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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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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惠帝注+愍懷, 諡也.所生注+母曰.이라 常勸后慈愛太子호대 不從하고 更與等謀害之러니
23-3-가
晉 惠帝의 愍懷太子 司馬遹은注+‘愍懷’는 시호이다. 賈皇后의 소생이 아니었다.注+민회태자의 어머니는 謝氏이다. 황후의 어머니 郭氏가 늘 황후에게 태자를 사랑할 것을 권하였으나 황후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다시 賈午 등과 함께 태자를 해칠 것을 모의하였다.
又侍中 驕貴注+午‧謐皆后戚也.어늘 太子 性剛하여 不能假借之하니 譖於后曰
또 侍中 賈謐이 교만하고 신분이 높았는데注+賈午와 賈謐은 모두 賈皇后의 친족이다. 태자가 성격이 강하여 너그럽게 포용해주지 못하자 가밀이 황후에게 다음과 같이 참소하였다.
太子 多蓄私財하여 以結小人者 爲賈 不如早圖之하고 更立慈順者 可以自安이라한대
“태자가 私財를 많이 축적하여 소인들과 결탁하는 것은 우리 賈氏 때문이니, 일찌감치 태자를 도모하여 제거하고 다시 유순한 사람을 태자로 세우면 저절로 안정될 수 있는 것만 못합니다.”
納其言하여 乃宣揚太子之短하여 布於遠近이러니
황후가 그 말을 받아들여 태자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서 원근에 퍼뜨렸다.
이어늘 太子 爲禱祀求福한대 聞之하고 乃詐稱帝不豫하여 召太子入宮하여
愍懷太子의 장자가 병이 위독해지자 태자가 장자를 위해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 복을 빌었다. 賈皇后가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황제가 몸이 좋지 않다고 거짓으로 말하여 태자를 불러 궁에 들어오도록 하였다.
旣至 不見하고 置于別室하고 遣婢陳舞하여 以帝命賜太子酒三升하여 使盡飮之한대 太子 辭不能이어늘 한대
태자가 도착하자 황후는 태자를 만나지 않고 별실에 머물게 한 뒤에 시녀 陳舞를 보내 황제의 명으로 태자에게 술 석 되를 하사하고 이를 다 마시게 하였다. 태자가 석 되를 다 마실 수 없다고 사양하자 진무가 강요하였다.
하여 遂大醉어늘 使으로 作書草하여 令小婢陳福으로 以紙筆及草 稱詔使書之注+한대
태자가 억지로 이를 다 마셔서 마침내 크게 취하자, 황후가 黃門侍郞 潘岳으로 하여금 글의 초안을 짓게 한 뒤에 어린 시녀 陳福을 시켜 종이와 붓, 초안을 가지고 황제의 詔命을 칭탁하여 태자로 하여금 이를 베껴 쓰게 하였다.注+그 내용이 모두 흉악하고 패역스러워 여기에 수록하지 않는다.
太子 醉迷不覺하여 遂依而寫之하니 其字 半不成이어늘 補成之하여 以呈帝한대
태자가 취하여서 혼미한 가운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반악의 초안을 그대로 베껴 썼다. 그 베껴 쓴 글자가 반은 형태를 이루지 못하자 황후가 이를 보충해 완성하여 惠帝에게 올렸다.
하여 召公卿入하여 以太子書示之曰 遹書 如此하니 今賜死라하고
惠帝가 式乾殿에 거둥하여 公卿들을 불러 들어오게 해서 태자가 쓴 글을 보여주고 “遹의 글이 이와 같으니 이제 죽음을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徧示諸하니 莫有言者어늘 張華 曰 此 國之大禍 自古以來 常因廢黜正嫡하여 以致喪亂하나니 願陛下 詳之하소서
그리고 여러 왕공에게 두루 보여주자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張華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것은 나라의 큰 화입니다. 예로부터 항상 적자를 폐함으로 인해 喪亂에 이르게 되었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자세히 살피소서.”
以爲 宜先傳書者라하고 又請比太子手書하소서 不然이면 恐有詐妄이라한대
裴頠가 그 글을 전한 자를 먼저 조사하여 대질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또 청하기를 “태자의 친필과 비교해보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賈后 乃出太子啓事十餘紙하니 衆人 旣視 亦無敢言非者러라
賈皇后가 이에 태자의 上奏文 10여 장을 꺼내놓자 사람들이 보고난 뒤에 또한 감히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
議至日西不決이러니 見華等意堅하고 懼事變하여 乃表免太子爲庶人한대 詔許之러시니 하다
논의가 날이 저물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황후가 장화 등의 뜻이 견고함을 보고 일이 틀어질까 두려워 마침내 표문을 올려 태자를 폐하여 庶人으로 삼도록 청하였다. 혜제가 조서를 내려 이를 윤허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황후가 태자를 죽였다.
