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2-9-나(按)
臣은 按 人之與物이 相去가 亦遠矣而孟子가 以爲幾希者는 蓋人‧物이 均有一心이로되 然人能存而物不能存하니 所不同者가 惟此而已라
人類之中에 有凡民者가 亦有是心而不能存하니 是卽禽獸也요 惟君子가 能存之하니 所以異於物耳라
若大舜之聖은 則明乎物之所以爲物하시며 察乎人之所以爲人하사 不待於存而自存하시니
蓋存之者는 猶待於用力이어니와 舜則身卽理요 理卽身이라 渾然無間而不待於用力하시니
所謂
‧
者
가 是也
라 由仁義行則身與理一
이요 行仁義則身與理二
라
然未至於舜則所以行仁義者가 正所當勉也니 行而久하며 久而熟하며 熟而安則與由而行者로 亦豈異哉리오
此
가 之事
니 有志於學聖人者
가 不可以不勉
이니이다
原注
12-9-나(按)
[臣按] 사람이 동물과의 차이가 또한 큰데도 맹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사람과 동물이 모두 똑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사람은 이 마음을 능히 보존하고 동물은 이 마음을 능히 보존하지 못하니, 다른 점은 오직 이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가운데 일반 백성들이 또한 이 마음을 가지고서도 능히 보존하지 못하니 이는 바로 금수인 것이며, 오직 군자만이 이를 능히 보존하니 이 때문에 동물과 다른 것뿐입니다.
大舜과 같은 聖人은 동물이 동물인 이유를 밝게 알았으며, 사람이 사람인 이유를 자세히 살펴 굳이 보존할 필요도 없이 절로 보존되었습니다.
이를 보존하는 것은 그래도 여기에 힘쓰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순임금은 자신이 바로 이치였으며 이치가 바로 자신이었기에 혼연일체여서 굳이 힘쓸 필요도 없었으니,
이른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한다.[生知安行]’, ‘조용히 도에 맞는다.[從容中道]’라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仁義의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이 이치와 하나인 것이며, 仁義를 노력해서 행하는 것은 자신이 이치와 둘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순임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인의를 행하는 것은 바로 마땅히 힘써야 할 바이니, 행하여서 오래되고, 오래되어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서 편안해지면, 그 길을 간 자와 또한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湯王과 武王이 본성을 회복한 일이니, 聖人을 배우는 데 뜻을 둔 사람은 여기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