 것으로, 唐 高宗 때 3품 이상의 관원에게 주도록 규정되었다. 《舊唐書》 〈職官志〉에 따르면 어사중승은 正5品上이므로 양소에게 금어대를 하사한 일은 그를 파격적으로 우대한 것이다. 《舊唐書 卷42 職官志1》 《新唐書 卷206 楊國忠列傳》 《資治通鑑 卷226 唐紀42 代宗 下 大曆 14年 胡三省注》
역주11 事見前 : 19-18-가~19-22-가 참조.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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