역주
역주1 23-3-가 : 《資治通鑑》 卷83 〈晉紀5 惠帝 上之下〉 元康 9년(299) 11월, 12월 조에 보인다.
역주2 愍懷太子遹 : 司馬遹(278~300)로, ‘민회’는 시호이다. 晉 惠帝의 태자이다. 자는 熙祖이며 어렸을 때의 이름은 沙門이다. 武帝 때 廣陵王에 봉해졌다.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성정이 포악한 데다 사치와 무술을 좋아하자 혜제 사후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賈皇后(賈南風)에 의해 모반의 혐의로 廢庶人되고 얼마 뒤에 독약을 거부하다가 맞아죽었다. 가황후가 죽은 뒤 태자로 복권되었다.
역주3 賈后 : 賈南風(257~300)이다. 平陽 襄陵 사람이다. 西晉 惠帝의 황후이자 權臣 賈充의 딸이다. 武帝 泰始 8년(272)에 태자비가 되었고, 혜제가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荒淫放恣하고 포악하였다. 태후(武元皇后)의 아버지 楊駿(?~291)이 정사를 보좌하였는데 혜제 永平 원년(291)에 楚王 司馬瑋(271~291)를 시켜 살해하였고, 汝南王 司馬亮(?~291)을 太宰로 임명하였다가 사마위를 시켜 살해하였다. 얼마 뒤에 사마위를 ‘제멋대로 죽였다[擅殺]’는 죄명을 씌워 죽였다. 또 愍懷太子 司馬遹을 죽임으로써 八王의 亂을 야기하였다. 뒤에 趙王 司馬倫(?~301)에게 피살되었다.
역주4 謝氏 : ‘氏’가 대전본‧사고본에는 ‘妃’로 되어 있다. 사씨는 謝玖(269~300)이다. 晉 惠帝 司馬衷의 姬妾이자 愍懷太子 司馬遹의 어머니이다. 사마충이 賈南風을 태자비로 맞기 전에 사씨에게서 사마휼을 낳았다. 290년에 사마충이 즉위하자 아들 사마휼은 태자가 되었고, 惠帝 元康 5년(295)에는 才人에서 淑媛이 되었다. 원강 9년(299)에 賈皇后에 의해 모반을 도모한다는 죄명으로 동년 12월에 체포되어 이듬해에 杖殺되었다. 가황후 사후 혜제의 詔命으로 아들 사마휼과 함께 顯平陵에 합장되고 夫人에 추증되었다.
역주5 后母郭氏 : 廣城君 郭槐(237~296)이다. 서진의 대신 賈充의 繼室로, 太原 陽曲 사람이다. 2남 2녀를 낳았다. 장녀 賈南風은 晉 惠帝의 황후가 되었고, 차녀는 賈午이며, 아들 賈黎民은 3세에, 다른 아들은 돌이 되기 전에 죽었다. 賈謐을 가여민의 후사로 삼았다.
역주6 賈午 : 260~300. 서진 초기의 權臣 賈充의 딸이자 惠帝의 황후 賈南風의 同母妹이다. 趙王 司馬倫이 집정할 때 아들 賈謐과 함께 피살되었다.
역주7 賈謐 : ?~300. 賈充의 외손자이자 賈午의 아들로, 원래는 韓氏였으나 뒤에 가충의 아들 賈黎民의 후사가 되면서 賈氏가 되었다. 散騎常侍, 秘書監, 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권세가 크고 사치가 지나쳐서 그와 교유한 石崇‧歐陽建 등이 二十四友로 불리게 되었다. 문학에 재능이 있어 서한의 賈誼와 비견되었다. 賈皇后와 함께 태자를 모함하였으며 趙王 司馬倫에게 피살되었다.
역주8 : 대전본에는 ‘后’로 되어 있다.
역주9 太子長子 : 司馬虨(사마반, ?~300)이다. 晉 惠帝 司馬衷의 손자이자 愍懷太子 司馬遹(사마휼)의 장자이다. 아버지 사마휼이 賈皇后의 계략에 빠져 廢庶人 된 뒤에 생모 및 두 아우와 함께 金鏞城에 갇혔다가 惠帝 永康 원년(300) 1월 14일 丙子日에 죽었다. 동년 4월에 사마휼의 작위와 봉호가 복권되면서 南陽王에 추봉되었다.
