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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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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年 曹參커늘 明年 以王陵으로 爲右丞相하고 陳平으로 爲左丞相하고 周勃 爲太尉注+此盡用高帝垂沒之言也.하다
七年 惠帝커시늘 太后 하다 高后元年 議立諸呂爲王할새 問右丞相陵한대
太后 不說하여 問平‧勃한대 하니이다 太后하더라
罷朝 讓平‧勃曰 始與高帝啑血盟 諸君 不在邪 今王呂氏 何面目見高帝於地下乎리오
平‧勃 曰 面折廷爭 臣不如君이어니와 全社稷‧安劉氏 君亦不如臣注+漢初, 承戰國餘習, 臣下相謂, 亦曰君‧臣.이리라 無以應之하더라
太后 以陵爲하니 實奪之相權이라 遂病免歸하다


16-2-가
혜제惠帝 5년(기원전 190)에 조참曹參이 죽자, 이듬해에 왕릉王陵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주발周勃태위太尉로 임명하였다.注+이는 모두 고제高帝가 임종할 때의 말에 따른 것이다.
혜제 7년(기원전 188)에 혜제가 붕어하자, 태후太后(여후呂后)가 임조칭제臨朝稱制하였다. 고후高后 원년(기원전 187)에 여씨呂氏들을 세워 왕으로 삼는 일을 의논할 때 우승상 왕릉에게 묻자 왕릉이 대답하였다.
고제高帝께서 백마를 잡아 맹세하시기를 ‘유씨劉氏가 아닌데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그자를 공격하라.’라고 하셨으니, 지금 여씨들을 왕으로 삼는 것은 맹약에 어긋납니다.”
태후가 기뻐하지 않고서 진평과 주발에게 묻자 진평과 주발은 “왕으로 삼으셔도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태후가 기뻐하였다.
조회를 파하자 왕릉이 진평과 주발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처음에 고제高帝와 함께 삽혈歃血을 하며 맹약하는 자리에 들은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 여씨들을 왕으로 삼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고제를 뵙겠습니까.”
진평과 주발이 말하였다. “면절정쟁面折廷爭하는 것은 들이 만 못하지만, 사직社稷을 온전히 하고 유씨劉氏를 안정시키는 것은 군 또한 신들만 못할 것입니다.”注+나라 초에는 전국시대의 유습遺習을 이어받아 신하들끼리 서로간에 호칭할 때에도 ‘’이니 ‘’이니 하였다. 왕릉이 그 말에 답할 수 없었다.
태후가 왕릉을 태부太傅로 임명하니 실제로는 승상의 권한을 박탈한 것이었다. 왕릉이 마침내 병으로 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역주
역주1 16-2-가 : 관련 내용이 《前漢書》 卷40 〈王陵傳〉, 《資治通鑑》 卷13 〈漢紀5 高皇后〉 원년(기원전 187) 기사 등에 보인다. 기원전 188년 8월에 혜제가 죽고 9월에 呂后가 臨朝稱制하면서 국정을 장악하였다. 이듬해 겨울에 여후가 여씨들을 왕으로 삼으려고 王陵의 의사를 타진해보았으나 왕릉이 반대하였다. 마침내 이해 11월에 왕릉을 太傅로 임명하여 승상의 권한을 박탈해버렸다.
역주2 臨朝稱制 : 조정에 직접 나와 국사를 처리하며 천자의 직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制는 制書를 가리키는데 황제가 내리는 詔書의 일종이다. 《漢書辭典 臨朝稱制》
역주3 高帝……擊之 : 《史記》 卷17 〈漢興以來諸侯王年表〉에 따르면 高帝 말년에 劉氏가 아닌데도 왕이 되는 자와 공이 없는데도 제후가 되는 자들은 천하가 함께 주멸하도록 했다고 하며, 《사기》 권9 〈呂太后本紀〉에 따르면 고제가 천하를 평정한 뒤 대신들과 맹약을 했다고 한다. 백마를 잡았다는 것은 歃血을 가리킨다. 삽혈은 고대에 맹약이나 선서를 할 때 희생을 잡아 그 피를 입에 바르는 것인데, 이로써 盟誓의 장중함을 나타내었다. 《韓兆琦, 史記箋證, 南昌:江西人民出版社, 2005, 770쪽》
역주4 : 대전본에는 ‘令’으로 되어 있다. 통행본 《사기》에는 ‘今’으로 되어 있다.
역주5 平勃對曰可 : 《史記》 卷9 〈呂太后本紀〉에 따르면 진평과 주발이 여태후에게 “高帝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시고 자제들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지금 태후께서 臨朝稱制를 하시니 呂氏 형제들을 왕으로 삼는 것이 안 될 게 없습니다.[高帝定天下 王子弟 今太后稱制 王昆弟諸呂 無所不可]”라고 대답하였다.
역주6 太傅 : 천자의 국정을 보좌하는 벼슬로, 周나라 때에는 太師‧太保와 더불어 三公의 하나였다. 漢나라 때에 와서는 高后 원년(기원전 187)에 설치하였다. 지위가 三公보다도 위에 있어 지위가 존귀하였으나, 이 당시에는 태부를 포함하여 태사‧태보 등 上公에 해당하는 이들은 실권이 없었다. 《漢書 卷19上 百官公卿表》 《中國官制大辭典 太傅》 《譚景玉, 漢代上公制度考述, 山東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5年 3期, 76쪽》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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