역주10 太子長子……呈帝 : 惠帝 元康 9년(299) 12월 조에 보인다.
역주11 舞逼之 : 시녀 陳舞는 “불효자이십니다! 황상께서 당신에게 술을 내리셨는데 마시지 않으시니, 술 안에 나쁜 것이라도 들었단 말입니까.[不孝邪 天賜汝酒而不飮 酒中有惡物邪]”라고 말하여 태자에게 술을 마실 것을 강요하였다.
역주12 强飮至盡 : 태자는 陳舞에게 두 되는 마실 수 있지만 나머지 한 되는 동궁으로 가지고 가서 마저 마시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요가 계속되자 태자는 부득이 다시 한 되를 더 마셨고 결국 大醉하여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晉書 卷53 愍懷太子列傳》
역주13 黃門侍郞 : 관직명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기밀 문건을 관장하고 황제의 자문에 응하였다.
역주14 潘岳 : 247~300. 서진의 저명한 문학가이다. 자는 安仁이며, 滎陽 中牟 사람이다.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젊을 때부터 문학적 재능으로 유명하여,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타고 간 수레가 부녀자들이 던진 과일로 가득하였다고 하며 시를 잘 지어서 陸機와 병칭되었다. 30여 세 때 河陽令이 되었는데 온 고을에 복숭아와 오얏 꽃을 심어 ‘河陽一縣花’의 전고가 생겨났다. 賈謐을 섬겨 石崇‧陸機‧劉琨‧左思 등의 賈謐二十四友 중 으뜸이 되었다. 趙王 司馬倫이 집정할 때 孫秀의 무고를 받아 모반죄로 주살되었다.
역주15 其詞……不錄 : 賈皇后가 潘岳에게 글을 짓도록 한 뒤 태자에게 이를 베껴 쓰게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폐하께서는 자진하셔야 할 것이니 자진하지 않으시면 제가 들어가서 끝낼 것입니다. 중궁께서도 속히 자진하셔야 할 것이니 자진하지 않으시면 제가 직접 끝낼 것입니다. 그리고 謝妃(태자의 생모)와 함께 언약하였습니다. 날을 잡아 황궁 안팎에서 거사를 일으킬 것이니 의심하고 주저하여 후환을 초래하지 마소서. 일월성신 아래에서 희생의 털과 피로 맹세하였으니, 하늘이 환난과 해악을 제거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道文(사마반의 아명)을 왕으로 세우고 蔣氏(사마반의 생모)를 황후로 삼을 것입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 세 희생으로 北帝에게 제사 지낼 것입니다.[陛下宜自了 不自了 吾當入了之 中宮又宜速自了 不自了 吾當手了之 竝與謝妃共要 刻期兩發 勿疑猶豫 以致後患 茹毛飮血於三辰之下 皇天許當掃除患害 立道文爲王 蔣氏爲內主 願成 當以三牲祠北君]”
역주16 帝幸……許之 : 惠帝 元康 9년(299) 12월 30일 壬戌日 조에 보인다.
역주17 式乾殿 : 胡三省의 주에 따르면 황후궁이다. ‘式乾’은, 坤은 母이고 乾은 父이니, 황후가 천하의 어머니가 되어 乾, 즉 남편을 법식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資治通鑑 卷75 魏紀7 邵陵厲公 中 胡三省音註》
역주18 王公 : 《資治通鑑》 胡三省 注에 따르면, 司馬氏 종실의 王으로 조정에서 三公이나 재상의 직위를 가진 사람을 이른다.
역주19 裴頠 : 267~300. 서진의 대신이자 철학가이다. 河東 聞喜 사람이며, 司空 裴秀의 아들이다. 박학다식하였으며, 散騎常侍, 國子祭酒 兼 右軍將軍, 尙書左僕射, 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賈皇后와 인척 관계가 있음에도 愍懷太子를 보호하였다. 趙王 司馬倫과 평소 반목하여 사마륜이 賈氏를 죽일 때 함께 피살되었다. 저술에 〈崇有論〉이 있는데, 《晉書》 本傳에 전문이 실려 있다. 시호는 成이다.
역주20 檢校 : 사고본에는 ‘簡較’로 되어 있다.
역주21 : 사고본에는 ‘較’로 되어 있다.
역주22 尋殺之 : 惠帝 永康 원년(300) 1월 14일 丙子日의 일이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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